형사 콜롬보, 그 구겨진 바바리코트는 왜 온 가족을 붙잡았을까

금요일 밤, 안방 형광등 아래 온 가족이 방석을 끌어다 놓고 앉는다. 화면 속 형사는 넥타이도 제대로 매지 않은 채 구겨진 바바리코트 자락을 끌며 현장을 어슬렁거린다. 손에는 늘 다 타들어가는 시가 한 대가 들려 있다. 형사 콜롬보는 미국 NBC에서 1971년부터 방영된 추리 드라마로, 한국에서는 1970년대 초 TBC를 거쳐 KBS를 중심으로 여러 차례 더빙 방영되며 안방극장의 단골 손님이 됐다.

낡은 트렌치코트 하나가 안방에 들어오기까지

처음 이 형사를 안방에 들인 건 TBC였다. 1973년 잠깐 소개된 뒤 존재감이 짙어진 건 KBS 시절이다. 1974년 4월부터 9월까지 토요일 저녁에 편성됐고, 이듬해엔 매달 마지막 일요일 밤으로 자리를 옮겼다 끊기기를 반복했다.

1978년 다시 토요일 밤에 걸렸고, 1981년 9월부터는 금요일 밤 시간대로 옮겨 이듬해 가을까지 이어졌다. 채널을 넘나들며 방영이 끊겼다 이어지길 반복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 형사가 그만큼 여러 번 다시 불려올 만한 인기 상품이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더빙은 성우 최응찬이 오래 맡았다. 워낙 배역과 목소리가 딱 붙어버린 탓에 방송가에서는 그를 “최롬보”라 부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1984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KBS가 추모 특집으로 이 드라마를 다시 편성했다는 사실은, 목소리 하나가 캐릭터를 얼마나 완전히 대체했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1989년엔 MBC에서도 잠깐 방영을 이었고, 1994년부터는 SBS가 주말 심야 시간대에 다시 불러들였다. 이때는 성우 배한성이 목소리를 맡아 1995년 1월까지 방송이 계속됐다. 채널은 바뀌었어도 그 바바리코트 자락은 20년 넘게 한국 안방을 오가며 자리를 지켰다.

왜 하필 저렇게 초라한 형사였을까

양복도 새 것 하나 없고, 담뱃값이나 껌 값 계산할 때 주머니를 뒤지다 잔돈이 없어 곤란해하는 장면이 자주 나왔다. 상대는 대개 저택에 사는 부자이거나 유명 인사. 그 앞에서 콜롬보는 매번 초라했다.

상대편은 대개 그를 문 앞에서부터 얕본다. 명함을 봐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심지어 형사 취급을 안 해주는 경우도 있었다. 정작 그렇게 무시당하던 남자가 나중에 결정적인 증거를 들이밀 때, 상대의 표정이 무너지는 그 낙차가 매회 반복되는 재미였다.

그 초라함이 무기였다. 상대가 만만하게 보고 방심하는 순간, 그는 등을 돌렸다가 문 앞에서 다시 고개를 돌리며 한마디를 던진다. “참, 한 가지만 더요.” 이 말이 나오면 이미 게임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낡은 코트는 배우 피터 포크가 실제로 입던 자신의 옷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화면 속 형사가 유난히 자연스럽게 후줄근했던 데에는 그런 사정이 있었던 셈인데, 정작 안방에서 이 옷을 보던 시청자들은 그런 뒷사정을 알 리 없었다. 그저 저 못생긴 코트를 입은 남자가 결국 범인을 잡는다는 사실만 알았다.

No One Believes Columbo Is A Detective (Columbo 공식 채널) — 형사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문전박대당하는 장면 모음.

낡은 차와 시가, 그리고 개 한 마리

주차장 구석에 세워진 그의 차도 코트만큼이나 형편없었다. 뒷문짝 색이 안 맞는 낡은 소형 컨버터블이었고, 시동 걸 때마다 요란한 소리를 냈다. 부잣집 대문 앞에 저 차가 서 있으면, 그 집 주인은 벌써 눈치를 채고 긴장했다는 설정이 자주 반복됐다.

극 중 그의 집에는 이름도 그냥 “개”라 불리는 바셋하운드 한 마리가 나온다. 늘어진 귀와 처진 눈매가 콜롬보 자신과 묘하게 닮아 있어서, 이 개가 나오는 장면마다 시청자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고 전해진다. 코트, 차, 개. 어느 것 하나 번듯한 게 없는 이 형사의 살림살이가 오히려 캐릭터를 완성했다.

안방에서 자란 “한 가지만 더요”

방영 요일 저녁이면 텔레비전 앞자리를 먼저 차지하려는 신경전이 있었다고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형은 채널을 돌리려는 동생 손을 막았고, 아버지는 뉴스보다 이 형사를 더 챙겨 보곤 했다. 어머니는 설거지를 미뤄두고 마루로 나와 앉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다음 날 저 말투를 흉내 내는 아이가 꼭 한둘 있었다. 친구에게 등을 돌렸다가 다시 돌아서며 “참, 한 가지만 더”를 외치는 게 은근한 유행이었다. 범인을 맞혔는지보다 저 대사를 얼마나 능청스럽게 따라 하는지가 더 중요했다.

주간지나 소년 잡지 뒷면에 외화 시리즈 소개 코너가 실리던 시절이었다. 형사 콜롬보도 종종 그런 지면에 등장했는데, 정작 사진 속 배우 얼굴보다 저 낡은 코트 실루엣 하나로 어떤 프로그램인지 금방 알아챘다는 회상이 많다. 이름이나 얼굴보다 옷차림과 걸음걸이 하나가 먼저 각인되는, 흔치 않은 캐릭터였다.

정작 사건 자체는 늘 시작부터 범인이 누구인지 화면에 드러나 있었다. 보통 추리물과 반대로 짜인 구조인데, 그래서 시청자는 “누가 범인이냐”가 아니라 “저 형사가 언제, 어떻게 알아채느냐”를 지켜보게 됐다. 궁금증의 방향이 다른 드라마와 달랐다.

한 회가 그렇게 길었는데도 왜 끝까지 봤을까

지금 기준으로 보면 한 회 분량이 꽤 길었다. 미국에서는 여러 형사물이 요일을 돌아가며 나오는 편성 안에 콜롬보가 포함돼 있었고, 국내에서도 한 회가 영화 한 편 분량으로 편성되는 날이 많았다. 어린아이들은 중간에 살짝 졸기도 했다는 회상이 많다.

그래도 자리를 뜨는 아이는 드물었다. 사건의 전말보다, 저 형사가 어디서 실마리를 잡아채는지를 놓치면 다음 날 학교에서 친구들 이야기에 낄 수 없었다. 그 부담감이 은근히 다음 회를 기다리게 만들었다.

수사반장 뒤편에 있던 그림자

비슷한 시기 안방을 지킨 국산 수사극 중 하나가 MBC 수사반장이다. 1971년부터 1989년까지 880회 넘게 이어지며 최고 시청률 70%를 넘긴 이 드라마는 “한국의 콜롬보 형사”로 불린 박 반장 캐릭터로 지금도 기억된다.

정치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격변이 잦았던 시절, 안방극장만은 매주 같은 요일 같은 형사가 돌아온다는 사실 하나로 꾸준함을 지켰다. 외화든 국산극이든 수사극이 그렇게 오래 사랑받았다는 건, 그 시절 사람들이 복잡한 세상 속에서 결국 진실이 밝혀지는 이야기에 기대고 싶어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시절에도 재방송을 기다리는 팬덤이 있었을까

지금 같은 팬클럽이나 인터넷 커뮤니티는 물론 없었다. 대신 방송이 끊겼다가 몇 년 뒤 다시 편성되는 패턴 자체가, 그만큼 다시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꾸준히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TBC에서 KBS로, 다시 MBC와 SBS로 넘어가며 스무 해 넘게 이어졌다는 사실은 방송사 편성표 담당자들도 이 형사를 쉽게 포기하지 못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친구들 사이에서 “이번 콜롬보는 봤냐”는 말 한마디로 대화가 시작되곤 했다는 회상도 있다. 정식 팬덤이라 부르긴 어려워도,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같은 화면을 보고 있었다는 감각 자체가 일종의 공동체였다.

Just One More Thing… (Columbo 공식 채널) — 문을 나서다 다시 돌아서는 그 순간들만 모은 영상.

지금 세대에게 낯설 수 있는 이야기

지금처럼 채널이 수백 개로 나뉘고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걸 골라보는 시대가 아니었다. 외국 드라마를 보려면 방송사가 정한 요일, 정한 시간에 텔레비전 앞에 앉아야 했고, 대사는 전부 성우 목소리로 새로 입혀졌다. 아이들은 피터 포크의 실제 목소리를 들어본 적 없이 자란 채, 최응찬의 목소리를 콜롬보 그 자체로 알고 컸다.

본방을 놓치면 다시 볼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비디오 대여점이 흔해지기 전이라 더더욱 그랬다. 다음 방영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도리가 없었고, 그사이 줄거리는 친구들 입을 거쳐 조금씩 부풀거나 어긋난 채 전해졌다.

더빙이라는 방식 자체도 지금 세대에게는 설명이 필요하다. 외국 배우의 원래 목소리를 지우고 성우가 새로 연기를 입히는 방식인데, 그 시절엔 이게 당연한 일이었다. 원어 그대로, 자막과 함께 보는 지금의 시청 방식과는 아예 다른 감상이었다. 성우 한 사람이 매주 같은 목소리로 등장한다는 것도, 원작을 모르는 어린 시청자에게는 그 자체로 익숙한 안정감이었다.

다락방 속 한 장면

저녁상을 물리고 나면 마루 텔레비전 앞으로 방석 몇 개가 다시 모였다. 화면 속 남자는 여전히 그 코트를 입고 있었고, 누군가는 이미 결말을 안다면서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광고가 나가는 틈에 누가 먼저 “참, 한 가지만 더요”를 흉내 냈고, 나머지는 웃음을 터뜨렸다. 텔레비전 불빛만 깜빡이던 그 마루가, 지금도 문득 떠오른다.

Just One More Thing! 50 Years of Columbo (Columbo 공식 채널) — 반세기를 돌아보는 짧은 회고 영상.

바바리코트가 남긴 것

형사 콜롬보는 화려한 총격전도, 자동차 추격전도 별로 없는 드라마였다. 낡은 코트 하나, 어수룩한 말투 하나로 20년 넘게 여러 채널을 오가며 재방영됐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다.

지금도 이 코트 이야기를 꺼내면 다들 픽 웃는다.

그 수수함이 오히려 오래 남았다. 화려한 액션 대신 대사 한마디로 사람들 기억에 자리를 잡은 드문 경우다. 요즘도 이 형사의 낡은 코트 이야기가 종종 다시 회자되는 걸 보면, 그 인상은 방영이 끝난 뒤로도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안방을 채운 다른 외화 시리즈들과 나란히 떠올려보면, 저마다 상징 하나씩을 남겼다는 공통점이 보인다. 누군가에게는 손목시계였고, 누군가에게는 자동차였다. 콜롬보에게는 그 코트였다. 여러분은 그 금요일 밤, 어느 자리에 앉아 저 형사를 보고 있었나요.

최종 업데이트: 2026-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