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당번의 추억, 유리병 우유와 그 시절 교실 풍경

교실 뒷문 앞에 쌓여 있던 노란 플라스틱 상자, 그 안에서 달그락거리던 우유병 소리를 기억하시나요. 순번표에 이름이 적힌 날이면 쉬는 시간마다 무거운 우유 상자를 나르느라 팔이 저렸던 기억, 다들 한 번쯤 있을 겁니다.

별것 아닌 심부름 같지만, 돌이켜보면 그 몇 분은 그 시절 교실을 이루던 작은 의식 중 하나였습니다.

당번의 하루, 그리고 흰 우유의 설움

우유 당번은 보통 그날그날 정해진 순번표에 따라 돌아가며 맡았습니다. 이름이 적힌 날 아침이면 은근히 부담스러우면서도, 친구와 짝을 지어 함께 나른다는 사실에 묘하게 들뜨기도 했습니다.

쉬는 시간이면 교무실 앞이나 급식실 근처에 쌓인 상자를 교실까지 낑낑대며 옮겨야 했고, 나눠준 뒤에는 다 마신 빈 병이나 팩을 다시 정리해 내놓아야 했습니다. 상자 하나에 우유가 몇 개 들었는지 세어보고, 반 인원수와 맞는지 확인하는 것도 당번의 몫이었습니다.

흰 우유와 딸기·초코우유가 함께 나오는 날이면, 인기 있는 맛은 순식간에 동나고 흰 우유만 상자 안에 덩그러니 남는 일이 흔했습니다. 남은 흰 우유를 억지로 나눠 마시거나, 선생님이 “다 마시고 가라”고 한마디 하면 마지못해 들이켜던 풍경도 낯설지 않았습니다.

우유값을 걷는 날도 있었는데, 저마다 꼬깃꼬깃한 지폐나 동전을 봉투에 담아 내던 그 짧은 순간도 지금 돌이켜보면 하나의 의식 같았습니다.

그 시절 교실 풍경은 방송사 아카이브 영상에도 짧게나마 남아 있습니다.

80년대 국민학교 급식 풍경, KBS 아카이브(옛날티비) 1985년 방송분

뚜껑을 열기 전, 코끝에 먼저 오는 냄새

더운 계절이면 우유 당번에게는 또 다른 고민이 있었습니다. 냉장 시설이 지금처럼 완비되지 않았던 교실에서, 아침 일찍 나눠준 우유가 점심시간까지 방치되면 뚜껑을 열기도 전에 코끝에 먼저 이상한 냄새가 스치는 날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유 괜찮나?” 하고 친구와 눈치를 주고받다가, 마시는 척하고 몰래 화단에 버리거나 조용히 처리하는 게 하나의 요령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위생상 아찔한 이야기지만, 그 시절엔 다들 그렇게 넘어가곤 했습니다.

우유를 유독 못 마시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배가 아프다며 손도 대지 않는 아이, 냄새만 맡아도 얼굴을 찌푸리는 아이까지 저마다 사정이 달랐습니다.

그런 친구의 몫을 대신 마셔주겠다고 나서는 아이가 한둘쯤 꼭 있었고, 그 작은 거래는 교실 안에서만 통하는 나름의 규칙이었습니다. 우유 하나를 두고도 이렇게 저마다의 사정과 요령이 오갔다는 게, 지금 돌아보면 꽤 흥미로운 교실 속 작은 경제였습니다.

유리병에서 종이팩으로

초기의 우유는 180밀리리터짜리 투명한 유리병에 담겨 있었습니다. 종이마개 한가운데를 검지로 꾹 눌러 뚫던 그 감촉, 그리고 다 마신 병을 씻어서 다시 상자에 담아 반납하던 절차까지도 그 시절 우유급식의 일부였습니다.

유리병은 깨질 위험이 있고 무거워서 나르기도 힘들었던 만큼, 훗날 종이팩으로 바뀐 건 우유 당번들에게도 반가운 변화였을 겁니다. 빈 병을 옮기다 하나라도 깨뜨리면 반 전체의 눈총을 받아야 했던 기억도, 그 시절 당번을 서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있을 겁니다.

다 마신 종이팩은 그냥 버리지 않고 미술 시간 준비물로 다시 쓰이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팩을 펼쳐 저금통을 만들거나, 여러 개를 이어 붙여 만들기 수업 재료로 쓰던 기억도 낯설지 않을 겁니다.

씻어서 말린 우유팩을 며칠씩 창가에 늘어놓던 풍경도, 지금 생각하면 나름의 재활용 교육이었던 셈입니다.

종이팩 시대의 우유급식 풍경은 당시 지역 방송 뉴스 화면에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영상 속 “우유 당번, 우유 가져와!” 하던 소리가 낯설지 않은 분들 많으실 겁니다.

1993년 학교 우유급식 뉴스 영상, MBC강원영동 아카이브

당번을 피하려던 아이와, 하고 싶어 하던 아이

우유 당번을 대하는 마음은 아이마다 갈렸습니다. 무거운 상자를 나르는 게 싫어 당번 순서가 다가오면 슬쩍 눈을 피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그 시간만큼은 선생님 대신 반을 관리하는 듯한 작은 책임감에 으쓱해하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몸이 약하거나 유독 힘을 못 쓰는 친구는 짝이 대신 무거운 쪽을 들어주기도 했고, 그런 배려가 딱히 말로 오가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뤄지던 것도 그 시절 교실의 풍경이었습니다.

짝꿍과 함께 당번을 서는 날엔 상자를 나르는 동안 나눈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정작 우유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기도 합니다. 그 며칠간의 역할이 끝나고 나면 다음 당번에게 순번표를 넘기며 은근한 안도감을 느끼던 것도, 동시에 어딘가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공통된 감정이었을 겁니다.

알고 보니, 이런 역사가 있었다

지금은 학교 우유급식이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처음 시작될 무렵엔 사정이 달랐습니다. 1970년 문교부가 초중고교에 유상 급식을 시작했을 때, 우유값을 내고 마시는 학생은 한 반 70명 중 20여 명도 안 됐다고 합니다.

값을 내야 했던 데다, 우유라는 음료 자체가 아직 낯설던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학교 우유급식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건 1981년입니다. 낙농업 보호와 아동 영양 개선을 목적으로, 유엔식량농업기구의 권고에 따라 전국 초등학교로 확대됐습니다.

이때부터 우유는 선택이 아니라 매일 마셔야 하는 정해진 일과가 됐고, 그 일과를 관리하는 역할로 ‘우유 당번’이 생겨났습니다. 그저 아이들 간식이 아니라, 낙농업 보호와 아동 영양이라는 국가 정책이 함께 얽힌 제도였던 셈입니다.

매일 전국의 학교로 우유를 실어 나르고, 상하지 않게 관리하고, 값을 걷고 정산하는 과정까지 생각하면 상당히 큰 유통·행정 체계가 뒷받침돼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거대한 체계의 가장 끝자락, 교실 안에서 상자를 나르던 역할이 바로 우유 당번이었던 셈입니다.

지금 세대는 잘 모르는 그 시절 이야기

요즘은 학교급식이 밥과 반찬을 포함한 정식 식사로 통합되면서, 우유만 따로 나눠주고 당번을 정해 관리하던 방식은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우유급식 자체도 매년 참여율이 줄어, 예전처럼 전교생이 당연히 마시는 풍경은 더 이상 흔치 않습니다.

요즘 급식실에서 우유가 나오더라도 개별 냉장고에서 원하는 만큼 꺼내 먹는 방식이 대부분이라, ‘우유 당번’이라는 역할 자체가 필요 없어진 셈입니다.

순번표를 짜서 돌아가며 반 전체의 몫을 책임지던 방식 자체가, 지금 아이들에게는 낯선 개념일 수 있습니다. 각자 알아서 챙기는 지금의 방식이 편리한 건 분명하지만, 그 시절엔 매일 몇 명이 반 전체를 위해 잠깐이나마 수고를 나눠 맡는 게 당연했습니다.

다락방 속 한 장면

급식 당번표에 이름이 적힌 날,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복도로 뛰어나갔다. 무거운 상자를 두 손으로 안고 교실까지 걸어오는 길, 안에서 병들이 부딪히며 달그락거렸다. 짝꿍이 반대편을 잡아주며 발을 맞췄다. 힘들었지만 어쩐지 그 소리가 싫지 않았다.

우유 당번이 남긴 것

진짜 기억에 남는 건 우유 한 팩이 아니라, 순번표에 적힌 이름과 짝꿍과 함께 나르던 상자, 그리고 그 며칠간 맡았던 아주 작은 책임감이었습니다. 큰 사건도, 대단한 업적도 아니었지만 그 몇 분의 역할이 모여 그 시절 교실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달그락거리는 유리병 소리가 문득 그리워지는 순간이 있다면, 그건 아마 그 시절 복도를 걷던 자신을 떠올리기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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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업데이트: 2026-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