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가 처음 들어오던 날, 그 시절 부엌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여름 저녁, 부엌 문턱에 파란 스티로폼 상자가 놓여 있었다. 얼음집에서 사 온 얼음덩이를 신문지에 싸서 넣고, 그 위에 밥과 반찬을 얹어두던 상자였다. 골목 끝 어느 집 마당에 냉장고가 처음 들어온 게 그 무렵이었다. 1965년 금성사가 국내 최초의 냉장고 GR-120을 내놓았지만, 3년이 지난 1968년에도 전국 보급 대수는 5만 대, 600가구에 한 대꼴이었다.

냉장고 한 대가 있고 없고로 부엌의 하루가 통째로 달라지던 시절이었다.

얼음 한 덩이를 나눠 쓰던 부엌

냉장고가 없는 집은 여름이면 얼음집에 사람을 보내는 게 일이었다. 큰 얼음덩이를 톱으로 썰어 신문지에 둘둘 말아 오면, 그걸 다시 잘게 쪼개 스티로폼 상자나 양은 대야에 담았다.

녹아내리는 얼음물이 상자 밑으로 새어 나오지 않게 헝겊을 받쳐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반찬 몇 가지는 그 얼음 옆에 두고, 상하기 쉬운 건 그날 안에 먹어 치우는 게 원칙이었다.

신문 생활정보란에 냉장고 없이 음식을 보관하는 요령이 실릴 정도였으니, 그만큼 흔한 고민이었다. 우물물에 수박을 담가두거나 처마 밑 그늘에 반찬통을 매달아 두는 집도 적지 않았다.

냉장고 있는 집, 골목의 부러움

동네에 냉장고를 들인 집이 생기면 그 소문은 금방 퍼졌다. 하얀 사각형 몸체가 부엌 한쪽에 떡하니 자리 잡은 걸 구경하러 이웃집 아이들이 슬쩍 놀러 오는 일도 흔했다.

문을 열면 훅 끼치는 서늘한 바람, 그 안에 얼음틀로 얼린 각얼음이 그득 든 걸 보여주면 다들 눈이 동그래졌다. 여름날 그 집에 가서 얼린 물이나 아이스크림을 얻어먹는 게 동네 아이들 사이의 작은 특권이었다.

김치 심부름을 갔다가 냉장고 문을 열어보고 온 아이는 학교에 가서 그 집 냉장고 이야기를 한참 늘어놓기도 했다. 냉장고는 그 자체로 한 집의 형편을 보여주는 물건이었다.

여름날 화채나 미숫가루를 얼음 동동 띄워 내주는 집에는 유독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냉장고 없는 집 아이가 그 집 냉장고 손잡이를 슬쩍 만져보고 가는 것도 그 시절 흔한 장면이었다.

그런가 하면 전기 요금을 걱정해 냉장고 코드를 낮에는 뽑아두는 집도 있었다. 밤에만 돌리거나, 식구들이 다 나간 사이엔 전원을 내려두는 알뜰함이 오히려 냉장고를 귀하게 다룬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이사 트럭에 제일 먼저 실리던 물건

이삿날이 되면 냉장고는 언제나 짐 목록 맨 위에 있었다. 다른 세간은 대충 싸도, 냉장고만큼은 이불로 두어 겹 감싸고 노끈으로 단단히 묶어 트럭 짐칸 안쪽 깊숙이 넣었다.

새집에 도착해 냉장고를 부엌 자리에 들여놓고 코드를 꽂으면, 그제야 이사가 끝난 기분이 들었다. 며칠은 냉장고가 텅 빈 채로 윙윙 소리만 내다가, 서서히 반찬통과 김치통으로 채워지곤 했다.

운반 도중 자칫 눕혀서 옮기면 안 된다는 말도 어른들 사이에 돌았다. 냉매가 흐트러져 고장 난다는 이야기였는데, 확실한 근거야 어쨌든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몇 시간이고 세워서 옮기는 집이 많았다.

이사 첫날 밤, 아직 정리도 안 된 부엌에서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만 유독 크게 들리곤 했다. 낯선 집이 그 소리 하나로 조금씩 익숙한 우리 집이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얼음 얼리기와 냉장고 문에 붙은 것들

냉장고가 생기고 나서도 한동안은 얼음을 얼리는 일 자체가 놀이였다. 누구 집 얼음틀이 더 빨리 어는지, 얼음이 더 투명하게 나오는지를 두고 은근한 자랑이 오갔다.

여름밤 친구를 불러 얼음을 깨 먹으며 노는 것도 새로 생긴 재미였다. 냉동실 한 칸을 몽땅 얼음틀로 채워 넣은 집도 있었다.

냉장고 문짝은 또 다른 쓰임새가 있었다. 자석으로 성적표를 붙여두거나, 반상회 안내문과 우유 배달 전표, 손으로 그린 달력을 붙여두는 자리가 됐다. 문을 여닫을 때마다 그 종이들이 팔랑거리던 것도 부엌의 흔한 풍경이었다.

김장철, 장독대와 냉장고 사이

겨울을 나려면 김장이 먼저였다. 마당 한쪽에 묻은 장독에 김장 김치를 담가 넣고, 겨우내 그 뚜껑을 여닫으며 꺼내 먹는 방식은 냉장고가 들어온 뒤에도 오래 이어졌다.

아파트로 옮겨 간 집들은 사정이 달랐다. 마당이 없으니 장독을 묻을 자리도 없었고, 김치를 냉장고 냉장실에 넣어두는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냄새였다. 김치 냄새가 반찬이며 과일에 배어드는 걸 두고 주부들의 불만이 적지 않았다.

1982년 금성사는 냉장실을 크게 키운 이른바 ‘한국형 냉장고’를 내놓았다. 야채와 김치를 많이 먹는 한국 가정의 식생활에 맞춘 설계였다. 그리고 1984년, 금성사와 대우전자가 나란히 김치 전용 칸을 갖춘 냉장고를 선보이며 ‘김치냉장고’라는 말이 처음 쓰이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집집마다 김치냉장고를 따로 들이게 되는 건 훗날의 일이다. 80년대의 냉장고는 아직 김치와 밑반찬, 여름 수박까지 한 몸에 떠안아야 하는 처지였다.

국산 냉장고 1호, 금성사 눈표

냉장고 이전에도 냉동기라는 기계 자체는 있었다. 금성사는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냉동기를 분해하고 다시 조립해보며 그 구조를 익혔고, 그렇게 얻은 기술로 1965년 냉장실과 냉동실이 한 칸에 붙은 GR-120을 완성했다. 저장 용량 120리터, 가격은 8만 5천 원이었다.

당시로서는 웬만한 봉급으로는 손대기 힘든 값이었다. 1965년 전국 보급률은 1퍼센트에도 못 미쳤다. 냉장고는 한동안 부유한 몇몇 집만의 물건으로 남았다.

삼성전자도 1974년 첫 냉장고를 내놓으며 뒤를 이었다. 타이머로 서리를 자동으로 없애는 간냉식 방식을 국내 최초로 적용한 제품이었다. 금성사 역시 1976년 국내 최초의 양문형 냉장고 GR-5000SS를 선보였다. 성에가 끼지 않는 간접 냉각방식을 택해, 앞으로 다가올 냉동식품 시대를 미리 대비한 모델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냉동실 한 칸이 따로 갖춰진 냉장고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그 안에 뭘 넣어야 할지부터 궁금해했다. 얼음과자를 얼려 먹거나 급하게 사 온 고기를 며칠 두고 먹는 정도가 초기 냉동실의 흔한 쓰임이었다.

금성이냐 삼성이냐, 골목의 작은 논쟁

냉장고를 새로 들이려는 집에서는 금성이 나은지 삼성이 나은지를 두고 은근한 논쟁이 벌어졌다. 친척 중 전파상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말이 곧 그 집 냉장고 브랜드를 정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텔레비전 광고에 냉장고가 나오는 시간이면 온 가족이 화면 앞으로 모여드는 일도 있었다. 하얀 문짝을 열어 가득 찬 식품을 보여주는 장면 하나만으로도 다음 날 학교에서 화제가 됐다.

금성사가 국내 최초 타이틀을 여럿 쥐고 있었다면, 삼성전자는 국산화율과 절전 기능을 앞세워 뒤를 바짝 쫓았다. 두 회사가 앞다퉈 신제품을 내놓는 동안, 냉장고는 해마다 조금씩 더 커지고 조금씩 더 저렴해졌다.

냉장고가 부엌의 필수품이 되기까지

197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냉장고는 대중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1978년 20퍼센트 절전 효과를 내세운 ‘하이콜드’를 내놓았고, 1979년에는 부품 전체를 국내에서 조달하는 100퍼센트 국산화를 이뤄냈다.

생산 대수로 보면 변화는 더 뚜렷하다. 1982년 국내 냉장고 생산량은 약 39만 7천 대였는데, 1987년에는 111만 6천 대까지 늘었다. 5년 사이 세 배 가까이 뛴 셈이다.

가구당 보유 대수도 1980년 0.58대에서 1989년 1.03대로 올라섰다. 한 집에 한 대꼴을 넘어선 것이다. 1986년 무렵에는 전국 보급률이 95퍼센트에 이르렀다는 조사도 있다. 88서울올림픽을 전후한 시기, 냉장고는 더 이상 부잣집 물건이 아니라 부엌의 당연한 살림살이가 되어 있었다.

그 사이 국가가 나서서 가격을 손보던 일도 있었다. 자동차 가격을 상공부가 조정하던 시절이었던 만큼, 가전제품 역시 정부의 물가 관리 대상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다.

월부로 냉장고를 들이는 집도 많았다. 방문판매원이 몇 달에 한 번씩 찾아와 할부금을 받아 가던 풍경, 통장 대신 두꺼운 종이 카드에 도장을 찍어주던 일도 그 무렵 흔한 살림 방식이었다.

지금 세대에게는 낯선 부엌 풍경

지금은 냉장고 없는 집을 상상하기 어렵다. 문을 열면 그날그날 원하는 걸 꺼내 먹으면 그만이고, 얼음도 정수기나 냉장고 안에서 저절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얼음 한 덩이를 나눠 먹는 일, 냉장고 문을 열어 서늘한 바람을 쐬는 일 자체가 여름을 나는 방법이었다. 냉장고 한 대를 들이는 게 곧 그 집이 형편을 갖췄다는 표시였던 시절의 감각은, 요즘 아이들에게는 좀처럼 와닿지 않을 것이다.

냉장고 문에 자석으로 이것저것 붙여두던 습관만큼은 여전히 남아 있다. 성적표 대신 아이 어린이집 그림이, 반상회 안내문 대신 배달 앱 스티커가 붙어 있을 뿐이다.

단독주택 마당에서 아파트 부엌으로 살림이 옮겨가던 흐름과 냉장고 보급 속도가 겹쳤다는 점도 지금 세대는 잘 모른다. 장독을 묻을 마당이 사라진 자리를 냉장고 냉장실이 대신 메워야 했다.

다락방 속 한 장면

여름 오후, 옆집 냉장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담장 너머로 들리면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귀가 쏠렸다. 하얀 문짝 안에서 흘러나오던 서늘한 바람, 얼음틀에서 갓 꺼낸 각얼음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호호 불던 손. 그 작은 얼음 한 조각이 그해 여름 가장 시원한 순간이었다.

냉장고가 바꿔놓은 부엌

얼음집을 오가던 심부름, 스티로폼 상자 밑으로 새던 얼음물, 문에 자석으로 붙여두던 종이들. 냉장고 한 대가 부엌에 들어오면서 그 모든 풍경이 조금씩 달라졌다.

금성사의 눈표 냉장고에서 시작해 삼성전자가 뒤를 잇고, 1980년대를 지나며 어느 집에나 있는 물건이 되기까지. 그 과정은 한 시대가 부엌을 다시 짓는 과정이기도 했다.

여러분의 집에는 냉장고가 언제 처음 들어왔나요. 그 문을 처음 열어보던 순간의 서늘한 바람이 아직 기억 어딘가에 남아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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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업데이트: 2026-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