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 한가운데 세운 장대 끝에, 한지를 발라 만든 커다란 박 두 개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습니다. 청군과 백군으로 나뉜 아이들이 그 아래 흩어진 콩주머니를 하나둘 주워 듭니다. 신호탄이 울리자마자 수십 개의 콩주머니가 동시에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몇 번의 빗맞음 끝에, 마침내 한쪽 박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박 터뜨리기는 대나무 소쿠리에 종이를 발라 박 모양으로 만든 다음 장대 높이 매달아두고, 양편이 콩주머니를 던져 먼저 터뜨리는 쪽이 이기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가을 운동회 프로그램 중에서도 유독 시끌벅적한 순서였습니다.
며칠 전부터 준비되던 커다란 박
이 박은 운동회 당일 아침에 갑자기 나타나는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고학년 학생들이나 선생님들이 대나무를 엮은 소쿠리 틀에 한지를 겹겹이 발라 말리는 작업을 했습니다.
속이 빈 커다란 공 두 개가 완성되면, 그 안에 색종이와 꽃가루, 그리고 접어놓은 현수막을 채워 넣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겉면에 청군과 백군을 구분하는 색을 칠하고 나서야 비로소 장대에 매달 준비가 끝났습니다.
운동회 전날, 운동장 한쪽에 세워진 장대와 그 끝에 걸린 두 개의 박을 보면 다음 날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이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다 괜히 한 번씩 올려다보게 되는 물건이었습니다.
콩주머니와 장대 아래 서 있던 아이들
콩주머니는 헝겊에 콩이나 팥을 채워 꿰맨 작은 주머니였습니다. 오자미라고도 불렀습니다. 학교에서 미리 만들어 나눠주기도 했지만, 집에서 어머니가 밤새 바느질해 만들어준 걸 들고 오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박이 매달린 장대는 아이들 키의 몇 배는 될 만큼 높았습니다. 낮게 던지면 소용없고, 정확히 박 한가운데를 맞혀야만 겨우 흔들렸습니다. 처음 몇 번은 빗나가기 일쑤였습니다.
저학년일수록 그 높이가 유독 야속하게 느껴졌습니다. 힘껏 던져도 박 근처에도 못 가고 떨어지는 콩주머니를 보며 발을 동동 구르던 기억이 남아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학년마다 달랐던 순서와 자리
박 터뜨리기는 보통 학년별로 순서를 나눠 진행했습니다. 저학년이 먼저 나서서 짧은 거리에서 던지고, 고학년으로 갈수록 던지는 위치가 조금씩 멀어졌습니다.
같은 학년 안에서도 반별로 순서가 정해져 있어서, 자기 반 차례가 될 때까지는 옆에서 다른 반이 하는 걸 구경하며 순서를 기다렸습니다. 앞선 반이 먼저 박을 터뜨리면 왠지 모르게 조바심이 났습니다.
박 터뜨리기 종목이 프로그램표에 적혀 있으면, 아이들은 그날 아침부터 몇 번째 순서인지를 서로 확인하며 다녔습니다. 자기 차례가 다가올수록 콩주머니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신호와 함께 벌어지던 몇 분간의 승부
출발 신호가 떨어지면 운동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이쪽저쪽에서 콩주머니가 쉴 새 없이 날아올랐고, 명중하지 못한 것들은 다시 주워져 던져졌습니다.
먼저 터진 쪽에서는 함성이 터졌습니다. 상대편이 채 터뜨리기도 전에 승부가 갈리면, 진 쪽 아이들은 아쉬운 얼굴로 손에 쥐고 있던 콩주머니를 슬며시 내려놓았습니다.
선생님들도 이 순간만큼은 마이크를 들고 중계에 열을 올렸습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라는 목소리가 확성기를 타고 운동장 전체에 울려 퍼졌습니다.
80년대 국민학교 가을 운동회, MBC강원영동 아카이브 영상
박 속에서 쏟아지던 색종이와 쪽지
박이 터지는 순간은 콩주머니를 맞히는 승부보다 오히려 그 다음이 더 궁금했습니다. 펑 소리와 함께 색종이와 꽃가루가 쏟아지고, 그 사이로 길게 접어둔 현수막이 스르르 펼쳐졌습니다.
현수막에는 대개 짧은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점심시간 직전에 터뜨리는 순서라면 “점심 맛있게 드세요” 같은 인사말이 흔했습니다.
그런데 이 문구가 늘 같은 말은 아니었습니다.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학술지에 실린 ‘운동회의 기억’ 연구에 따르면, 1970년대 후반 이 문구가 정부의 혼분식 장려 정책과 맞물려 ‘즐거운 점심시간’에서 ‘즐거운 혼분식’으로 바뀐 시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쌀이 부족하던 시절, 보리와 잡곡을 섞어 먹자는 캠페인이 도시락 검사로까지 이어지던 때였습니다. 그 캠페인 문구가 운동회에서 가장 신나는 순간, 박 속 색종이 사이에까지 끼어들어 있었습니다.
연구자들은 이런 변화를, 정부가 새마을운동 같은 국가 정책을 학교 행사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 넣으려 했던 흐름의 하나로 짚습니다. 아이들에게는 그저 신나는 종목 하나였지만, 그 안에는 시대의 구호가 함께 접혀 들어가 있었습니다.
동네잔치 같았던 만국기 아래
박 터뜨리기가 있는 날은 대개 운동회 전체가 마을 잔치처럼 북적였습니다. 만국기가 걸린 운동장 둘레로 돗자리가 펼쳐지고, 학교를 오가는 사람이 평소보다 몇 배는 많았습니다.
박 터뜨리기 순서가 다가오면 다른 볼일을 보던 어른들도 슬금슬금 트랙 쪽으로 걸어왔습니다. 자기 자녀가 나오는 순서가 아니어도, 색종이가 쏟아지는 그 장면만큼은 놓치기 아까웠습니다.
관중석에서도 함께 던지던 마음
관중석의 부모들도 이 순간만큼은 자리에서 몸을 들썩였습니다. 자기 아이가 던진 콩주머니가 박 언저리를 스치기만 해도 옆 사람과 함께 탄성을 질렀습니다.
박이 터지고 현수막이 펼쳐지면 카메라를 든 아버지들이 서둘러 셔터를 눌렀습니다. 그 사진 한 장이 나중에 앨범 한켠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진행을 맡은 선생님이 “이제 곧 터집니다!”라고 외치면 관중석 웃음소리가 한 번 더 커졌습니다. 정작 그 박은 한참을 더 버티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운동회 마지막 순서였던 청백계주만큼이나, 이 순간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트랙 쪽을 향해 몸을 기울이게 만들었습니다.
1982~2000년 순수했던 추억 속 운동회 모음집, 이어달리기·줄다리기와 함께 등장하는 박터트리기 장면 / 출처: KBS 뉴스 부산
터진 뒤에 벌어지던 또 하나의 승부
박이 터지고 나면 진짜 승부는 오히려 그때부터 시작됐습니다. 바람에 흩날리는 색종이와 꽃가루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주우려고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습니다.
손바닥만 한 색종이 몇 장을 주머니 가득 채워 넣고 뿌듯해하던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딱히 쓸 데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뭐라도 손에 쥐어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펼쳐진 현수막은 대개 선생님 두어 명이 양쪽에서 붙잡고 다시 접었습니다. 그 문구를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 내어 읽어주는 선생님도 있었고, 별말 없이 접어서 치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다락방 속 한 장면
장대 아래 발을 동동 구르며 콩주머니를 주워 들던 순간이 떠오른다. 몇 번을 빗맞히고 나서야 겨우 흔들리던 박, 그 순간 터져 나오던 함성. 색종이가 눈처럼 쏟아지고 현수막이 펼쳐지던 그 몇 초가, 운동회 하루 중 가장 짧고도 가장 뚜렷하게 남아있다.
콩주머니에 맞아본 기억
다 같이 콩주머니를 던지다 보면 종종 아찔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옆 사람을 향해 던지려던 게 아닌데도, 빗나간 콩주머니가 애먼 친구 머리에 맞는 일이 드물지 않았습니다.
맞은 아이는 잠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가도, 곧 자기 콩주머니를 주워 들고 다시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승부에 정신이 팔려 있으면 그 정도 아픔은 금방 잊혔습니다.
이 놀이는 어디에서 왔을까
지금 세대에게는 ‘박 터뜨리기’라는 이름 자체가 낯설 수 있습니다. 대나무나 종이로 큰 공 모양을 만들어 높이 매달고 무언가를 던져 터뜨리는 방식은, 사실 한국만의 것은 아닙니다.
나무위키 등에는 이 놀이가 일본의 콩주머니 던지기 놀이에서 건너왔다는 시각이 소개돼 있고, 지금도 일본 학교나 회사 체육대회에서 비슷한 방식을 볼 수 있다고 전해집니다. 남미에는 항아리 모양의 통을 매달아 터뜨리는 피냐타라는 비슷한 놀이도 있습니다.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닙니다. 요즘도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명랑운동회용품을 빌려주는 업체 목록에는 ‘박터트리기’ 세트가 여전히 올라와 있습니다. 다만 안에 들어가는 건 이제 정책 구호가 아니라 풍선이나 사탕, 응원 문구 정도입니다.
몇 해 전에는 어린이날 행사에서 박 터뜨리기가 다시 등장해 화제가 된 적도 있습니다. 그때 터진 박 안에서는 정책 문구 대신 아이들이 좋아할 선물 목록이 쏟아졌습니다. 만드는 재료와 방식은 비슷해도, 그 안에 무엇을 채워 넣는지는 시대마다 다르게 흘러왔습니다.
지금은 보기 힘든 그 풍경
요즘 학교 운동회에서 커다란 박을 장대에 매달아 놓고 콩주머니를 던지는 모습은 흔치 않습니다. 대나무 채반에 종이를 발라 미리 만들어둬야 하는, 손이 많이 가는 종목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그 자리는 훨씬 간단한 형태의 게임들이 채우고 있습니다. 콩주머니를 던지며 발을 동동 구르던 그 긴장감은, 이제 오래된 사진과 옛 방송 영상 속에서나 다시 만날 수 있는 장면이 됐습니다.
장대에 매달린 두 개의 박이 사라진 자리를, 요즘 아이들은 아마 다른 종목으로 채우고 있을 겁니다. 그래도 색종이가 쏟아지던 그 몇 초의 짜릿함만큼은, 어떤 종목으로도 완전히 대신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남은 이야기
장대 높이 매달린 박, 그 아래 흩어져 있던 콩주머니, 터지는 순간 쏟아지던 색종이까지. 박 터뜨리기는 짧은 몇 분 안에 운동회의 흥을 가장 크게 끌어올리던 종목이었습니다.
콩주머니를 몇 번이고 다시 주워 던져본 기억이 있다면, 그 장대 아래의 긴장을 함께 나눈 겁니다. 색종이가 쏟아지던 순간의 함성은, 문구가 무엇이었든 그때 그 운동장에서는 그저 가장 신나는 소리였습니다.
박 터뜨리기를 마지막으로 그날의 프로그램표는 절반쯤 넘어갔습니다. 남은 순서를 기다리면서도, 아이들은 방금 터진 박 이야기를 한동안 서로 주고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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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업데이트: 2026-08-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