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A vs 취권, 성룡이 몸을 던진 두 가지 방식

1984년 여름, 극장 간판에 그려진 시계탑 그림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는 사람들이 있었다. 시계탑 꼭대기에서 그대로 떨어지는 자세 하나만으로 극장 앞은 이미 소란스러웠다. 프로젝트A는 그해 7월 21일 국내 극장에 걸려 39만 명 가까운 관객을 모았고, 정작 홍콩에서는 그 전해 12월 개봉해 1984년 홍콩 흥행 1위에 올랐다.

감독 의자에 앉은 주연배우

포스터 맨 위에는 큼직한 글자로 감독과 주연이 같은 이름으로 적혀 있었다. 성룡은 이 영화의 각본을 에드워드 탕과 함께 쓰고 연출까지 맡으면서, 배우로서만이 아니라 만드는 사람으로서도 판을 짰다.

제작은 골든하베스트, 레이먼드 초우와 레너드 호가 힘을 보탰다. 성룡이 연출 의자에 앉은 게 이 영화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프로젝트A에서는 액션의 규모 자체가 이전과 달랐다.

같은 화면 안에 성룡과 홍금보, 원표가 나란히 서는 장면도 이 영화에서 처음 나왔다. 세 사람은 저마다 다른 무술 배경에서 출발해 저마다 다른 몸놀림으로 액션을 짰다.

홍금보는 육중한 몸으로도 빠르게 움직이는 액션을, 원표는 곡예에 가까운 발차기를, 성룡은 소품을 이용한 즉흥적인 몸싸움을 맡았다. 세 사람이 한 화면에 모이자 관객에게는 낯설고도 반가운 그림이 완성됐다.

당시 국내 흥행 성적표만 놓고 보면 39만 명이라는 숫자가 그리 압도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계탑 낙하 장면 하나가 입소문을 타고 퍼지면서, 이 영화를 안 본 사람도 그 장면 얘기만은 알고 있던 시절이었다.

시계탑에서 떨어진 건 대역이 아니었다

영화 후반, 성룡이 연기하는 마여룡은 시계탑 꼭대기에 매달렸다가 그대로 손을 놓는다. 약 18미터 높이, 아래에는 종이 상자와 차양 몇 개가 겹쳐 놓였을 뿐이었다.

성룡은 이 장면을 찍기까지 일주일 넘게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다고 전해진다. 두 번을 뛰어내렸는데도 마음에 차지 않아 세 번째까지 다시 떨어졌다.

그 결과로 목을 다쳤고, 자서전에는 촬영 이후 한 해 내내 두통에 시달렸다고 적혀 있다. 안전장치 없이 몸으로 부딪히는 방식은 성룡의 이전 영화들에서도 이어져 온 것이었지만, 이 장면에서는 위험의 크기 자체가 달랐다.

함께 떨어진 스턴트맨들도 성룡 못지않게 여러 번 낙하를 반복했다고 전해진다.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자리에서도 같은 높이, 같은 충격을 몇 번이나 견딘 사람들이 있었다.

이 낙하 장면은 1923년 무성영화 «마침내 안전!»에서 해럴드 로이드가 시계탑에 매달리는 장면에 대한 오마주로도 알려져 있다. 옛날 흑백영화 한 장면이 홍콩 액션 영화의 클라이맥스로 다시 태어났다.

20미터 추락 스턴트의 비밀, 프로젝트A 액션 비하인드 스토리 / 출처: JACKIE PARK

해적을 쫓는 낯선 배경, 홍콩 해양경찰

프로젝트A의 무대는 1911년 무렵의 옛 홍콩이다. 주인공은 몇 달째 배를 약탈해 온 해적 무리를 쫓는 홍콩 해양경찰 소속으로 등장한다.

바다를 지키는 경찰과 육지를 지키는 경찰이 서로 다른 조직으로 나뉘어 갈등하고, 그 안에는 부패한 인물까지 섞여 있다. 무협 활극이면서도 시대극의 얼개를 갖춘 구성이었다.

해적선과 항구, 옛 관공서 건물을 오가는 장면들은 그 시절 국내 극장에서 흔히 보던 무협영화나 형사물과는 결이 달랐다. 총과 칼, 맨몸 격투가 뒤섞이는 방식도 새로웠다.

해양경찰과 육지경찰이 서로 자기 구역만 지키려다 정작 해적을 놓치는 장면에서는 실소가 터졌다. 조직 간 알력다툼이라는 설정 자체가, 순수한 무협물만 보던 관객에게는 뜻밖의 웃음 포인트였다.

Project A(1983) 오리지널 예고편 / 출처: Unseen Trailers

취권과는 다른 몸짓

몇 해 앞서 국내 극장을 뒤흔든 성룡의 영화는 취권이었다. 취권 쪽 성룡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웃음을 주다가 순간 정확한 발차기를 뻗는 배우였다.

프로젝트A의 성룡은 웃기는 몸짓 대신 높은 곳에서 실제로 떨어지는 몸을 보여줬다. 취팔선권이 과장된 몸짓으로 관객을 웃겼다면, 시계탑 낙하는 웃음기를 걷어내고 진짜 위험을 보여주는 쪽이었다.

같은 배우가 몇 해 사이 코미디 무술에서 실제 스턴트로 무게중심을 옮겨 갔다. 두 영화를 나란히 보면 그 변화가 뚜렷하게 느껴진다.

취권 쪽 관객이 웃음 뒤에 감탄했다면, 프로젝트A 쪽 관객은 감탄 뒤에 걱정부터 앞섰다. 스크린 앞에서 느끼는 감정의 결 자체가 서로 달랐던 셈이다.

사형도수에서 시작된 원화평·성룡 콤비의 몸놀림이, 프로젝트A에 와서는 성룡 혼자만의 감각으로 확장된 흐름이기도 하다. 자전거를 타고 골목을 질주하다 2층 창문을 통과하는 장면처럼, 소품 하나하나를 무기 삼는 방식도 이 영화에서 한층 정교해졌다.

국내 극장가에 걸린 여름 무협 액션

1984년 여름 극장가에는 국산 영화와 외화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프로젝트A는 그 사이에서 무협과 코미디, 시대극을 뒤섞은 이색적인 선택지로 자리를 잡았다.

홍콩 현지에서는 미화로 환산해 약 266만 달러의 흥행 수입을 올렸고, 아시아와 유럽을 합치면 1800만 달러 안팎을 벌어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 39만 관객이라는 숫자는 그 흥행세의 일부였을 뿐이다.

포스터에 그려진 시계탑 그림, 극장 로비에 붙은 스틸사진 몇 장만으로도 이 영화가 어떤 장면을 품고 있는지 짐작하게 만들었다. 표를 끊기 전부터 이미 시계탑 장면 얘기가 먼저 돌았다.

학교 앞 문방구에도 이 무렵 성룡의 사진이 담긴 딱지와 브로마이드가 새로 들어왔다. 발차기 자세보다 유독 시계탑에 매달린 자세를 그린 그림이 인기였다.

골목에서 다시 뛰어내리던 아이들

영화를 보고 온 다음 날이면 동네 놀이터 정글짐이 갑자기 시계탑이 됐다. 아이들은 꼭대기 칸에 매달렸다가 뛰어내리는 시늉을 하며 서로 누가 더 그럴듯한지를 겨뤘다.

물론 진짜로 18미터를 뛰어내리는 아이는 없었다. 하지만 매달렸다 손을 놓는 그 짧은 순간의 몸짓만큼은 다들 흉내 내려 애썼고, 다치는 아이가 나올까 봐 어른들이 뜯어말리는 풍경도 흔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몇 번 만에 뛰어내렸대”라는 얘기가 마치 전설처럼 오갔다. 실제 촬영 횟수가 세 번이었다는 사실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었지만, 여러 번 다시 찍었다는 소문만으로도 그 장면의 무게는 충분히 전해졌다.

몇 해 지나 비디오 대여점이 동네에 자리 잡으면서, 극장을 놓친 사람들도 뒤늦게 프로젝트A를 빌려 보는 일이 잦아졌다. 케이스 표지에 실린 시계탑 낙하 사진 한 장만으로도 대여점 진열대에서 눈에 띄었다.

안전장치 없이 버티던 그 시절 촬영 현장

지금 기준으로 보면 이 시절 홍콩 액션 영화 현장은 안전을 챙길 여유가 많지 않았다. 무술 배우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부터 경극 학교 등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았고, 그 몸으로 위험한 장면까지 직접 소화했다.

매트리스 몇 장, 종이 상자 더미가 지금의 에어백을 대신했다. 실제로 다치는 배우가 나와도 촬영은 며칠 안에 다시 재개되곤 했다.

그 무렵 국내에서도 컬러텔레비전이 자리 잡고 극장가에 다시 활기가 돌던 시기였다. 화면 밖 현실이야 어떻든, 스크린 안에서는 몸을 아끼지 않는 액션이 관객을 계속 끌어당겼다.

홍콩 무술 배우들의 이런 사정은 국내 신문·잡지에 자세히 소개되지 않았다. 관객은 그저 화면에 나오는 몸짓만으로 저 배우가 얼마나 위험한 순간을 견뎠는지 짐작할 뿐이었다.

프로젝트A는 훗날 2015년 국내에서 재개봉하며 다시 한 번 스크린에 걸리기도 했다. 30년 넘게 지난 뒤에도 극장을 찾은 관객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영화가 남긴 인상이 얼마나 오래갔는지를 보여준다.

지금 세대가 낯설어할 것들

해양경찰이라는 말도 지금은 익숙하지만, 뱃길을 지키는 경찰과 육지 경찰이 따로 나뉘어 있었다는 설정 자체를 낯설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는 이 둘의 알력다툼이 웃음과 갈등을 동시에 만든다.

스턴트 대역이나 와이어, 컴퓨터그래픽으로 위험한 장면을 대신하는 지금 촬영 방식과 달리, 이 시절에는 배우 본인이 실제 높이에서 실제로 떨어지는 방식이 흔했다. 안전을 우선하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위태롭기 짝이 없는 촬영 현장이었다.

영화가 끝난 뒤 엔딩 크레디트에 NG 장면을 그대로 붙여 보여주는 방식도 이 무렵 성룡 영화에서 눈에 띄기 시작한 습관이었다. 실패한 낙하, 다시 일어서는 순간까지 가감 없이 보여주는 방식이 오히려 관객의 신뢰를 얻었다.

다락방 속 한 장면

동네 극장 로비에 걸려 있던 시계탑 스틸사진 앞에 한참 서 있던 기억이 떠오른다. 사진 한 장뿐인데도 그 순간의 아찔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영화가 끝나고 나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시계탑 얘기부터 꺼냈고, 그 장면 하나로 여름 한 철이 통째로 기억에 남았다.

프로젝트A가 남긴 것

시계탑에서 떨어진 몇 초의 장면 때문에 성룡은 한 해 내내 두통을 안고 살았다. 관객은 그 대가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명장면 하나를 얻었다.

홍콩 해양경찰이라는 낯선 배경, 세 스타가 처음으로 한 화면에 선 순간, 안전장치 없이 몸을 던진 배우의 선택까지. 프로젝트A는 여러 겹의 이야기를 한 편의 무협 액션 안에 눌러 담은 영화였다.

표를 끊기 전부터 시계탑 얘기가 먼저 돌던 그 여름, 극장 앞 풍경을 떠올리면 지금도 손에 땀이 밴다.

지금은 CG로 얼마든지 흉내 낼 수 있는 장면이지만, 실제 몸이 떨어지는 순간의 무게감만큼은 여전히 대체하기 어렵다. 프로젝트A가 오래도록 회자되는 이유도 결국 거기에 있는 것 같다.

프로젝트A 1편과 2편을 함께 돌아보는 리뷰 / 출처: 오인천의 영화맞춤제작소 KINEMAFACTORY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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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업데이트: 2026-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