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양식집 스피커에서 낯선 언어의 흥겨운 후렴구가 흘러나왔습니다. 무슨 뜻인지 몰라도 그 경쾌한 리듬만큼은 몸이 먼저 알아서 반응했습니다. 디스코텍 조명 아래에서도, 라디오 심야 프로그램 전파를 타고서도, 비슷한 시기에 유독 자주 들리던 그 목소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룹의 이름은 보니엠. 1976년 독일에서 결성된 이 혼성 그룹은 몇 년 사이 세계 곳곳의 디스코텍을 점령했고, 그 여파는 한국의 음악다방과 나이트클럽까지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화면으로 자주 접할 기회는 없었어도, 음악과 화보 사진만큼은 이미 익숙한 얼굴들이었습니다.
서인도제도에서 독일로, 그리고 세계로
보니엠 멤버들은 대부분 카리브해 연안 서인도제도 출신이었습니다. 자메이카, 아루바, 몬트세랫 등 각기 다른 섬에서 태어나 독일로 건너간 이들이 프랑크 파리안의 눈에 띄어 한 팀으로 묶였습니다. 서로 다른 섬에서 자란 네 사람이 유럽 디스코 사운드와 만나 완전히 새로운 색깔을 만들어낸 셈이었습니다.
이국적인 외모와 화려한 의상, 그리고 몸을 들썩이게 만드는 리듬까지 더해지면서, 보니엠은 순식간에 유럽을 넘어 아프리카, 그리고 냉전 시기 소련에서도 이례적으로 인기를 끈 서구 팝 그룹이 됐습니다. 서방 대중문화에 대한 통제가 엄격하던 동구권에서조차 암암리에 카세트테이프가 나돌 정도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만큼, 이 그룹의 인기는 이념과 국경마저 가리지 않고 널리 퍼져나갔습니다.
노래는 프로듀서가, 무대는 다른 이들이
보니엠은 처음부터 철저히 기획된 그룹이었습니다. 독일 프로듀서 프랑크 파리안이 작곡과 프로듀싱, 그리고 상당 부분의 보컬까지 직접 맡았고, 무대에 선 멤버들이 실제 노래를 부른 곡은 일부에 그쳤습니다. 리즈 미첼과 마샤 바렛이 보컬을 겸했다면, 바비 패럴과 메이지 윌리엄스는 화려한 퍼포먼스로 무대를 채우는 역할에 가까웠습니다.
이런 제작 방식은 몇 년 뒤 립싱크 논란으로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밀리 바닐리에도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같은 프로듀서 프랑크 파리안의 손에서 나온 기획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보니엠은 그 방식의 원조 격에 가까웠습니다.
대디쿨에서 라스푸틴까지
1976년 발표한 ‘대디쿨’과 1966년 원곡을 새로 편곡한 ‘써니’로 먼저 이름을 알린 보니엠은, 1978년 앨범 한 장에서 두 개의 큰 히트곡을 연달아 내놓으며 절정기를 맞았습니다. ‘리버스 오브 바빌론’은 영국에서 플래티넘 인증을 받으며 역대 베스트셀러 싱글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고, 뒤이어 나온 ‘라스푸틴’은 러시아 제국 시대의 인물을 소재로 삼아 독특한 존재감을 남겼습니다.
‘라스푸틴’의 멜로디는 러시아 민요 ‘칼린카’와 튀르키예 민요 가락을 재구성해 만든 곡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나라의 선율이 뒤섞여 만들어진 노래가 전 세계 디스코텍에서 울려 퍼졌다는 사실 자체가, 그 시절 대중음악이 얼마나 국경 없이 뒤섞이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써니’는 원래 1966년 미국 가수가 먼저 발표했던 곡을 새로 편곡한 것이었고, ‘대디쿨’ 역시 경쾌한 베이스라인과 다 함께 따라 부르는 합창 후렴으로 라디오 전파를 자주 탔습니다. 굳이 앨범을 따로 사지 않아도, 라디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보면 하루에 한 번쯤은 마주치는 익숙한 목소리들이었습니다.
Boney M. – Rivers Of Babylon (ZDF Disco, 1978)
빽판 한 장에 실려 온 세계 음악
정식 라이선스 음반이 흔치 않던 시절, 해외 히트곡을 접하는 가장 빠른 길은 빽판이었습니다. 청계천이나 세운상가 인근에서 은밀히 유통되던 이 복제 음반들은 표지 상태가 조악해도 음질만큼은 원곡 그대로였고, 보니엠 같은 해외 디스코 그룹의 곡도 이런 경로를 통해 학생들 손에 들어갔습니다.
음악다방 디제이에게 신청곡 쪽지를 건네던 것도 흔한 풍경이었습니다. 좋아하는 곡의 제목과 가수 이름을 종이에 적어 건네면, 잠시 후 스피커에서 그 곡이 흘러나왔습니다. 발음이 서툴러 곡명을 잘못 적어도, 디제이들은 대충 알아듣고 정확한 곡을 틀어주곤 했습니다.
친구 여러 명이 돈을 모아 빽판 한 장을 나눠 사는 경우도 흔했습니다. 순서를 정해 며칠씩 돌려가며 듣고, 좋아하는 곡은 카세트테이프에 따로 녹음해 각자 보관했습니다. 잡음 섞인 녹음 상태였지만, 그마저도 소중하게 여기던 시절이었습니다.
경양식집과 디스코텍을 타고 들어온 리듬
국내에 이런 해외 히트곡이 퍼진 경로는 라디오와 빽판이었습니다. 정식 음반 발매 전부터 불법 복제된 빽판이 음악다방과 학생들 사이를 돌았고, 심야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의 신청곡 코너에서도 심심찮게 흘러나왔습니다.
1980년대 들어서는 카바레, 나이트클럽,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전문 디스코텍까지 유흥 공간이 점점 더 세분화됐습니다. 정부의 이른바 ‘3S 정책’ 아래 유흥가 문화가 함께 번성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보니엠처럼 리듬이 강한 유럽 디스코 음악은 이런 공간들의 단골 선곡이었을 것으로 짐작할 만큼, 당시 디스코 열풍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대학가 근처 카페나 롤러장에서도 비슷한 음악이 자주 흘러나왔습니다. 롤러스케이트를 타며 몸을 흔들던 아이들에게도, 디스코텍 조명 아래 밤늦게까지 남아있던 어른들에게도, 보니엠의 리듬은 세대를 가리지 않고 골고루 스며든 셈이었습니다.
가사를 정확히 알아듣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후렴구 멜로디 하나만으로 디스코텍 플로어를 가득 채우기엔 충분했습니다.
미군 부대 주변 클럽에서 흘러나오던 팝 음악이 자연스럽게 주변 상권으로 퍼져나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AFKN 라디오 채널을 통해 먼저 곡을 접한 뒤, 나중에야 정식 음반이나 빽판으로 다시 만나는 순서도 드물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 젊은이들에게 최신 해외 히트곡을 접하는 통로는 한두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갈래로 뒤섞여 있었습니다.
다락방 속 한 장면
경양식집 구석 자리에 앉아 돈가스를 썰던 기억이 떠오른다. 스피커에서 낯선 후렴구가 흘러나오자 옆 테이블 언니 오빠들이 어깨를 들썩였다. 무슨 노래인지도 몰랐지만, 그 리듬만큼은 지금도 귀에 남아있다.
이국적인 무대 의상이 남긴 인상
보니엠의 무대는 음악만큼이나 시각적으로도 강렬했습니다. 화려한 색감의 의상과 큰 동작의 안무, 그리고 바비 패럴 특유의 과장된 표정과 몸짓은 텔레비전 화면으로 봐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국내 방송에서 해외 가수의 공연 영상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던 시절이라, 어쩌다 화면에 잡힌 그 무대 모습은 더 강렬하게 각인됐습니다.
패션에 관심 많은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이런 화려한 무대 의상이 은근한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통이 넓은 바지, 반짝이는 셔츠, 과감한 색 조합까지, 디스코 패션의 상당 부분이 이런 해외 그룹들의 무대에서 힌트를 얻어 퍼져나갔습니다.
영화 잡지나 음악 잡지 화보에 실린 사진을 오려 방 벽에 붙여두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정작 실제 공연을 눈앞에서 볼 기회는 좀처럼 없었지만, 사진 한 장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만으로도 화려한 그 무대를 나름대로 상상해보기엔 충분했습니다.
화려한 무대 뒤에 가려진 갈등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과 달리, 그룹 내부 사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수익 대부분이 프로듀서 프랑크 파리안에게 돌아가는 구조였고, 정작 무대에 섰던 멤버들에게 돌아가는 몫은 크지 않았습니다. 이런 불만이 쌓이면서 보니엠은 1980년대 후반 결국 해체 수순을 밟았습니다. 이후 멤버들은 저마다 다른 이름으로 무대에 서기도 했지만, 전성기의 화력을 다시 재현하지는 못했습니다.
화면 속에서는 늘 웃으며 춤추던 멤버들이었지만, 그 뒤에는 기획사와 프로듀서 중심으로 돌아가던 당시 음악 산업의 그늘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 속사정을 전혀 알 리 없던 대다수 팬들에게 보니엠은 그저 신나는 디스코 음악의 대명사였을 뿐이었습니다. 무대 뒤 갈등이 세상에 알려진 건 한참 뒤의 일이었고, 그 시절 디스코텍 플로어를 채우던 사람들에게는 리듬과 후렴구가 전부였습니다.
Boney M. – Rasputin (1978)
세월이 지나도 남은 후렴구
보니엠이 해체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라스푸틴’과 ‘리버스 오브 바빌론’은 여전히 결혼식 피로연이나 회사 행사, 각종 모임의 흥을 돋우는 단골 곡으로 남아있습니다. 최근에는 다른 장르 뮤지션들이 이 곡들을 새롭게 편곡해 젊은 세대에게 소개하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어, 원곡을 몰랐던 사람들도 뒤늦게 멜로디를 접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정작 예전에 라디오와 빽판으로 이 노래들을 처음 만났던 사람들에게는, 새 버전보다 옛날 그 목소리와 리듬이 여전히 더 익숙하고 반갑게 느껴질 겁니다.
남은 이야기
낯선 언어의 후렴구, 경양식집 스피커를 타고 흐르던 리듬, 그리고 화려한 무대 뒤에 가려졌던 갈등까지. 보니엠은 화면 밖 사정을 몰라도 충분히 몸을 흔들게 만드는 노래를 남긴 그룹이었습니다.
가사도 모른 채 후렴구만 흥얼거려본 기억이 있다면, 그 디스코텍의 리듬을 함께 나눈 겁니다. 지금도 라디오에서 옛 가요 특집을 틀다가 이 곡들이 흘러나오면, 저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이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겁니다.
정식 음반 한 장 사기 어려웠던 시절에도, 리듬 하나만큼은 국경도 세대도 가리지 않고 퍼져나갔습니다. 보니엠이 남긴 건 결국 그때 그 사람들의 몸이 먼저 기억하는 몇 초의 멜로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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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업데이트: 2026-07-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