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진열대에 낯선 초록 표지 하나가 끼어든 건 1991년 12월이었다. 옆자리엔 이미 자리를 잡은 아이큐점프가 있었다. 애니메이션 제작·수입을 하던 대원동화가 12월 5일 처음 펴낸 주간 만화잡지 소년챔프는, 제호부터 아이큐점프를 정면으로 겨냥한 후발주자였다.
만화 시장에 처음 발 들인 애니메이션 회사
대원동화는 원래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수입하던 회사였다. 만화 잡지 시장에 뛰어든 건 이 무렵이 처음이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더빙·수입으로 이미 이름을 알린 회사였다. 원작 만화의 판권을 쥐고 있다는 점이 출판 진출을 결심한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서울문화사는 이미 1988년 아이큐점프로 10만 부가 넘는 발행부수를 찍고 있었다. 새로 뛰어드는 입장에서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창간호 표지를 장식한 건 고행석 작가의 마법사의 아들 코리였다. 일본 작품 3×3 아이즈도 나란히 초기 지면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 창작만화와 일본 수입작을 나란히 앞세우는 편집 방향이었다. 이미 자리를 잡은 경쟁지 옆에서, 신생 잡지가 택할 수 있는 나름의 승부수였다.
창간 직후 몇 달은 눈에 띄는 반응이 크지 않았다. 서점 진열대 한켠에 조용히 자리를 잡는 정도였다.
창간 초기 가격은 아이큐점프와 비슷한 1000원 안팎이었다. 큰 부담 없이 용돈으로 사 볼 수 있는 값이었다.
슬램덩크가 뒤집은 판도
1992년,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농구 만화 슬램덩크가 소년챔프 7호부터 연재를 시작했다. 아이큐점프가 드래곤볼로 벌써 재미를 보고 있던 시점이었다.
주인공이 처음 농구화 끈을 묶는 장면부터, 교실에서는 슬램덩크 이야기가 빠르게 번져 나갔다. 드래곤볼이냐 슬램덩크냐를 놓고 서점 앞에서 저울질하는 아이들이 하나둘 늘었다.
두 잡지 모두 이 무렵 20만에서 30만 부 사이 판매를 기록했다고 알려져 있다. 후발주자로 시작한 소년챔프가 처음으로 아이큐점프와 대등하게 맞서는 순간이었다.
강백호가 코트 위에서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는 농구를 몰랐던 아이들까지 끌어들였다. 쉬는 시간마다 누가 이번 화를 먼저 봤는지를 두고 은근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복도에서 괜히 덩크슛 흉내를 내며 뛰어다니던 아이도 한둘은 있었다. 체육 시간이면 농구공을 쥐는 손에 유독 힘이 들어갔다.
공책 겉장에 북산고 유니폼을 흉내 낸 그림을 그려 넣는 아이들도 있었다. 채치수, 서태웅 같은 이름을 서로 불러가며 반을 나눠 농구를 하기도 했다.
초판 슬램덩크(소년챔프 코믹스) 만화책 실물 리뷰 영상
두 손 가득 잡지를 사던 무렵
드래곤볼을 보려면 아이큐점프를, 슬램덩크를 보려면 소년챔프를 사야 했다. 용돈이 넉넉한 날은 두 권을 한꺼번에 사서 나눠 보는 아이들도 있었다.
서점 주인 입장에서는 반가운 구도였다. 두 잡지를 나란히 진열해 두는 것만으로 매대 앞에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친구와 서로 다른 잡지를 사서 돌려 보는 것도 흔한 요령이었다. 한 명이 소년챔프를, 다른 한 명이 아이큐점프를 사 오면 자연스럽게 둘 다 읽을 수 있었다.
표지 뒷면에는 학용품과 문구 광고가 빼곡했다. 만화만큼이나 그 광고 페이지를 유심히 넘겨보며 다음에 살 준비물을 점찍어 두던 아이들도 있었다.
가끔 딸려 오는 부록도 큰 즐거움이었다. 캐릭터 스티커나 미니 포스터가 끼워져 있으면, 본편보다 그 부록부터 먼저 펼쳐 보는 아이들이 많았다.
좋아하는 캐릭터 부록이 나온 주에는 같은 호를 여러 권 사서 부록만 모으는 경우도 있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이번 주 부록이 뭔지가 먼저 화제에 올랐다.
세뱃돈이나 용돈을 두둑이 받은 날은 아예 두 잡지를 함께 사서 나란히 쌓아 두기도 했다. 그런 날은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곤 했다.
학교 앞 문방구까지 번진 인기
슬램덩크 인기는 만화잡지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학교 앞 문방구 진열대에도 관련 상품이 하나둘 놓이기 시작했다.
책받침이나 공책 표지에 농구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문구용품이 인기를 끌었다고 전해진다. 정식 라이선스 여부와 상관없이, 아이들 사이에서는 그저 반가운 물건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공책 뒷면에 슬램덩크 캐릭터를 따라 그리는 아이들도 흔했다. 잘 그린 그림 한 장이면 친구들 사이에서 며칠은 화제가 됐다.
문방구 주인 입장에서도 반가운 유행이었다. 신학기마다 어떤 캐릭터 문구가 잘 팔리는지가 은근한 관심사였다고 전해진다.
필통이나 지우개 하나에도 만화 속 캐릭터가 새겨져 있으면 그 자체로 자랑거리가 됐다. 새 학기 준비물을 사러 가는 길에도, 아이들 손은 먼저 그런 물건들 쪽으로 향하곤 했다.
형제자매가 다투던 순서
한 집에 형제나 남매가 있으면 어느 잡지를 먼저 사올지, 누가 먼저 읽을지를 두고 실랑이가 붙는 일도 흔했다.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하고, 진 쪽은 표지만 흘끔거리며 자기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다 읽고 나면 서로 어느 쪽 만화가 더 재미있었는지 우기며 다투기도 했다.
국내 작가들이 지켜낸 자기 얼굴
일본 만화 수입에만 기댔다는 평가도 없지 않다. 그래도 마법사의 아들 코리는 소년챔프 창간부터 오랫동안 자리를 지킨 국내 창작만화였다.
고행석 작가 특유의 능청스러운 개그와 판타지가 뒤섞인 이야기는, 슬램덩크·드래곤 퀘스트 다이의 대모험 같은 수입작 사이에서도 제 몫을 했다. 표지가 늘 화려한 액션물 차지는 아니었다.
3×3 아이즈, 고스트 스위퍼 같은 일본 작품들도 함께 지면을 채웠다. 여러 장르가 한 권 안에 뒤섞여 있다 보니, 좋아하는 작품 하나만 보려 해도 잡지 전체를 사야 했다.
표지를 넘기면 두께부터 만만치 않았다. 여러 작가의 연재분이 한 권 안에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서, 하루 이틀로는 다 읽기 힘든 분량이었다.
개그와 판타지, 스포츠물이 한 권 안에 뒤섞여 있다 보니, 좋아하는 장르가 서로 다른 형제자매가 한 권을 나눠 보는 집도 있었다.
1992년 11호 주간만화잡지 소년챔프 실물 리뷰 영상
정해진 요일이 사라진 뒤
2002년 11월, 잡지는 소년챔프에서 코믹챔프로 제호를 바꿨다. 매주 나오던 발행 주기는 2006년 무렵 격주간으로 바뀌었다.
만화 시장의 무게중심이 잡지에서 단행본으로 옮겨가면서, 정해진 요일마다 서점 문을 밀고 들어가던 풍경도 조금씩 옅어졌다.
2013년에는 자매지 영챔프와 통합되며 지면 구성도 달라졌다. 매주 새 표지를 기다리던 감각은 그렇게 서서히 자리를 옮겨갔다.
서점 앞에 줄지어 진열되던 만화잡지 코너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 많던 잡지들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는 걸 지켜본 것도 이 무렵이다.
경쟁지 아이큐점프도 비슷한 시기 격주간으로 발행 주기를 바꿨다. 두 잡지가 나란히 서점 매대를 채우던 시절도 함께 저물어 갔다.
만화가 불러온 농구 붐
슬램덩크 인기는 만화잡지 지면 밖에서도 번져나갔다. 1990년대 초반 국내 농구 붐이 이 만화와 맞물렸다는 평가가 있다.
대학농구를 다루던 농구대잔치는 이 무렵 흥행에 힘을 얻었고, 관중석이 소녀 팬들로 채워지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농구선수가 아이돌급 인기를 누리던 것도 이 즈음이었다.
만화 속 ‘왼손은 거들 뿐’이라는 대사를 흉내 내며 체육 시간마다 농구공을 잡던 손이 하나둘 늘어갔다. 소년챔프 한 권이 교실 밖 운동장 풍경까지 조금씩 바꿔 놓았다.
농구대잔치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마지막 승부는 1994년 방영되며 농구 인기를 한 번 더 끌어올렸다. 슬램덩크의 실사판이라는 평이 나올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지금 세대는 잘 모르는, 그 시절 만화잡지 사는 법
지금은 웹툰을 스마트폰으로 넘겨보지만, 그때는 정해진 요일에 서점이나 문방구에 나가야 다음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소년챔프도 아이큐점프처럼 매주 같은 요일에 신간이 들어왔다.
용돈이 부족한 주에는 만화방에서 빌려 보거나 이미 산 친구에게 빌려 읽는 게 자연스러운 순환이었다. 다 읽은 잡지는 서로 맞바꿔 보다가 결국 만화방 서가로 흘러들어가곤 했다.
지금 세대에게는 ‘두 잡지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는 상황 자체가 낯설 수 있다. 지금처럼 검색 몇 번으로 다른 작품을 바로 찾아볼 방법이 없었으니, 친구가 사 온 잡지가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였다.
만화가 아직 곱게 보이지 않던 시절이라, 표지를 교과서 사이에 슬쩍 끼워 다니던 아이들도 있었다. 그래도 슬램덩크와 마법사의 아들 코리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만큼은 숨기기 어려웠다.
다락방 속 한 장면
서점 앞에서 소년챔프와 아이큐점프 사이를 한참 고민하던 손이 떠오른다. 표지 한 장 차이로 이번 주는 어느 쪽을 데려갈지 정해야 했다. 용돈이 남는 주엔 두 권을 한꺼번에 품에 안고 걷던 길이, 유독 든든하게 느껴졌다.
소년챔프가 남긴 것
후발주자로 시작해 슬램덩크 하나로 판도를 흔들고, 마법사의 아들 코리로 자기만의 얼굴도 지켜낸 잡지. 소년챔프는 그렇게 아이큐점프와 나란히 그 시절 만화잡지의 양대산맥이 됐다.
제호는 코믹챔프로 바뀌었고, 소년챔프라는 이름 자체를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많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서점 앞에서 두 잡지 사이를 저울질하던 그 감각만큼은 이 시기를 거쳐 간 이들 사이에 여전히 남아 있다. 강백호가 첫 골을 넣던 장면을 교실에서 흉내 내던 기억까지도.
마법사의 아들 코리를 그리던 고행석 작가도, 국내 농구 붐을 함께 지켜본 세대도, 이 잡지 한 권을 거쳐 간 사람들이다. 표지 한 장이 이렇게 여러 갈래로 이어질 줄은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낡은 잡지 한 권을 다시 마주친다면, 두 손 가득 잡지를 들고 걷던 그 걸음이 먼저 떠오를 사람이 여전히 많을 것이다. 서점 앞에서 어느 쪽을 집어 들지 고민하던 그 잠깐의 망설임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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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업데이트: 2026-09-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