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교동 뒷골목, 좁은 계단을 내려가면 담배 연기와 기타 줄 튕기는 소리가 뒤섞여 있었습니다. 스무 살 남짓한 청년 하나가 통기타를 무릎에 얹고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하면, 좁은 홀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지곤 했습니다. 송창식은 1968년 윤형주와 함께 트윈폴리오를 결성해 통기타 듀오로 가요계에 나섰고, 1975년 발표한 고래사냥과 왜 불러로 한 해 동안 가요계를 사실상 장악했습니다.
무교동 골목의 기타 소리
1968년 2월, 송창식과 윤형주는 트윈폴리오라는 이름으로 첫 앨범을 냈습니다. 데뷔곡은 하얀 손수건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화음은 당시 유행하던 트로트나 스탠더드팝과는 결이 달랐습니다. 기타 하나, 목소리 둘. 그것만으로 무대가 채워진다는 사실 자체가 낯설던 시절이었습니다.
화려한 밴드 반주도, 요란한 조명도 없었습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눈을 맞추며 화음을 쌓아 올리는 모습만으로 객석이 조용해졌습니다.
이전까지 무대의 중심은 대개 화려한 편곡과 오케스트라였습니다. 그런 흐름 속에서 기타 반주만으로 노래를 완성하는 방식은 그 자체로 새로운 실험이었습니다.
트윈폴리오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윤형주가 유학을 준비하면서 1969년 말 활동이 사실상 멈췄습니다. 하지만 그 짧은 활동 기간에 통기타라는 악기가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셈이었습니다.
쎄시봉과 오비스캐빈, 청춘이 모이던 자리
무교동 좁은 계단 아래에는 쎄시봉이라는 음악감상실이 있었습니다. 서린동과 무교동 일대에 자리 잡은 이곳은 한국 최초의 대중음악감상실로 꼽힙니다.
조영남, 윤형주, 김세환, 이장희 같은 이름들이 이 좁은 공간을 드나들며 청춘을 보냈습니다. 명동 쪽에는 오비스캐빈이라는 또 다른 음악감상실이 있어, 두 곳이 통기타 문화의 양대 거점 노릇을 했습니다.
레코드를 틀어주는 곳에서 출발했지만, 점차 젊은 가수들이 직접 기타를 들고 무대에 올랐습니다. 손님들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와 음료 한 잔을 시켜놓고 몇 시간이고 자리를 지켰습니다.
무대라고 해봐야 몇 계단 높이 정도였고, 조명도 소박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좁은 자리에서 노래하는 것 자체가 청년들에게는 특별한 기회였습니다.
손님 대부분은 또래 대학생과 취업 준비생이었습니다. 신청곡 쪽지를 접어 무대 쪽으로 건네던 손길도, 그 쪽지를 펼쳐 읽고 웃던 가수의 표정도 그 공간을 채우던 풍경이었습니다.
1969년 5월, 무교동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쎄시봉은 문을 닫았습니다. 하지만 그곳을 거쳐 간 얼굴들은 이후 각자의 자리에서 통기타 음악을 대중 앞에 세웠습니다.
혼자가 된 목소리, 히트곡이 쏟아지던 시절
트윈폴리오가 사실상 해체된 뒤, 송창식은 혼자 마이크 앞에 섰습니다. 1971년 창밖에는 비 오고를 내놓으며 솔로 가수로서 다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1974년에는 피리 부는 사나이가 크게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75년, 한 번쯤과 고래사냥, 왜 불러가 잇따라 발표되며 그해 여러 가요상을 휩쓸었습니다.
라디오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다방에서, 자취방에서, 학교 앞 레코드 가게에서 같은 곡이 반복해서 재생되던 풍경을 떠올리면 그 목소리가 먼저 생각납니다.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에 엽서로 신청곡을 보내던 학생들도 많았습니다. 다음 날 방송에서 자기 이름이 불리고 원하던 곡이 흘러나오면 그것만으로 하루가 특별해졌습니다.
대학 축제 무대에서는 통기타 동아리 학생들이 그의 노래를 즐겨 불렀습니다. 코드 몇 개만 알면 따라 부를 수 있다는 점도 인기의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송창식 – 한 번쯤 [콘서트7080] KBS 2007년 방송
고래를 찾아 나선 노래, 그리고 금지된 노래
1975년 개봉한 영화 바보들의 행진은 하길종 감독의 작품이었습니다. 그 영화의 주제곡이 바로 고래사냥이었습니다.
영화 속 청년들은 답답한 현실 앞에서 “고래를 잡으러 동해 바다로 떠나자”고 노래합니다. 실제로 고래를 잡으러 가자는 뜻이 아니라, 어딘가 있을 법한 탈출구를 향한 마음을 담은 가사였습니다.
송창식 – 고래사냥 [쇼특급] KBS 1988년 방송
같은 영화에 삽입된 왜 불러는 다른 운명을 맞았습니다. 영화 속에서 장발 단속을 피해 달아나는 청년들 장면에 이 노래가 흘러나왔는데, 공권력을 조롱하는 의미로 해석되면서 1975년 금지곡 명단에 올랐습니다.
그해는 유신정권이 가요 정화운동을 벌이던 시기였습니다. 신중현, 김추자, 이장희 같은 동료 음악인들도 비슷한 시기에 활동에 제약을 받았습니다. 왜 불러가 금지곡이 됐다는 소식이 오히려 입에서 입으로 노래를 더 퍼뜨렸다는 얘기도 전해집니다.
정작 가사 어디에도 정치적인 단어는 없었습니다. “왜 불러”라는 짧은 반문 하나가 방송에서 사라진 이유였습니다. 노래방도, 스트리밍도 없던 시절이라 금지곡은 라디오와 다방에서 은근슬쩍 이어지는 방식으로만 살아남았습니다.
송창식 – 왜 불러 [쇼특급] KBS 1988년 방송
이후로도 송창식의 노래는 계속됐습니다. 1980년에는 가나다라를, 1986년에는 담배가게 아가씨를 직접 짓고 불러 다시 한번 대중 앞에 섰습니다.
가나다라와 담배가게 아가씨, 다시 흥얼거리게 만든 노래
1980년에 나온 가나다라는 제목부터 장난스러웠습니다. 한글 자음을 그대로 노래 가사에 끌어들여 흥얼거리기 쉽게 만든 곡이었습니다.
1986년 담배가게 아가씨는 송창식이 직접 짓고 부른 노래였습니다. 담배 한 갑 사러 갔다가 마음을 뺏긴다는 소박한 이야기를, 무거운 서정 대신 가볍고 익살스러운 가락에 담았습니다.
고래사냥과 왜 불러의 무게감과는 다른 결이었습니다. 같은 목소리에서 이렇게 다른 색깔이 나올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곡들입니다.
동네 노래자랑이나 회사 야유회 장기자랑에서도 가나다라는 단골 레퍼토리였습니다. 가사를 몰라도 자음 순서만 따라가면 얼추 흥이 났습니다.
2025년, 다시 모인 쎄시봉
2025년 여름, 명동의 한 공연장에서 송창식과 함춘호가 콘서트를 열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같은 해에는 조영남, 윤형주, 김세환까지 함께 무대에 서며 쎄시봉 결성 57년 만에 완전체로 모였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무교동 좁은 계단 아래에서 노래하던 청년들이 어느새 여든 안팎의 나이가 됐습니다. 그런데도 무대 위에서는 그때와 다르지 않은 통기타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지금 세대에게 낯선 이름, 음악감상실이란
요즘 젊은 세대에게 음악감상실이라는 말은 낯설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스트리밍 앱에서 곡을 고르는 게 아니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공간에 앉아야만 그 음악을 들을 수 있던 시절의 산물이었습니다.
레코드판 한 장이 귀하던 때, 음악감상실은 신청곡을 틀어주고 가끔은 가수가 직접 노래하는 작은 공연장이자 사교의 장이었습니다. 지금의 라이브 클럽과 카페를 절반씩 섞어놓은 모습에 가깝습니다.
그 시절 사람들의 기억
교실 뒤편, 친구가 몰래 가져온 노트에 고래사냥 가사가 삐뚤빼뚤 적혀 있던 걸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타를 배우겠다고 나섰다가 며칠 만에 손끝이 아파 그만둔 기억도 흔한 얘기입니다.
수학여행 밤, 숙소 마룻바닥에 둘러앉아 누군가 꺼낸 기타 하나로 반 전체가 노래를 이어 부르던 밤도 있었습니다. 정확한 코드를 몰라도 대충 흉내만 내면 그만이었습니다.
버스 안 라디오에서 왜 불러가 흘러나오면 운전기사 아저씨가 슬쩍 볼륨을 높이던 장면도 있었습니다. 금지곡이라는 말은 오히려 그 노래를 더 궁금하게 만들었습니다.
통기타 하나 들고 다니는 대학생이 부러움의 대상이던 때였습니다. 청바지에 통기타, 그리고 낮고 굵은 목소리. 그것이 그 무렵 청년다움을 나타내는 하나의 기호였습니다.
음악책 뒤편 여백에 코드표를 옮겨 적어가며 밤늦게 기타를 튕기던 손끝도 있었습니다. 이웃집에서 시끄럽다고 한마디 들어도 다음 날이면 또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곡을 되풀이했습니다.
레코드 가게 진열창 앞에서 새로 나온 음반 재킷을 한참 들여다보던 걸음도 그 무렵 흔한 풍경이었습니다. 정작 살 돈은 없어도 표지를 보는 것만으로 충분했습니다.
다락방 속 한 장면
낡은 카세트 라디오 앞에 모여 앉아 이어폰 하나를 나눠 끼던 오후를 떠올립니다. 지지직거리는 잡음 사이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오면 누구랄 것 없이 조용해졌습니다. 고래를 잡으러 간다는 노래였는데, 정작 바다를 본 적 없는 아이들도 그 가사를 따라 흥얼거렸습니다. 다락방 창밖으로는 그저 좁은 골목길뿐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어디로든 떠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송창식이 남긴 통기타 소리
트윈폴리오의 하얀 손수건에서 시작해 고래사냥, 왜 불러, 가나다라, 담배가게 아가씨까지. 송창식의 노래는 한 세대가 통기타를 손에 쥐던 순간마다 배경음악처럼 흘렀습니다.
무교동의 좁은 음악감상실에서 시작된 소리가 라디오를 타고 전국 골목마다 퍼졌습니다. 금지곡이 된 노래조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지나 무교동도, 쎄시봉도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래도 고래사냥 한 소절만 들으면 그 골목의 공기가 되살아난다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기타 줄 하나 튕기는 소리로 시작된 이야기가 반백 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노래들이 그저 유행가로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일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송창식의 노래 가운데 어떤 곡을 들으면 그 시절 어떤 장면이 먼저 떠오르시나요.
최종 업데이트: 2026-09-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