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나 손에 손잡고, 88올림픽이 온 세계를 울린 순간

1988년 9월 17일 아침, 온 가족이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았습니다. 학교는 임시 휴교였고, 거리는 이상할 만큼 한산했습니다. 화면 속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울려 퍼진 노래가 손에 손잡고였습니다. 이탈리아 작곡가 조르조 모로더가 곡을 쓰고 그룹 코리아나가 부른 이 노래는 제24회 서울올림픽의 공식 주제가였습니다.

텔레비전이 귀했던 집에서는 이웃까지 모여 앉아 같은 화면을 봤습니다. 낯선 이름의 노래가 나오자 어른들도 아이들도 화면 쪽으로 자세를 고쳐 앉았습니다. 방마다 열어둔 창문 너머로 같은 멜로디가 겹쳐 흘러나왔습니다.

코리아나는 어떤 그룹이었을까

코리아나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팀이 아니었습니다. 스위스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홍신윤·홍화자와, 독일 등 유럽 무대를 돌던 이애숙·이승규·이용규 삼 남매가 각각 ‘아리랑 싱어즈’와 ‘캐시 앤 코인즈’라는 이름으로 노래하다 하나로 합쳐진 팀이었습니다.

1970년대부터 유럽 곳곳 무대에 섰던 이들을 두고, 원조 한류 그룹이라 부르는 시선도 있습니다. 화려한 조명 아래 서기보다 낯선 나라 무대를 전전하며 실력을 쌓았던 팀입니다.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와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이들을 주제가의 주인공으로 낙점한 이유로는, 영어에 능하고 유럽 쪽에서 이미 얼굴이 알려져 있었다는 점이 꼽힙니다. 국내 무명에 가까웠던 팀이 하루아침에 전 국민이 아는 이름이 됐습니다.

인기 절정의 아이돌처럼 브로마이드가 문방구에 걸리거나 팬레터가 쏟아지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목소리 하나만으로 온 나라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됐습니다. 얼굴보다 후렴구가 먼저 떠오르는, 조금은 특이한 스타 탄생이었습니다.

가요 프로그램 출연도 다른 인기 가수들처럼 잦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름 석 자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던 건, 노래 하나가 그만큼 넓고 깊게 퍼졌기 때문입니다.

이후 방송사 특집 프로그램이나 가요 시상식 무대에 이따금 다시 서기도 했습니다. 오랜만에 화면에 등장한 그 얼굴을 보고서야 “아, 그 노래를 부른 그 사람들”이라며 반가워하는 시청자도 많았습니다.

노래 한 곡에 얹힌 세 사람의 손

작곡은 조르조 모로더가 맡았습니다. 탑건의 주제가, 플래시댄스,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같은 영화음악을 써온 그 사람입니다. 신시사이저 특유의 반짝이는 전자음이 곡 전반에 깔려 있는 것도 그의 손을 거쳤기 때문입니다.

영어 가사는 톰 휘틀록이 붙였습니다. 한국어 가사는 서울대 미학과 김문환 교수가 썼습니다. 한 곡 안에 이탈리아 작곡가, 미국 작사가, 한국 교수의 손이 나란히 얹혀 있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로 부르지만 후렴구의 멜로디는 하나였습니다.

코리아나는 개회식 무대에서 한국어 가사와 영어 가사를 번갈아 불렀습니다. 외국 선수단이 앉은 스탠드에서도 그 순간만큼은 함께 흥얼거리는 사람들이 보였다고 전해집니다.

잠실 주경기장, 그 날의 공기

개회식은 오전 10시 30분에 시작됐습니다. 약 10만 명이 주경기장을 채웠고, 그날 개회식 중계 시청률은 85.3%에 달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국내 스포츠 중계 사상 손꼽히는 수치입니다.

굴렁쇠를 굴리며 혼자 경기장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오던 소년의 장면을 기억하는 분도 많을 겁니다. 정적이 흐르던 그 순간이 지나고, 코리아나의 목소리가 스탠드 가득 퍼져나갔습니다. 화면 앞 거실도 함께 조용해졌습니다.

코리아나 – 손에 손잡고, 1988 서울올림픽 개회식 공식 무대 영상

스탠드에 앉은 관중은 프로그램북에 적힌 가사를 보며 후렴구를 따라 불렀다고 전해집니다. 처음 듣는 외국인 선수단도 멜로디만은 금세 흥얼거렸습니다. 카메라가 관중석을 비출 때마다 손을 맞잡은 사람들이 화면에 잡혔습니다.

교실에서도, 라디오에서도

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이 노래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라디오 신청곡 순위에서 한동안 상위권을 지켰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학교 조회 시간, 체육대회 입장곡으로도 자주 쓰였습니다.

운동장에 줄지어 서서 옆 사람과 손을 맞잡고 흔들던 율동을 떠올리면, 그 어색하고도 뿌듯했던 느낌이 먼저 생각납니다. 노래를 다 외우지 못해도 후렴구만은 목청껏 따라 부를 수 있었습니다.

체육 선생님이 대열 맞추라며 손뼉을 치던 소리,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신시사이저 전주. 그 두 소리가 겹치던 운동장 풍경은 8090년대 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낯설지 않을 겁니다.

피아노 학원에서도 이 곡의 악보를 나눠주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서툰 손가락으로 후렴구 몇 마디를 겨우 짚어내던 기억을 가진 분도 있을 겁니다.

KBS 방송 아카이브 – 코리아나 손에 손잡고 무대 모음

세계로 퍼진 손짓

이 노래는 한국 안에서만 불린 게 아니었습니다. 싱글로 발매돼 전 세계에서 1,700만 장 넘게 팔렸다고 추정되며, 노르웨이·스웨덴·스위스·서독 등 유럽 여러 나라 차트에서 1위에 올랐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이던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가 이 곡을 올림픽의 공식 찬가로 삼는 방안까지 고려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확정된 결정이라기보다는, 그만큼 반응이 뜨거웠다는 정황으로 읽는 편이 맞습니다.

비슷한 시기 다른 나라 올림픽 주제가들이 개최국 안에서만 소비되고 잊혀 간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인 흐름이었습니다. 국내 가수의 노래가 유럽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낯선 시절이었습니다.

지금도 들리는 이유

2015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한 경기, 2023년 AFC 아시안컵 8강전 중계에서도 이 곡이 엔딩곡으로 흘러나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난 노래가 시간과 국경을 넘어 소환되고 있습니다.

88올림픽 공식주제곡 ‘손에 손잡고’ – 코리아나

코리아나 멤버 중 이용규씨는 2021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노래는 남아, 그해 잠실을 채웠던 함성을 지금도 실어 나릅니다.

노래 너머, 그 여름의 공기

1987년 6월의 큰 물결이 지나간 지 채 일 년이 되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어수선했던 공기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서울은 전 세계가 지켜보는 축제를 맞이했습니다.

정치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을 자리는 아닙니다. 다만 혼란스러운 시기를 지나온 사람들에게 손에 손잡고의 밝은 멜로디는 오랜만에 마음 놓고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였다는 점만은 짚어둘 만합니다.

지금 세대를 위한 설명

지금은 올림픽 개회식마다 새로운 주제가가 나오고 금방 잊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1988년에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텔레비전 채널이 몇 개 없던 시기, 온 국민이 같은 시간 같은 화면을 보며 같은 노래를 들었습니다. 그 경험 자체가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결속감을 만들었습니다.

온라인 스트리밍도, 유튜브도 없던 시절이라 노래를 다시 듣고 싶으면 라디오 앞에서 기다리거나 레코드점에 가서 음반을 사야 했습니다. 지금처럼 검색 한 번으로 원하는 순간을 되돌려 볼 수 없었던 만큼, 한 번 스친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관련글: 1988 서울올림픽 개회식과 그 시절 텔레비전 풍경]

왜 하필 손을 맞잡는 동작이었을까

노래 제목이자 후렴구인 ‘손에 손잡고’는 화합과 평화라는 올림픽 정신을 그대로 옮긴 말이었습니다. 개회식 스탠드에서도, 학교 운동장에서도 사람들은 실제로 옆 사람의 손을 잡았습니다. 가사와 동작이 그대로 겹치는 드문 경우였습니다.

이 노래, 정말 세계 1위였을까

싱글 판매량이나 일부 유럽 국가 차트 순위는 여러 자료에서 반복해 언급되지만, 특정 국가 특정 주차의 정확한 순위표까지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르게 전합니다. 다만 유럽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사랑받은 올림픽 주제가라는 사실 자체는 여러 기록이 공통으로 가리킵니다.

정확한 순위 한 줄보다 중요한 건, 서울에서 만들어진 노래가 국경 밖에서도 오래 재생됐다는 사실 그 자체일지도 모릅니다.

다른 올림픽 주제가와 무엇이 달랐을까

몬트리올, 모스크바, 로스앤젤레스로 이어진 앞선 올림픽에도 각각의 주제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개최국 밖에서까지 오래 불린 경우는 흔치 않았습니다. 손에 손잡고는 개최국 국민과 세계 시청자가 같은 후렴구를 따라 부른, 드문 사례로 꼽힙니다.

서울 이후에도 여러 도시가 올림픽을 열며 저마다의 주제가를 내놓았습니다. 그중 지금까지 스포츠 중계 엔딩곡으로 소환되는 곡은 많지 않습니다.

다락방 속 한 장면

운동회 예행연습 날, 선생님이 대열을 맞추라며 팔을 뻗게 했습니다. 스피커에서 손에 손잡고 전주가 흘러나오면 아이들은 옆 짝의 손을 슬그머니 잡았습니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도 놓지 않았던 그 손,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그 손의 온기가 먼저 떠오릅니다.

손에 손잡고가 남긴 것

코리아나의 손에 손잡고는 조르조 모로더의 곡에 한국어와 영어 가사를 얹어 태어났고, 1988년 9월 17일 잠실 주경기장에서 처음 세계에 울려 퍼졌습니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도 사랑받으며 오래도록 재생됐습니다.

운동장에서 손을 맞잡던 아이들도, 거실에서 화면을 보던 어른들도 그날의 멜로디만은 지금까지 기억합니다. 노래 하나가 이렇게 오래 남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조르조 모로더는 이후로도 수많은 영화음악을 남겼고, 코리아나는 그 뒤로도 무대에 섰습니다. 하지만 두 이름이 함께 언급될 때면 언제나 1988년 9월의 잠실이 먼저 떠오릅니다.

올림픽이 끝나고도 한동안 학교 행사나 지역 축제 개막식에 이 곡이 쓰였다는 기억을 가진 분들도 있습니다. 한 도시의 여름을 채웠던 노래가 그렇게 여러 마을의 운동장까지 흘러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노래를 어디에서 처음 들으셨나요. 운동장이었는지, 거실 텔레비전 앞이었는지 떠올려보면 그 시절의 공기가 함께 따라올 겁니다. 손을 맞잡던 그 순간 하나만은, 세월이 지나도 또렷이 남아 있을지 모릅니다.

최종 업데이트: 2026-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