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콜라는 어떻게 요요 하나로 운동장을 접수했을까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몇몇 아이들이 운동장 한쪽으로 몰려나갔다. 누군가 요요 줄을 검지에 걸고 팔을 내리꽂자, 빨간 요요가 바닥까지 쭉 내려갔다가 손바닥으로 다시 튀어 올라왔다. 코카콜라는 1980년대 초반 자사 로고가 박힌 요요를 사은품으로 뿌리며 전국 단위 경연대회까지 열었고, 국민학교 운동장은 한동안 그 요요 하나로 들썩였다.

문방구 진열대를 채운 빨강, 초록, 주황

흰색 몸통에 빨간 뚜껑을 씌우면 코카콜라, 초록 뚜껑이면 스프라이트, 주황 뚜껑이면 환타였다. 같은 모양의 요요인데 뚜껑 색깔 하나로 브랜드가 갈렸다.

문방구 유리 진열장 안에는 그 삼총사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보통 요요는 500원, 조금 더 크고 무거운 슈퍼 요요는 1000원이었다.

용돈을 모아 슈퍼 요요를 산 날은 어깨가 으쓱했다. 손바닥보다 큰 몸통이 손목에 걸릴 때의 그 묵직함이, 값싼 보통 요요와는 다른 소유감을 줬다.

줄이 짧으면 아버지 낚싯줄을 몰래 잘라다 매다는 아이도 있었다. 줄 길이를 조절하는 것도, 매듭을 손끝에 맞게 감는 것도 다 스스로 익혀야 하는 요령이었다.

같은 코카콜라 요요라도 오래 쓰면 휠 축이 헐거워졌다. 그럴 때마다 문방구 아저씨한테 물어보거나, 친구가 하는 걸 곁눈질로 따라 고치곤 했다.

음료 회사 로고가 없는 요요도 진열장 한구석에 섞여 있었다. 나무로 깎은 구식 요요, 두 알을 이어붙인 이중 요요, 어둠 속에서 빛나는 야광 요요까지 종류는 제법 다양했다.

야광 요요는 특히 인기가 높았다. 낮에 햇빛을 충분히 쬐어두면 밤에 골목에서 희미하게 빛이 났는데, 그 빛줄기를 보려고 일부러 해가 진 뒤에야 밖으로 나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가격이 저렴한 만큼 내구성은 들쭉날쭉했다. 며칠 만에 축이 부러지는 불량품을 뽑으면 그날 하루가 통째로 억울했다.

깨진 요요를 들고 문방구에 가져가 봐야 교환은 잘 안 됐다. 대신 고장 난 요요를 분해해서 축이나 캡만 따로 모아두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나중에 다른 요요와 섞어 자기만의 조합을 만드는 재미가 쏠쏠했다.

요요는 왜 그렇게 잘 돌았을까

실은 단순한 원리였다. 줄을 감아 던지면 요요 안쪽 축이 빠르게 회전하며 관성을 얻고, 그 회전이 유지되는 동안 손끝으로 미세한 힘을 줘서 오르내림을 조절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런 원리를 알고 노는 아이는 없었다. 그저 줄을 감는 방향, 손목을 튕기는 세기, 팔을 뻗는 각도를 몸으로 익혔을 뿐이다.

줄을 감는 방향이 반대면 아예 요요가 올라오지 않고 축에 걸려 헛돌았다. 그걸 모르고 처음 요요를 잡은 아이는 몇 번이나 실패한 뒤에야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걸 깨닫곤 했다.

선생님 몰래 서랍 안에서 요요를 굴리다 들켜 압수당한 아이도 한 반에 한둘은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조심스럽게 교무실로 찾아가 돌려받던 그 짧은 순간의 민망함도, 요요를 해본 사람이라면 낯설지 않은 기억이다.

땅강아지와 워크 더 도그, 줄이 엉킬 때마다 속상했던 순간

슬리퍼처럼 요요를 아래로 툭 떨어뜨린 채 바닥에 붙여 앞으로 끌고 다니는 기술이 있었다. 강아지 산책시키듯 요요가 바닥을 따라온다고 해서 아이들 사이에서는 ‘땅강아지’라 불렀다.

정식 명칭으로는 워크 더 도그(Walk the Dog)라 불리는 기술이지만, 그 이름을 아는 아이는 드물었다. 그냥 누가 먼저 땅강아지를 시키는지, 그걸로 은근한 서열이 갈렸다.

손목 스냅을 튕겨 요요를 계속 회전시키며 제자리로 돌리는 루프 기술도 인기였다. 한 번 성공하면 연달아 몇 번을 더 돌릴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기술을 하나 익히면 교실에서 바로 자랑거리가 됐다. 쉬는 시간마다 책상 옆에 모여 서로 손목 각도를 봐주던 풍경도 흔했다.

물론 대부분의 시간은 성공보다 실패로 채워졌다. 힘 조절을 잘못해 줄이 팔뚝에 감겨 올라오거나, 매듭이 꼬여 한참을 풀어야 했다.

수업 시작종이 울렸는데 줄이 안 풀려서 끙끙대던 기억을 떠올리면, 그 답답함이 먼저 생각난다. 결국 손톱으로 매듭을 뜯어내며 속상해하던 손끝의 감각도 함께.

코카콜라가 벌인 전국 단위 요요 소동

단순한 사은품이라기엔 규모가 컸다. 코카콜라는 요요를 앞세워 전국 단위 로드 콘테스트를 열었고, 어느 학교 운동장이든 요요를 든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서로의 기술을 겨뤘다.

1992년 국내에 방영된 코카콜라 요요 경연대회 광고 영상

이 광고에서 보듯, 코카콜라의 요요 마케팅은 1980년대 초반 한 철 반짝이었던 게 아니라 1990년대 초까지도 이어졌다. 한 음료 회사가 사은품 하나로 이 정도 붐을 일으킨 사례는 대학 경영학 교재에까지 실릴 만큼 이례적이었다고 전해진다.

학교 앞에서 열리던 지역 예선을 떠올리면, 줄지어 순서를 기다리던 아이들의 발끝이 먼저 생각난다. 자기 차례가 오기 전까지 요요 줄을 손가락에 칭칭 감았다 풀었다 하며 조바심을 달래던 모습들.

우승자는 새 요요나 문구용품을 상품으로 받았다. 별것 아닌 것 같아도, 그 상품 하나를 놓고 학교 전체가 며칠은 들썩였다.

대회에 나가지 못한 아이들도 소외되진 않았다. 대회가 열린다는 소문만으로도 동네 문방구마다 요요 재고가 동나는 일이 흔했고, 뒤늦게 요요를 손에 넣은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작은 예선을 벌이며 아쉬움을 달랬다.

그 시절 골목 놀이 풍경을 담은 KBS 옛날티비 아카이브 영상

골목과 교실, 요요가 있던 자리

요요는 혼자서도 할 수 있는 놀이였다. 딱지치기나 구슬치기처럼 상대가 있어야 하는 놀이와 달리, 쉬는 시간 짧은 틈에도 혼자 손목만 움직이면 됐다.

그래서 더 자주 눈에 띄었다. 수업 종이 울리기 직전까지, 복도 한 귀퉁이에서도 누군가는 손목을 튕기고 있었다.

여학생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없지 않았다. 색깔별로 요요를 맞춰 들고 다니며 서로 비교하던 모습도 그 시절 교실 풍경의 하나였다.

골목에서는 좀 더 자유로웠다. 전봇대 밑에 모여 누가 더 오래 루프를 돌리는지 내기하다가,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놀던 저녁도 있었다.

같은 반 안에서도 요요를 잘 다루는 아이는 은근한 유명 인사였다. 새로 전학 온 아이가 낯선 기술을 하나 선보이면, 순식간에 그 주변으로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문구용품을 걸고 작은 내기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진 쪽이 딱지 몇 장을 내놓거나, 다음 날 아이스크림을 사는 식이었다. 어른들이 보기엔 별것 아닌 승부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누구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해가 저물어 엄마가 저녁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야 겨우 놀이가 끝났다. 손에 쥔 요요를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뛰어가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오늘 못 이룬 기술을 되짚어보던 저녁이 있었다.

고수와 초보, 그 사이를 메운 것

같은 반이라도 요요 실력 차이는 컸다. 손목만 몇 번 튕겨도 능숙하게 루프를 도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몇 주가 지나도 슬리퍼조차 제대로 못 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래도 요요만큼은 따로 학원이 없었다. 잘하는 친구 옆에 쪼그려 앉아 손목 각도를 눈으로 훔쳐보는 게 유일한 배움터였다.

한 번은 되고 한 번은 안 되는 그 불안정함이, 오히려 더 매달리게 만들었다. 어제는 됐던 기술이 오늘은 안 되는 날도 흔했고, 그럴 때마다 쉬는 시간 내내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문방구 앞 평상에 앉아 서로 요요를 바꿔가며 시험해보던 것도 흔한 풍경이었다. 누구 것이 더 잘 도는지, 줄이 얼마나 튼튼한지를 두고 아이들끼리 진지하게 품평회가 열렸다.

비가 와서 운동장에 나가지 못하는 날에는 교실 안 좁은 통로가 무대가 됐다. 짝꿍 책상과 자기 책상 사이 그 좁은 틈에서 루프를 도느라 팔꿈치가 옆자리에 부딪히기 일쑤였다.

지금 세대는 잘 모르는, 국민학교 시절의 요요

지금은 ‘초등학교’라 부르지만 그때는 ‘국민학교’였다. 요요가 유행하던 그 교실도, 지금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와는 이름부터 달랐다.

당시 문방구는 학용품만 파는 곳이 아니라 딱지, 구슬, 뽑기판, 요요 같은 놀거리를 한꺼번에 파는 동네 사랑방 같은 곳이었다. 등하굣길에 문방구 앞을 그냥 지나치는 아이는 드물었다.

요즘도 요요는 팔리지만, 그 위상은 많이 달라졌다. 정교한 베어링을 넣은 고가 요요가 따로 있고, 유튜브에는 화려한 프리스타일 영상이 넘쳐난다. 반면 그 시절 요요는 500원짜리 플라스틱 장난감 하나로도 운동장 전체를 움직일 수 있었다.

그 무렵 요요를 즐기던 아이들이 이제는 자기 아이나 조카에게 요요를 사줄 나이가 됐다. 마트 진열대에서 오늘날의 화려한 요요를 보며, 문득 500원짜리 코카콜라 요요를 떠올리는 어른도 적지 않을 것이다.

다락방 속 한 장면

이사하며 옷장 서랍을 정리하다 보면, 색이 바랜 요요 하나가 굴러 나올 때가 있다. 줄은 삭아서 손끝에 닿으면 부스러질 것 같고, 뚜껑에 박힌 로고는 반쯤 지워져 있다. 한때는 저것 하나로 운동장 전체가 들썩였다는 사실이, 지금 손에 쥐어 보면 잘 믿기지 않는다. 그래도 검지에 줄을 한 번 걸어보면, 손목이 그 각도를 아직 기억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요요가 남긴 것

코카콜라 요요는 음료 회사의 사은품이었지만, 그 안에서 아이들은 저마다 기술을 겨루고 실패하고 다시 연습하는 작은 승부를 벌였다. 값은 500원이었어도, 거기 걸린 자존심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지금은 문방구도, 국민학교라는 이름도 사라졌다. 하지만 쉬는 시간마다 운동장으로 몰려나가 손목을 튕기던 그 짧은 순간만큼은, 이 요요를 거쳐 간 사람들 사이에 여전히 또렷하게 남아 있다.

줄이 엉켜 속상해하던 시간도, 땅강아지 기술 하나로 우쭐하던 순간도, 결국은 같은 운동장 위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낡은 요요 하나를 다시 마주친다면, 그 손목의 감각이 먼저 떠오를 사람이 여전히 많을 것이다.

▶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아이큐점프 전성기, 정말 드래곤볼 하나 때문이었을까

최종 업데이트: 2026-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