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운 오늘 같은 밤이면 라디오 카세트 테이프

박정운, 오늘 같은 밤이면이 흐르던 그 시절 라디오의 밤

밤 열두 시가 다 되어가는 방, 이불 속에 라디오를 끌어안고 볼륨을 최대한 낮춘 채 주파수를 맞추던 손끝이 떠오릅니다. 스피커에서 기타 전주가 흘러나오면 그제야 이불을 걷고 몸을 일으켜 카세트 녹음 버튼을 눌렀습니다. 박정운의 오늘 같은 밤이면은 1990년 그의 2집 타이틀곡으로 발표됐고, 이듬해부터 라디오 심야 프로그램의 단골 신청곡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노래 하나가 방 안 공기를 바꿔놓을 수 … 더 읽기

올림픽 경기장에서 손을 맞잡는 그림자

코리아나 손에 손잡고, 88올림픽이 온 세계를 울린 순간

1988년 9월 17일 아침, 온 가족이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았습니다. 학교는 임시 휴교였고, 거리는 이상할 만큼 한산했습니다. 화면 속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울려 퍼진 노래가 손에 손잡고였습니다. 이탈리아 작곡가 조르조 모로더가 곡을 쓰고 그룹 코리아나가 부른 이 노래는 제24회 서울올림픽의 공식 주제가였습니다. 텔레비전이 귀했던 집에서는 이웃까지 모여 앉아 같은 화면을 봤습니다. 낯선 이름의 노래가 나오자 … 더 읽기

밀림 속 정글 함성 실루엣

타잔이 남긴 정글 함성, 골목을 뒤흔든 그 시절 놀이

일요일 저녁, 골목 끝 만화방 앞에 삼삼오오 아이들이 모여 섰습니다. 문 안쪽 흑백텔레비전 화면에서 정글 나뭇가지 사이로 한 남자가 몸을 날리고, 화면 밖까지 새어 나오는 그 특유의 함성에 다들 숨을 죽였습니다. 밀림, 맹수, 덩굴을 타고 나는 사내 — 정글 액션물 타잔은 그렇게 주말 저녁 텔레비전을 통해 한국 아이들의 방과 후 놀이까지 바꿔놓은 외화였습니다. 정글에서 온 … 더 읽기

통기타 포크 시절 풍경

송창식, 통기타 하나로 채운 무교동 음악감상실의 그 시절

무교동 뒷골목, 좁은 계단을 내려가면 담배 연기와 기타 줄 튕기는 소리가 뒤섞여 있었습니다. 스무 살 남짓한 청년 하나가 통기타를 무릎에 얹고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하면, 좁은 홀 안이 순식간에 조용해지곤 했습니다. 송창식은 1968년 윤형주와 함께 트윈폴리오를 결성해 통기타 듀오로 가요계에 나섰고, 1975년 발표한 고래사냥과 왜 불러로 한 해 동안 가요계를 사실상 장악했습니다. 무교동 골목의 기타 … 더 읽기

부루마불 주사위와 게임말

부루마불, 정말 모노폴리를 몰래 베낀 게임이었을까

명절 아침 세배가 끝나면 거실 상 위에 초록색 판이 펼쳐졌습니다. 주사위 두 개, 종이돈 뭉치, 그리고 서울·도쿄·파리·뉴욕이라고 적힌 작은 칸들. 1982년 5월 어린이날, 씨앗사가 내놓은 보드게임 부루마불은 이후 몇 년 사이 명절과 방학마다 온 가족이 밤늦도록 둘러앉게 만든 물건이 됐습니다. 텔레비전을 끄고 상 하나를 다 차지한 채, 사촌들과 어깨를 맞대고 앉아 있던 그 저녁을 기억하는 … 더 읽기

안방에서 발재봉틀 앞에 앉은 여성의 뒷모습, 1970년대 집안 풍경

미싱 한 대가 소 한 마리 값이던 그 시절 혼수 풍경

안방 한쪽, 나무 상자 위에 앉아 발판을 밟던 어머니의 뒷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드르륵드르륵, 리듬을 타듯 오르내리는 발판 소리 사이로 바늘이 옷감을 물고 나아갔습니다. 1960~70년대 재봉틀, 그러니까 미싱은 신부가 시집갈 때 챙기던 혼수품 1순위였고, 그 값은 소 한 마리 값에 맞먹었다고 전해집니다. 발판 하나를 밟는 힘과 리듬에 따라 바늘 속도가 미묘하게 달라졌습니다. 그 감각은 … 더 읽기

우뢰매 로봇과 방학 극장가 실루엣

우뢰매, 심형래는 어떻게 그 시절 아이들의 방학을 사로잡았을까

여름방학 첫째 주, 동네 극장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어른들 손을 잡은 아이들도 있고, 형이나 누나를 따라온 꼬마들도 섞여 있다. 표를 사려고 밀치락달치락하던 그 줄 끝에서, 매표소 위 간판에는 커다랗게 우뢰매 세 글자가 걸려 있었다. 개봉 첫날부터 그 간판 아래는 온통 아이들 목소리로 시끌시끌했다. 1986년 서울동화프로덕션이 제작하고 김청기 감독이 연출한 «외계에서 온 우뢰매»는 개그맨 … 더 읽기

형사 콜롬보 바바리코트 뒷모습

형사 콜롬보, 그 구겨진 바바리코트는 왜 온 가족을 붙잡았을까

금요일 밤, 안방 형광등 아래 온 가족이 방석을 끌어다 놓고 앉는다. 화면 속 형사는 넥타이도 제대로 매지 않은 채 구겨진 바바리코트 자락을 끌며 현장을 어슬렁거린다. 손에는 늘 다 타들어가는 시가 한 대가 들려 있다. 형사 콜롬보는 미국 NBC에서 1971년부터 방영된 추리 드라마로, 한국에서는 1970년대 초 TBC를 거쳐 KBS를 중심으로 여러 차례 더빙 방영되며 안방극장의 단골 … 더 읽기

글렌 메데이로스와 엘자의 라디오 듀엣

글렌 메데이로스와 엘자의 프랑스어 듀엣, 왜 낯설지 않았을까

라디오 다이얼을 돌리다 보면 늘 같은 목소리가 걸렸다. 하와이 출신 청년의 미성으로 “Nothing’s Gonna Change My Love For You”가 흘러나오면, 그다음엔 무슨 곡이 나올지 다들 대충 짐작했다. 그런데 어느 밤, 같은 목소리에 낯선 언어가 섞여 들어왔다. 영어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알아들을 수 없는 것도 아닌, 프랑스어였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글렌 메데이로스였다. 곡은 프랑스 가수 엘자와 … 더 읽기

어두운 거실에서 TV 불빛을 바라보는 소녀 실루엣과 반짝이는 마법봉, 복고풍 셀애니메이션 일러스트

요술공주 밍키, 목요일 저녁을 기다리게 한 변신과 그 결말

목요일 저녁 여섯 시, 골목에서 고무줄놀이를 하던 여자아이들이 하나둘 손을 놓고 집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대문 앞에서 신발을 벗어 던지듯 벗고 방으로 달려가면, 텔레비전 화면엔 분홍 머리 소녀가 지팡이를 휘두르고 있었습니다. 요술공주 밍키. KBS 2TV가 1983년 3월 25일부터 1984년 5월 17일까지 매주 목요일에 내보낸 이 일본 애니메이션은, 국내에 마법소녀라는 장르 자체를 처음 각인시킨 작품으로 꼽힙니다. 꿈의 …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