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거실에서 TV 불빛을 바라보는 소녀 실루엣과 반짝이는 마법봉, 복고풍 셀애니메이션 일러스트

요술공주 밍키, 목요일 저녁을 기다리게 한 변신과 그 결말

목요일 저녁 여섯 시, 골목에서 고무줄놀이를 하던 여자아이들이 하나둘 손을 놓고 집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대문 앞에서 신발을 벗어 던지듯 벗고 방으로 달려가면, 텔레비전 화면엔 분홍 머리 소녀가 지팡이를 휘두르고 있었습니다. 요술공주 밍키. KBS 2TV가 1983년 3월 25일부터 1984년 5월 17일까지 매주 목요일에 내보낸 이 일본 애니메이션은, 국내에 마법소녀라는 장르 자체를 처음 각인시킨 작품으로 꼽힙니다. 꿈의 … 더 읽기

타자학원에서 타자기 치는 모습

두벌식 세벌식, 한글 타자기 자판은 어쩌다 갈렸을까

늦은 오후 동사무소 민원실, 유리 칸막이 너머로 따다닥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창구 안쪽 여직원의 손끝에서 은빛 지렛대가 튕겨 오르고, 종이 위로 글자가 한 자 한 자 박혔다. 1949년 안과의사 공병우가 세벌식 한글 타자기를 처음 세상에 내놓은 뒤로, 1969년 정부가 국무총리 훈령 제81호로 표준 자판을 정하기까지, 한글은 스무 해 가까이 자판 위에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 … 더 읽기

쇼핑몰 조명 기둥을 타고 미끄러지며 유리를 깨는 형사의 뒷모습, 청록빛 실내와 마젠타 네온 포인트의 레트로 잉크화

폴리스 스토리, 쇼핑몰 조명 기둥에서 뛰어내린 성룡의 도박

1988년 7월, 극장 앞에 줄을 선 사람들 사이에서 “이거 몇 년 전에 나온 영화 아니냐”는 말이 오갔다. 성룡이 감독하고 주연한 폴리스 스토리(警察故事)는 홍콩에서 1985년 12월 14일 개봉했지만, 한국에서는 폭력성과 부패 경찰 묘사가 문제 되어 상영이 막혔다가 3년 가까이 지난 그해 여름에야 극장에 걸렸다. 사극 무술영화를 벗어난 성룡 취권의 술 취한 걸음, 사형도수의 뱀 흉내 무술, … 더 읽기

시골집 마당의 삐삐 실루엣 유화 삽화

말괄량이 삐삐, 그 시절 아이들은 왜 그토록 열광했을까

학교도 안 가고, 부모도 없고, 원숭이 한 마리와 말 한 마리를 데리고 빌라 빌레쿨라라는 낡은 집에 혼자 사는 소녀가 있었습니다. 힘은 장사여서 말을 번쩍 들어 올리고, 하고 싶은 말은 어른 앞에서도 다 하던 아이였습니다. 말괄량이 삐삐(원제 Pippi Långstrump)는 스웨덴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동화를 바탕으로 1969년 스웨덴에서 TV 시리즈로 만들어져, 국내에는 1970년대 후반부터 더빙 방영되며 알려졌습니다. … 더 읽기

피아노 건반과 손글씨 악보, 펜 한 자루가 놓인 장면을 인디고·실버 네온 톤으로 담은 1980년대 시티팝 스타일 일러스트

유재하, 단 한 장의 앨범이 남긴 그 시절의 목소리

1987년 여름, 서울스튜디오. 헤드폰을 고쳐 쓴 스물다섯 청년이 건반 위에 손을 얹는다. 녹음테이프가 도는 동안 그는 피아노와 신시사이저, 현악 파트까지 앨범 대부분의 소리를 혼자 채워 넣고 있었다. 이 노래들은 그 자신의 이야기에서 나왔다고 전해진다. 누구를 그리며 썼는지, 어떤 이별을 지나며 썼는지는 정확히 남아 있지 않지만, 가사 곳곳에 담긴 감정의 결만큼은 지금 들어도 낯설지 않다. 그해 … 더 읽기

오래된 극장 앞에 늘어선 아이들 실루엣과 노을 속에 우뚝 선 거대 로봇 실루엣 — 1980~90년대 셀 애니메이션 스타일 일러스트

로보트 태권브이, 극장 앞 아이들을 줄 세운 그 여름

매표소 앞으로 아이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서 있었습니다. 방학을 맞은 초등학생들이 대부분이었고, 손에는 아버지나 형에게서 받은 꼬깃꼬깃한 지폐 한 장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극장 문이 열리기도 전에 로봇 머리 모양 전단지가 손에서 손으로 넘어갔습니다. 로보트 태권브이는 1976년 7월 24일 김청기 감독의 손으로 서울 대한극장과 세기극장 스크린에 처음 걸렸습니다. 한국 최초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그해 여름 … 더 읽기

1970년대 한국 거실, 나무 캐비닛 전축 앞에 모여 앉아 레코드를 듣는 가족의 모습 — 따뜻한 필름톤의 실사 사진

전축 앞에 모이던 저녁, 그 시절 거실은 왜 특별했을까

저녁상을 물리면 아버지는 전축 스위치를 올려 진공관을 예열하고, 바늘을 앞판에서 조심스레 들어 첫 곡의 홈 위에 얹었습니다. 거실 한켠, 나무 캐비닛 안에 든 그 육중한 물건 하나가 온 가족의 저녁을 채웠습니다. 1976년 무렵 웬만한 전축 한 대 값은 16만~18만 원 선이었고, 그해 과장급 공무원 월급이 11만 원대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월급 두 달치를 훌쩍 넘는 … 더 읽기

피카디리 극장 간판 앞에 선 관객의 뒷모습과 밤하늘의 두 달, 멀리 광선검을 든 실루엣이 보이는 일러스트

스타워즈, 한국 개봉은 1년 늦고 후속편은 20년 늦은 이유

1978년 6월, 종로 피카디리 극장 매표구 앞으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사람들 손에는 신문 한구석에서 오려낸 광고 조각이나 영화 잡지에서 본 그림 한 장이 들려 있었습니다. 우주선이 나온다는 소문은 진작부터 돌았지만, 정작 스크린으로 확인한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던 참이었습니다. 그 영화가 스타워즈였습니다. 미국에서는 1977년 5월 이미 개봉해 화제를 모았지만, 한국 관객이 극장에서 이 영화를 만난 … 더 읽기

초원 위 마차와 통나무집 앞에 선 개척 가족의 뒷모습 — 로맨스 잡지풍 유화 일러스트

초원의 집, 그 시절 일요일 아침은 왜 그렇게 기다려졌을까

일요일 아침, 밥상 앞에 앉기도 전에 텔레비전부터 켜던 집이 있었습니다. 이불을 개다 말고 거실로 나와 화면 앞에 주저앉으면, 초록빛 들판을 가로질러 뛰어가는 자매와 낡은 통나무집이 펼쳐졌습니다. 초원의 집(원제 Little House on the Prairie)은 로라 잉걸스 와일더의 자전적 소설을 원작으로, 미국 NBC에서 1974년부터 1983년까지 9개 시즌 200편 넘게 방영된 드라마입니다. 통나무집 이야기가 우리 안방에 들어온 순간 … 더 읽기

전자기타와 앰프, 드럼 스틱이 놓인 밴드 연습실과 창밖 도시 스카이라인이 어우러진 딥레드·차콜 네온의 1980년대 시티팝 스타일 일러스트

산울림 vs 샌드페블즈, ‘나 어떡해’는 누구의 노래였을까

1977년 12월, 서울 어느 레코드 가게 진열대에 낯선 재킷 하나가 놓였다. 표지에는 세 형제의 이름 대신 “산울림”이라는 낯선 밴드명만 적혀 있었다. 턴테이블에 판을 올리고 첫 트랙이 흘러나오는 순간, 라디오에서 늘 듣던 가요와는 완전히 다른 리듬이 방 안을 채웠다고 그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은 말한다. 산울림은 김창완, 김창훈, 김창익 삼형제가 1977년 결성한 록 밴드다. 맏형 김창완이 기타와 …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