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국도극장 매표소 앞으로 아침부터 줄이 끊이지 않던 때가 있었습니다. 스크린 하나뿐인 단관 극장이었는데도, 1979년 9월 개봉한 취권은 그 극장에서만 무려 6개월을 채우며 90만 명 가까운 관객을 끌어모았습니다.
매표소 앞 긴 줄, 암표까지 등장한 풍경
개봉 초반부터 국도극장 앞은 이른 아침부터 표를 구하려는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줄을 서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마저도 금세 매진되는 날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표를 구하기 어려워지자 극장 주변에는 웃돈을 얹어 표를 파는 암표상까지 슬그머니 등장했다고 전해집니다.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이렇게까지 애를 써야 했던 경우는 흔치 않았습니다.
가족 단위로, 혹은 친구들끼리 여럿이 무리 지어 극장을 찾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먼저 보고 나온 사람이 정말 재미있다고 소문을 퍼뜨리면, 그 소문을 전해 들은 또 다른 사람들이 다시 줄을 서는 식이었습니다. 입소문 하나만으로 이렇게 오래, 이렇게 넓게 퍼진 영화는 흔치 않았습니다.
극장 하나가 써 내려간 흥행 기록
취권은 1978년 홍콩에서 처음 만들어진 무술 코미디 영화입니다. 국내에는 조금 늦은 1979년 9월 29일, 서울 국도극장에서 처음 개봉했습니다.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한 극장에서만 반년 가까이 상영이 이어졌습니다. 집계에 따라 다르지만 약 89만에서 98만 명이 이 영화를 보러 국도극장을 찾았다고 전해집니다.
이 기록은 그 시절 외화 흥행 순위 부동의 1위에 오를 만큼 압도적이었습니다. 단일 극장 관객 100만 명이라는 벽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깨지지 않았고, 훗날 다른 대작 영화들이 나오고 나서야 겨우 넘어섰습니다.
Drunken Master / Zui Quan (1978) Original Trailer
실존 인물에서 나온 이야기
영화 속 취권의 원류로 등장하는 인물은 완전히 지어낸 캐릭터가 아닙니다. 취팔선권의 창시자로 알려진 인물은 실제로 전해지는 광동 지역 무술가 중 한 명이라고 합니다.
술 취한 여덟 신선의 몸짓을 무술로 옮겼다는 그 설정 자체가 전설처럼 오래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과 전설이 뒤섞인 소재였기에, 영화적으로 각색할 여지도 그만큼 컸고 이야기꾼들이 살을 붙이기도 좋았습니다.
실존했던 인물의 이름과 배경을 빌려오면서도, 정작 영화는 그 인물을 딱히 진지하게 그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허술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그려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취팔선권, 술 취한 듯 싸우는 무술
화면 속 주인공은 마치 술에 잔뜩 취한 듯 비틀거리며 상대를 공격합니다. 낮은 자세로 휘청이다가도 순간적으로 정확한 발차기가 뻗어 나오는, 도무지 예측하기 어려운 움직임이었습니다.
이 동작의 기반이 된 무술이 취팔선권입니다. 술 취한 여덟 신선의 몸짓을 본떠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권법으로, 성룡은 이를 대만의 홍권 고수에게 배운 뒤 자신만의 동작을 더해 영화 속 장면으로 완성했습니다.
기존에 익힌 무술 동작을 그대로 그저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카메라 앞에서 더 우스꽝스럽고 더 과장되게 다듬는 과정을 거쳤다고 전해집니다. 그렇게 완성된 결과물이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회자되는 취권 특유의 몸짓입니다.
그동안 진지하게만 그려지던 기존 무술 영화와 달리, 넘어지고 비틀거리는 동작 자체가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그러면서도 발차기 하나하나는 놀랍도록 정확했습니다. 웃다가도 어느새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그 낙차가 관객을 끌어당겼습니다.
맨몸으로 부딪히는 액션의 정직함
지금 기준으로 다시 보면 화면이 다소 거칠고 편집도 투박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배우가 직접 몸으로 부딪히는 액션의 밀도가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와이어나 컴퓨터그래픽 도움 없이, 실제로 넘어지고 구르는 동작이 그대로 화면에 담겼습니다. 위험해 보이는 장면일수록 객석에서는 오히려 더 큰 탄성이 터졌습니다.
스턴트 없이 배우 자신이 직접 몸을 던지는 이런 촬영 방식은 이후 홍콩 액션 영화 전반의 뚜렷한 특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관객들도 그런 정직한 액션을 금세 알아보고 뜨겁게 반응했습니다.
무섭던 스승, 웃기던 스승
영화 속 스승은 엄하고 무서운 인물로 등장하지만, 동시에 능청스러운 코미디 연기로 관객에게 웃음을 안겨주는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혹독한 수련 장면 뒤에 이어지는 우스꽝스러운 상황들이 극의 리듬을 만들었습니다. 매를 맞으면서도 어딘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는 장면에서는 객석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습니다.
맞고 넘어지고 굴러도 결국 다시 일어나 웃음을 주는 주인공의 모습은, 그 시절 액션 영화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캐릭터였습니다.
다락방 속 한 장면
동네 형들이 골목에서 취권 흉내를 낸다며 비틀거리다 서로 넘어지던 장면이 떠오른다. 진짜 발차기는 흉내조차 못 냈지만,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만큼은 다들 그럴듯하게 따라 했다. 넘어질 때마다 터지던 웃음소리가 아직도 골목에 남아있는 것 같다.
가난한 무술 배우들, 열악했던 촬영 현장
당시 홍콩 무술 영화 제작 환경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결코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안전장치가 지금처럼 갖춰진 것도 아니었고, 배우들이 직접 위험한 동작을 소화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성룡을 비롯한 무술 배우들은 어린 시절부터 경극 학교 등에 들어가 오랜 세월 혹독한 훈련을 받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훈련이 고스란히 영화 속 몸동작으로 이어졌습니다.
촬영 중 넘어지고 부딪히는 장면에서 실제로 다치는 일도 드물지 않았습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한 촬영이었기에, 화면 속 액션이 유독 진짜처럼 느껴졌습니다. 대역이 아니라 배우 본인이 부딪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객의 몰입도 한층 커졌습니다.
동시상영관과 재개봉관으로 이어진 흐름
국도극장에서의 긴 상영이 끝난 뒤에도 취권의 인기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지방 극장과 동시상영관, 재개봉관을 돌며 한동안 계속 상영됐습니다. 서울을 벗어난 지방 곳곳에서도 뒤늦게 이 영화를 보려는 사람들이 극장 앞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변두리 극장에서는 다른 홍콩 영화와 묶어 두 편을 한 번에 보여주는 동시상영이 흔했습니다. 취권이 그 조합에 끼어 있으면 표를 구하기 위한 줄이 유독 길었다고 전해집니다.
동네마다 있던 삼류 극장, 재개봉관은 표값도 저렴하고 분위기도 한결 자유로웠습니다. 팝콘 대신 오징어나 뻥튀기를 씹으며 영화를 보던 당시 특유의 극장 풍경이 여기서도 이어졌습니다.
비디오 대여점이 자리 잡기 전이던 시절이라, 극장에서 놓친 영화를 다시 보려면 이런 재상영관을 부지런히 찾아다니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룡이라는 이름이 낯설던 시절
취권이 개봉하기 전까지, 성룡은 국내에서 그리 알려진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이소룡의 뒤를 잇는 무술 배우 정도로만 소개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취권 이후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진지하고 무거운 무술 영화 일색이던 시장에, 웃기면서도 강한 주인공이라는 새로운 캐릭터가 나타났습니다.
이후 잇달아 개봉한 성룡의 다른 영화들도 관객을 계속 꾸준히 모으며, 이름 석 자만으로도 극장을 가득 채우는 배우로 확실히 자리 잡았습니다.
포스터에 얼굴만 걸려도 어떤 영화인지 짐작이 가던 시절, 그 대열에 성룡이라는 이름이 확실히 올라선 것도 이 무렵이었습니다.
문방구 앞 브로마이드와 극장 간판
국도극장 앞 대형 간판에는 취권 특유의 자세를 취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 앞을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영화를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학교 앞 문방구에는 성룡의 사진이 담긴 브로마이드와 딱지가 함께 팔렸습니다. 비틀거리는 자세, 발차기하는 순간을 그린 그림들이 특히 인기였습니다.
학교 쉬는 시간이면 취권 흉내를 내며 장난치는 아이들이 꼭 있었습니다. 다치는 아이는 없었지만, 선생님께 혼나는 아이는 종종 있었습니다.
운동장 구석에서는 저마다 스승 흉내를 낸다며 비틀거리는 걸음을 걷다가 넘어지는 놀이가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누가 더 그럴듯하게 비틀거리는지를 두고 나름 진지한 경쟁이 붙기도 했습니다.
[취권] 성룡의 전설이 되어버린 영화 / 출처: 클립플릭스 액션
비디오테이프로 다시 만난 취권
극장 상영이 끝나고 몇 해 뒤, 이번에는 비디오 대여점에서 취권을 다시 만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극장을 못 갔던 사람도, 다시 보고 싶던 사람도 대여점 진열대 앞에서 이 영화를 찾았습니다.
비디오테이프 케이스 표지에는 성룡이 특유의 자세를 취한 사진이 큼직하게 실려 있었습니다. 그 표지 하나만으로도 어떤 영화인지 단번에 알아보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대여점 진열대 맨 앞줄을 차지하는 날도 잦았습니다.
친구 집에 모여 늦은 밤까지 비디오로 몰아 보던 풍경도 낯설지 않았습니다. 이미 몇 번을 봤어도, 명장면이 나올 때마다 다시 환호가 터졌습니다. 되감기 버튼을 눌러 같은 장면을 몇 번씩 돌려보는 일도 흔했습니다.
그 시절이 남긴 흔적
단관 극장 하나에서 반년 가까이 채운 흥행 기록, 술 취한 듯 싸우는 낯선 무술, 그리고 웃음과 액션을 동시에 만든 새로운 스타일까지. 취권은 당시 극장가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습니다.
진지함 대신 웃음을, 완벽함 대신 허술함을 무기로 삼은 이 영화는 이후 홍콩 액션 영화 전체의 흐름 자체를 크게 바꿔놓았습니다.
단관 극장 앞에 길게 늘어선 줄, 문방구 진열대에 걸린 딱지, 골목에서 넘어지며 웃던 아이들. 하나의 영화가 이렇게 여러 장면으로 갈라져 여러 사람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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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업데이트: 2026-08-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