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큐점프 전성기, 정말 드래곤볼 하나 때문이었을까

서점 진열대에 매주 정해진 요일이면 낯선 얼굴이 걸렸다. 표지 한가운데 노란 글자로 박힌 제호, 그 아래 그 주 가장 인기 있는 주인공의 그림 한 장. 1988년 12월 8일 서울문화사가 창간한 주간 만화잡지 아이큐점프는 한국 최초로 일본식 주간 소년만화 체제를 들여왔고, 전성기에는 호당 50만 부에서 60만 부 사이로 팔려나갔다고 알려져 있다.

신고제로 바뀌자 쏟아진 잡지들

1987년 언론기본법이 폐지되면서 신문과 잡지 발행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었다. 정부의 사전 승인 없이도 새 매체를 낼 수 있게 되자, 그동안 억눌려 있던 만화잡지 창간이 봇물 터지듯 이어졌다.

아이큐점프는 그 물결 한가운데서 1988년 6월 등록을 마치고 같은 해 12월 첫 호를 냈다. 만화만 모아 매주 내는 잡지라는 형식 자체가, 그 이전 한국 출판 시장에는 없던 그림이었다.

1987년은 6월 항쟁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던 해였다. 그 격변이 가라앉기도 전에 출판 규제가 풀렸고, 만화잡지라는 새로운 지면이 그 틈으로 조용히 자리를 잡아갔다.

서울문화사는 이미 여성지·연예잡지로 자리를 잡은 출판사였다. 그런 회사가 소년 독자를 겨냥한 만화 전문지를 새로 내놓는다는 소식에, 서점가에서도 관심이 적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 이전까지 만화는 대개 만화방 대여용 단행본이거나, 어린이 교양지의 부록 자리를 빌린 곁다리 콘텐츠였다. 만화만 묶어 매주 정기적으로 파는 잡지라는 발상은, 출판사 입장에서도 검증되지 않은 도전이었다.

정해진 요일마다 서점 앞이 붐빈 이유

창간 초기 가격은 1000원 안팎이었다. 용돈으로 감당할 만한 값이라, 매주 같은 요일에 나오는 신간을 사려고 서점 앞을 서성이는 아이들이 하나둘 늘어갔다.

이현세, 이상무, 김형배, 장태산, 배금택, 황미나 같은 당대 인기 만화가들이 초기 지면에 이름을 올렸다. 이미 만화방에서 이름을 알린 작가들이 한 잡지 안에 모이자, 창간 얼마 지나지 않아 발행부수는 10만 부를 훌쩍 넘어섰다.

월간지가 한 달을 기다려야 다음 이야기를 볼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이 잡지는 매주 새 회차가 나왔다. 지난주 결말이 궁금해 서점 문을 열자마자 뛰어 들어가던 걸음이, 그 무렵 흔한 하굣길 풍경이었다.

표지를 넘기면 두께부터 남달랐다. 여러 작가의 연재분이 한 권 안에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서, 다 읽으려면 하루로는 부족했다.

가끔 딸려 오는 부록도 큰 즐거움이었다. 미니 포스터나 스티커, 캐릭터 카드 같은 것들이 본책 사이에 끼워져 있으면, 본편보다 그 부록부터 먼저 펼쳐 보는 아이들도 많았다.

표지 뒷면과 안쪽 페이지에는 학용품·문구 광고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만화 못지않게 그 광고 페이지를 유심히 넘겨보며 다음에 살 학용품을 점찍어 두던 아이들도 있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이번 주 부록이 뭔지가 먼저 화제에 올랐다. 좋아하는 캐릭터 카드가 나온 주에는 여러 권을 사서 카드만 모으는 경우도 있었다.

[옛날TV] 전유성, 이민우가 출연한 아이큐점프 TV 광고(1988년)

해적판으로 떠돌던 이야기가 정식으로 실리던 날

일본 만화 드래곤볼은 정식 수입되기 한참 전부터 이미 해적판으로 몰래 유통되고 있었다. 표지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손에서 손으로 넘어가던 이야기였다.

1989년 12월 14일, 아이큐점프는 이 작품을 정식으로 계약해 지면에 올렸다. 떠돌던 이야기가 정식 출처를 달고 서점 매대에 오르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 잡지가 60만 부 가까운 판매부수를 찍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도 이 무렵이다. 해적판을 몰래 보던 아이들이 이제는 매대 앞에서 당당하게 이번 호를 골라 들 수 있게 된 셈이었다.

드래곤볼은 그 뒤로도 오랫동안 이 잡지의 간판을 지켰다. 손오공이 표지를 장식한 호가 나오는 날이면, 서점 문 여는 시간에 맞춰 줄을 서는 아이들도 드물지 않았다.

교실에서는 지난 화 이야기가 흔한 화젯거리였다. 누가 더 먼저 이번 호를 봤는지를 두고 은근한 자랑이 오갔고, 아직 못 본 친구에게 결말을 미리 흘리다가 눈총을 받는 일도 있었다.

등교 전 서점에 들르지 못한 날은 쉬는 시간 내내 마음이 급했다. 짝꿍이 이미 다 읽었다는 걸 알면, 점심시간까지 참지 못하고 슬쩍 빌려 보는 일도 흔했다.

드래곤볼 속 필살기 이름을 서로 흉내 내며 쉬는 시간을 보내던 것도 그 시절 교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복도에서 괜히 기를 모으는 시늉을 하던 아이도 한둘은 있었다.

소년챔프가 등장하며 벌어진 진검승부

1991년 12월, 애니메이션 제작과 수입을 하던 대원동화가 새 만화잡지 소년챔프를 냈다. 제호부터 아이큐점프를 정면으로 겨냥한 이름이었다.

소년챔프는 슬램덩크를 수입해 맞불을 놓았다. 농구화 끈을 조이는 소년의 이야기가 새 지면을 채우자, 서점 앞에서는 이제 두 잡지를 놓고 저울질하는 아이들이 생겼다.

드래곤볼이냐 슬램덩크냐, 어느 서점을 먼저 들를 것이냐. 짝꿍끼리 서로 다른 잡지를 사서 나눠 보는 것도 그 무렵 흔한 요령이었다.

두 잡지가 나란히 서점 매대를 채우던 풍경을 떠올리면, 어느 한쪽이 더 재미있는지를 두고 벌어지던 사소한 말다툼이 먼저 생각난다. 정작 다음 날이면 서로 빌려 보는 사이였지만.

두 잡지 모두 일본 인기작 수입에 의존한다는 비판도 없지 않았다. 그래도 국내 작가들의 연재는 두 지면 모두에서 꾸준히 이어졌고, 경쟁이 붙은 만큼 편집도 해마다 빠르게 달라졌다.

서점 주인 입장에서는 반가운 경쟁이었다. 두 잡지를 나란히 진열해 두는 것만으로도 매대 앞에 아이들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세뱃돈이나 용돈을 모아 두 잡지를 한꺼번에 사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은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곤 했는데, 두 손 가득 잡지를 든 채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 유독 뿌듯했다.

1990년 발행된 아이큐점프 13호 실물을 살펴보는 영상

지금 세대는 잘 모르는, 그 시절 만화잡지 사는 법

지금은 웹툰을 스마트폰 화면으로 넘겨보지만, 그때는 정해진 요일에 서점이나 문방구에 나가야만 다음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신간이 늦게 들어오는 서점이면 며칠 뒤 다시 발걸음을 해야 했다.

한 권 안에 여러 작품이 함께 실려 있다 보니, 좋아하는 작품 하나만 보려 해도 잡지 전체를 사야 했다. 대신 그 김에 몰랐던 다른 작품에 눈을 뜨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용돈이 부족한 주에는 만화방에서 빌려 보거나, 이미 산 친구에게 빌려 읽는 게 자연스러운 순환이었다. 다 읽은 잡지는 서로 맞바꿔 보다가 결국 만화방으로 흘러들어가곤 했다.

만화가 아직 부모 세대에게 곱게 보이지 않던 시절이라, 잡지 표지를 교과서 사이에 슬쩍 끼워 다니던 아이들도 있었다. 그래도 손오공과 친구들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만큼은 숨기기 어려웠다.

지금 세대에게 ‘매주 정해진 요일에만 살 수 있는 이야기’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 수 있다. 다음 화가 몇 시에 올라올지 알림을 받는 지금과 달리, 그때는 서점 문이 열리는 시간이 곧 연재 시간이었다.

이야기를 놓친 주에는 다음 호가 나올 때까지 궁금증을 그대로 안고 지내야 했다. 지금처럼 검색 몇 번으로 지난 화를 찾아볼 방법이 없었으니, 친구 입에서 나오는 요약이 사실상 유일한 정보통이었다.

정해진 요일이 사라진 뒤

2005년 7월부터 아이큐점프는 격주간으로 발행 주기를 바꿨다. 매주 나오던 신간을 기다리던 습관은 그렇게 조금씩 옅어져 갔다.

그래도 잡지는 오래 버텼다. 2014년에는 통권 1000호를 돌파하며 국내에서 가장 오래 이어진 만화잡지라는 기록을 세웠다.

2018년 3월 서울문화사는 만화사업부를 서울미디어코믹스로 분사시켰고, 2022년부터는 다시 월간으로 발행 주기가 바뀌었다. 매주 정해진 요일마다 서점 문을 밀고 들어가던 풍경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경쟁지였던 소년챔프는 이름을 코믹챔프로 바꿔가며 명맥을 이어갔다. 두 잡지 모두 웹툰 시대를 맞아 예전만큼의 존재감은 아니지만, 지면 자체는 지금도 남아 있다.

서점 진열대에서 종이 잡지를 스쳐 보는 일이 드물어진 지금 기준으로 보면, 매주 같은 요일을 기다리던 그 감각은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30년 넘게 이어진 잡지라는 사실만큼은 숫자로도 또렷하게 남아 있다.

다락방 속 한 장면

신간이 나오는 날 아침 등굣길, 서점 유리문 안쪽에 새로 진열된 표지를 곁눈질로 확인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가방을 멘 채로 뛰어가던 그 골목, 손에 쥔 동전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던 것도 같다. 표지를 넘기기도 전에 이미 마음은 다음 이야기 속에 가 있었다.

아이큐점프가 남긴 것

신고제로 바뀐 출판 환경, 해적판으로 떠돌던 만화를 정식 지면으로 끌어올린 결단, 그리고 뒤이어 등장한 경쟁지와의 팽팽한 줄다리기. 아이큐점프는 그 세 가지가 겹쳐 만들어낸 잡지였다.

지금은 정해진 요일마다 서점 앞을 서성이는 아이들을 보기 어렵다. 하지만 매주 같은 요일, 같은 자리에서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던 그 감각은 이 잡지를 거쳐 간 이들 사이에 여전히 또렷하게 남아 있다.

이 잡지를 거쳐 간 작품과 작가들은 이후로도 여러 갈래로 뻗어나갔다. 만화방 서가 한 칸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애니메이션으로, 극장판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지켜본 것도 이 세대만의 경험이다.

손오공이 표지를 장식하던 호를 서랍 깊숙이 모아 두었던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사를 다니며 하나둘 사라졌지만, 그 표지의 색감과 질감만큼은 여태 손끝에 남아 있는 듯하다.

두툼한 잡지 한 권을 손에 쥐고 뿌듯해하던 걸음, 친구와 잡지를 맞바꿔 보며 나누던 대화. 낡은 잡지 한 권을 다시 마주친다면, 서점 앞을 서성이던 그 걸음이 먼저 떠오를 사람이 여전히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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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업데이트: 2026-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