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백계주, 운동회의 승패를 갈랐던 마지막 함성

운동장 확성기에서 “다음은 마지막 종목, 청백계주가 있겠습니다”라는 안내가 나오면 응원석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라졌습니다. 그때까지 흩어져 있던 아이들도 트랙 가까이 몰려들었고, 바통 하나에 그날 운동회 전체의 승패가 걸려 있었습니다. 선생님들도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트랙 쪽을 바라봤습니다.

바통 하나에 걸린 오전 내내의 점수

운동회 오전 동안 아이들은 달리기, 공굴리기, 박 터뜨리기 같은 여러 종목에서 조금씩 점수를 쌓았습니다. 어떤 반은 앞서고 어떤 반은 뒤처지며 하루 종일 엎치락뒤치락하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쌓인 점수 차이가 계주 한 번으로 완전히 뒤집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계주에 걸린 점수 비중이 다른 종목보다 훨씬 컸기 때문입니다. 오전 내내 쌓아온 노력이 단 몇 분 만에 뒤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 계주를 더 특별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오전 내내 뒤처지고 있던 쪽도 마지막 순간까지 결코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계주만 이기면 다 뒤집힌다”는 말이 아이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돌곤 했습니다.

왜 청군과 백군이었을까

운동회에서 편을 가르는 이 방식은 원래 일본에서 넘어온 문화라고 전해집니다. 일본 헤이안 시대, 미나모토 가문과 다이라 가문이 벌인 전쟁에서 한쪽은 흰 깃발을, 다른 쪽은 붉은 깃발을 들었던 데서 홍백전이라는 말이 시작됐다고 합니다.

이 홍백전 문화가 일제강점기를 거쳐 국내에 들어왔습니다. 광복 이후 왜색을 지우려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붉은색 대신 푸른색을 쓰게 됐다는 설이 있고, 6·25 전쟁 이후 붉은색이 공산주의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집니다. 두 가지 설명 모두 나름의 설득력을 갖고 지금까지 함께 전해지고 있습니다.

정확히 어느 쪽이 결정적 이유였는지는 자료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다만 그렇게 해서 청군과 백군이라는, 지금은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이름이 자리 잡았습니다.

음양오행에서 동쪽을 상징하는 색이 푸른색이라는 전통적 배경도 함께 거론됩니다. 흥미롭게도 북한에서는 지금도 청홍전이라는 이름을 쓴다고 알려져 있어, 같은 뿌리에서 남북이 서로 다른 이름을 갖게 된 셈이라 흥미롭습니다.

운동회의 마지막을 장식하던 종목

계주는 대개 그날 운동회 순서표의 맨 마지막 순서에 배치됐습니다. 오전부터 이어진 여러 종목의 점수가 차곡차곡 쌓여도, 계주 결과 하나로 순위가 완전히 뒤집히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다른 어떤 종목보다 유독 응원 소리가 컸습니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는 함성이 운동장을 가득 채웠고,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바통을 놓치거나 순서를 착각해 넘어지는 장면이 나오면 순식간에 양쪽에서 탄식과 환호가 동시에 터져 나왔습니다. 그 짧은 순간의 희비가 운동회 전체를 요약하는 장면이 되곤 했습니다. 몇 초 사이에 갈리는 승부였지만, 그 여운은 며칠씩 이어졌습니다.

1960년대, 1980년대 가을 운동회 모습 공개 / 출처: KTV 다큐 (공식 정책방송)

같은 반, 다른 색깔의 하루

운동회 편 가르기는 대개 번호나 자리 순서로 무작위에 가깝게 정해졌습니다. 그래서 단짝 친구끼리도 서로 다른 색을 배정받는 일이 흔했습니다.

평소라면 나란히 붙어 다니던 사이도, 운동회 날만큼은 서로 다른 응원석에 앉았습니다. 그렇다고 사이가 나빠지는 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낯선 대립 구도 자체가 하나의 놀이처럼 느껴졌습니다. 서로 다른 편이 되어 티격태격 응원하는 것도 나름의 재미였습니다.

쉬는 시간이면 서로 다른 팀 색깔의 띠를 두른 채로도 여전히 같이 놀았습니다. 운동회가 끝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는 걸 다들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하루짜리 대립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놀이에 가까웠습니다.

계주 선수로 뽑힌다는 것

학년을 대표해 계주에 나선다는 건 그 자체로 큰 자랑거리였습니다. 평소 체육 시간마다 이어지던 달리기 순위로 이미 반에서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지만, 정식으로 명단이 발표되는 순간의 긴장감은 또 달랐습니다.

선정된 아이들은 며칠 전부터 방과 후 운동장에 남아 바통 주고받는 연습을 반복했습니다. 손이 살짝 스치기만 해도 바통을 놓치는 실수가 나왔고, 그때마다 다시 처음부터 호흡을 맞춰봤습니다.

정작 대회 당일에는 연습과 다르게 긴장한 나머지 실수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그 며칠간의 연습 자체가 그 학년 아이들에게는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운동화 끈을 다시 묶고, 출발선에 서서 심호흡을 하던 그 짧은 순간의 긴장감은 몇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관중석의 함성이 아득하게 멀어지고, 오직 앞으로 뻗은 트랙만 눈에 들어오던 순간이었습니다.

다락방 속 한 장면

백군 응원석에 앉아 목이 터져라 이름을 외치던 순간이 떠오른다. 마지막 바퀴에서 앞서가던 청군을 백군 계주 선수가 따라잡던 그 몇 초, 운동장 전체가 하나로 들썩였다. 결과가 어느 쪽이었는지보다, 그 함성의 크기가 더 선명하게 남아있다.

트랙 밖에서 벌어지던 또 다른 응원전

계주가 한창 진행되는 동안 트랙 밖에서도 나름의 뜨거운 응원전이 펼쳐졌습니다. 선생님들도 이때만큼은 담임을 맡은 반 아이들 편에서 손뼉을 치며 힘껏 응원에 힘을 보탰습니다.

학부모석에서도 자기 아이가 뛰는 순서가 되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는 모습이 흔했습니다. 평소 얌전하던 부모님도 이 순간만큼은 목소리를 한껏 높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아이는 괜히 부끄러우면서도 은근히 힘이 났습니다.

확성기를 든 진행 선생님의 중계도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습니다. “이제 백군이 앞서 나갑니다” 같은 실황 중계 한마디에 운동장 전체가 다시 술렁였습니다.

중계 목소리가 살짝 갈라지거나 지나치게 흥분한 티가 나면, 그 자체로 아이들 사이에서 한참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승부를 전하는 목소리마저도 운동회 분위기의 일부였습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던 순간

계주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장면은 의외로 1등을 한 순간이 아니라,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 달리던 순간인 경우가 많습니다. 발이 꼬여 넘어진 선수가 벌떡 일어나 다시 뛰기 시작하면, 상대편 응원석에서도 박수가 절로 나오곤 했습니다. 승부를 떠나 그 근성 자체에 감동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순위와는 상관없이 끝까지 완주하는 모습에 다들 진심 어린 응원을 보냈습니다. 이기고 지는 것보다,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뛰는 모습 자체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습니다.

선생님들도 이런 장면이 나오면 마이크를 잡고 특별히 격려의 말을 건네곤 했습니다. 순위표에는 남지 않아도, 그 순간의 박수만큼은 누구보다 크게 받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청백 머리띠와 어깨띠

운동회 날 아이들은 저마다 청색 또는 백색 머리띠나 어깨띠를 두르고 등교했습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미리 사 두거나, 집에서 색 헝겊을 손수 잘라 만들어 쓰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같은 반이라도 편이 갈리면 그날 하루만큼은 서로 다른 팀이 됐습니다. 평소 친하던 친구와 서로 다른 색 띠를 두르고 경쟁하는 게 묘하게 낯설면서도 재미있었습니다.

운동회가 끝나면 그 머리띠는 책가방 한구석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어졌다가, 다음 해 운동회 때가 되어서야 다시 꺼내지곤 했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색 헝겊 대신 색종이나 크레파스로 직접 팻말을 만들어 응원 도구로 쓰기도 했습니다. 정교하지 않아도, 손수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응원에 더 힘을 실어줬습니다.

1982~2000년 순수했던 추억 속 운동회 모음집 / 출처: KBS 뉴스 부산

담임 선생님도 함께였던 반 대항전

계주는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었지만, 그 안에서도 같은 반끼리는 또 다른 소속감이 있었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자기 반 아이가 어느 편에 속해 있든 은근히 응원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운동회가 끝난 뒤 교실로 돌아오면, 계주 결과를 두고 한동안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이긴 반은 잔뜩 신이 났고, 진 반은 내년을 기약하며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몇몇 선생님은 계주에서 활약한 아이를 칭찬하며 다음 날 조회 시간에 따로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사소한 칭찬 한마디가 아이들에게는 꽤 오래가는 자랑거리였습니다. 며칠 동안은 그 이야기만으로도 어깨가 으쓱해지곤 했습니다.

운동회 도시락과 함께한 오후

계주가 끝나고 시상식까지 마무리되면, 가족들과 함께 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먹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결과가 어느 편이었든, 이 시간만큼은 다들 편안하게 어울렸습니다.

운동장 한쪽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김밥과 과일을 나눠 먹으며, 오전에 있었던 계주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가족들이 많았습니다. 승부의 흥분이 가라앉고 나서야 비로소 운동회다운 여유가 찾아왔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 무렵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이들은 그날 가장 짜릿했던 순간으로 어김없이 계주를 꼽았습니다. 피곤한 다리를 이끌면서도 입으로는 여전히 그 마지막 바퀴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절이 남긴 흔적

청군과 백군이라는 이름의 뜻밖의 유래, 운동회 전체를 뒤집던 마지막 바통 하나, 그리고 목이 쉬도록 외치던 응원까지. 청백계주는 단순한 달리기 이상의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지금은 청백으로 편을 가르는 운동회 자체가 예전만큼 흔하지 않지만, 그 함성만큼은 여전히 또렷하게 떠오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글: 곤봉체조, 수백 명이 하나처럼 움직이던 운동장의 순간

최종 업데이트: 2026-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