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 한국 개봉은 1년 늦고 후속편은 20년 늦은 이유

1978년 6월, 종로 피카디리 극장 매표구 앞으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습니다. 사람들 손에는 신문 한구석에서 오려낸 광고 조각이나 영화 잡지에서 본 그림 한 장이 들려 있었습니다. 우주선이 나온다는 소문은 진작부터 돌았지만, 정작 스크린으로 확인한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던 참이었습니다.

그 영화가 스타워즈였습니다. 미국에서는 1977년 5월 이미 개봉해 화제를 모았지만, 한국 관객이 극장에서 이 영화를 만난 건 그로부터 1년이 지난 1978년 6월 1일이었습니다. 그해 여름 피카디리 극장 한 곳에서만 서울 관객 34만 명을 훌쩍 넘는 사람이 표를 끊었습니다.

정작 더 이상한 일은 그다음이었습니다. 첫 편은 그렇게 들어왔는데, 뒤이은 이야기는 극장에서 한참을 볼 수 없었습니다. 이 어긋난 타이밍 하나가 스타워즈를 둘러싼 한국 극장가의 풍경을 만들었습니다.

1년 늦게 도착한 우주

조지 루카스가 만든 이 영화가 왜 1년이나 늦게 들어왔는지, 정확한 계약 경위까지 남은 기록은 많지 않습니다. 다만 20세기 폭스 쪽이 제시한 수입가가 지나치게 높아 국내 수입사들이 선뜻 나서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 무렵 국내 최고가 수입작이던 «죠스» 한 편의 수입가가 수십만 달러 선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보다 훨씬 큰 금액을 부른 영화 한 편을 덥석 사들이기엔, 그 돈을 어디서 회수할지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수입사가 많지 않았을 겁니다.

여기에 그 무렵 특유의 구조도 있었습니다. 정부가 외화 수입 편수를 연간 40편 안팎으로 묶어두고, 국산 영화를 일정 편수 만들어야 외화 수입권을 주는 방식이 굳어져 있었습니다. 흥행성보다 정책적 계산이 먼저 끼어드는 구조 안에서, 외화 한 편이 태평양을 건너 국내 스크린까지 오는 길은 원래도 순탄치 않았습니다.

1974년 무렵부터는 ‘우수영화’로 인정받은 제작사에 외화 수입권을 몰아주는 제도까지 자리를 잡았습니다. 영화 한 편의 완성도나 인기보다, 정책이 정한 기준을 통과했는지가 먼저였습니다. 스타워즈 같은 외화 한 편이 그 그물을 통과해 국내 스크린에 걸리기까지는, 계약 협상 말고도 넘어야 할 문턱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소문은 계약보다 빨랐습니다. 영화 잡지 한 귀퉁이에 실린 사진 한 장,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우주 전쟁 이야기 한 토막만으로도 아이들 사이에서는 이미 궁금증이 부풀어 있었습니다. 정작 개봉일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확실히 몰랐습니다.

어른들 사이에서도 이 영화 이야기는 심심찮게 오갔습니다. 미국 잡지를 구해 본 누군가가 사진 몇 장을 돌려 보여주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상상으로 그 우주선의 크기를 짐작해 보곤 했습니다.

피카디리 극장 앞 그 여름

단성사, 서울극장과 함께 종로 극장가의 한 축을 이루던 피카디리. 1978년 6월 1일, 이곳 간판에 스타워즈라는 이름이 내걸렸습니다.

극장 앞은 평소와는 다른 종류의 흥분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무협 영화나 멜로물 개봉 때와는 확실히 결이 달랐습니다. 은빛 로봇이니 광선검이니 하는 낯선 단어들이 매표소 줄 안에서 오갔습니다.

이 영화는 그해 6월 1일부터 8월 25일까지, 86일 동안 피카디리 스크린에 걸려 있었습니다.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도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그 한 극장에서만 34만 7천여 명이 다녀갔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1970년대 흥행 기준으로는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Star Wars Episode IV: A New Hope – Trailer / 채널: Star Wars (공식)

극장을 나선 관객들의 화제는 한동안 이 영화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어두운 상영관 안에서 처음 보는 우주선의 크기, 처음 듣는 효과음. 그런 것들이 입에서 입으로 옮겨 다녔습니다.

정작 사람들이 오래 기억한 건 줄거리보다 장면 하나하나였습니다. 사막 행성 위로 뜬 두 개의 해, 어둠 속에서 켜지는 칼날 같은 빛. 말로 설명하기보다 직접 봐야 아는 장면이라는 소문이 관객 수를 더 밀어 올렸을 겁니다.

극장을 나서던 아이들이 곧장 팔을 뻗어 칼싸움 흉내를 내던 풍경도 흔했습니다. 나뭇가지나 우산 하나만 있어도 그 자리에서 검이 됐고, 골목 어귀에서 그 흉내를 내며 뛰어다니는 무리가 저녁 늦게까지 흩어지지 않았습니다.

극장 앞 포스터 앞에 한참을 서 있다가 결국 다음 용돈날을 기약하며 돌아섰다는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표 한 장 값이 만만치 않던 시절, 이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며칠을 벼르는 일이 드물지 않았습니다.

친구 여럿이 돈을 모아 겨우 한두 명 몫의 표를 사고, 나머지는 밖에서 기다렸다가 영화 내용을 전해 듣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직접 보지 못한 아이는 그 이야기를 몇 번이고 되물으며 머릿속으로 장면을 그려 보곤 했습니다.

재개봉관에서 이 영화를 뒤늦게 만난 사람들의 기억도 남아 있습니다. 종로 본관에서 놓친 사람들은 변두리 재개봉관 간판에 이 영화 이름이 다시 걸리기를 기다렸다가, 그제야 표를 끊었다고 전해집니다.

당시 극장가에는 두 편을 한 번에 트는 동시상영관도 흔했습니다. 스타워즈처럼 화제가 큰 영화는 다른 작품과 묶여 재개봉관을 도는 일도 잦았고, 그 덕에 첫 상영을 놓친 사람도 몇 달 뒤 변두리 극장에서 뒤늦게 이 영화를 만날 길이 열려 있었습니다.

안방까지 들어온 우주선

극장가의 열기는 몇 년 뒤 텔레비전 안방으로도 옮겨왔습니다. KBS는 1985년 2월, 스타워즈를 특선영화로 편성해 안방에 처음 우리말 더빙판을 내보냈습니다.

토요일 밤 온 가족이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던 시절, 극장에서 이 영화를 놓친 사람들에게 이 방영은 뒤늦은 기회였습니다. 1989년 7월 29일에는 토요명화 시간에 다시 한번 전파를 탔습니다.

극장 스크린과 브라운관, 두 개의 화면이 같은 이야기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전해주던 시절이었습니다. 극장 개봉을 놓친 이들은 몇 년을 기다려서야 텔레비전 앞에서 그 우주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더빙판 목소리로 처음 이 영화를 알게 된 세대도 있습니다. 극장에서 자막으로 먼저 본 사람과, 안방에서 성우 목소리로 먼저 접한 사람. 같은 대사를 두고도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진 두 부류가 그렇게 생겨났습니다.

주말 저녁 편성표에 이 영화 제목이 적혀 있으면, 그날은 온 가족이 텔레비전 앞자리를 미리 맡아두곤 했습니다. 광고가 유난히 길게 느껴지던 그 저녁, 채널을 돌리지 말라는 당부가 거실 한쪽에서 나지막이 오갔습니다.

오지 않은 후속편

여기서부터가 스타워즈의 한국 이야기 중 가장 낯선 대목입니다. 첫 편이 그 정도로 흥행했으면 후속편도 금방 뒤따라 들어왔을 법한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1980년 미국에서 개봉한 «제국의 역습»은 국내 극장에 걸리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도 폭스 쪽이 부른 수입가가 걸림돌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첫 편보다 값을 더 부르는데, 정작 그 값을 감당하겠다고 나서는 수입사가 없었습니다.

극장에서 볼 수 없던 이 영화를 국내 관객이 처음 접한 통로는 텔레비전이었습니다. MBC가 1988년 1월 1일 밤 10시, 새해 첫날 안방에 이 영화의 더빙판을 내보냈습니다. 극장 스크린이 아니라 브라운관이 한국 관객에게는 첫 만남의 자리였습니다.

그 사이 시중에는 화질 거친 비디오테이프들이 돌아다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영화 잡지에서만 보던 장면을 자막 붙은 해적판 테이프로 먼저 확인한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정식 개봉작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 테이프를 빌리려고 대여점을 몇 군데씩 돌던 시절이었습니다.

비디오 대여점 진열대 구석, 표지 그림만 요란한 그 테이프를 발견하고 반가움에 곧장 빌려 갔다는 기억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겁니다. 화면은 흐릿하고 자막은 어색해도, 그 우주 이야기의 다음 편을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습니다.

정품인지 아닌지 따질 겨를도 없었습니다. 대여료를 내고 그 테이프를 빌려 가는 손님 뒤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이 줄을 서 있는 가게도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 마음이 화질 같은 건 크게 개의치 않게 만들었습니다.

Celebrating 40 Years of Empire: The Legacy / 채널: Star Wars (공식)

«제다이의 귀환» 역시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1983년 미국 개봉작이 한국 극장에 정식으로 걸리기까지는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첫 편의 흥행과 후속편의 부재. 이 어긋남 자체가 외화 수입 구조를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세 편 중 정작 첫 편만 극장에서 만난 세대가 생겨났다는 점이 이 시리즈의 독특한 대목입니다. 뒤이은 이야기의 가장 극적인 반전과 결말은 극장이 아니라 텔레비전이나 대여점 테이프로 먼저 접한 사람이 훨씬 많았을 겁니다.

그때도 지금 같은 팬덤이 있었을까

지금처럼 굿즈 매장이 따로 있던 시절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학교 앞 문방구 진열대에 이 영화 속 로봇이나 우주선을 흉내 낸 그림이 그려진 공책, 딱지 같은 물건이 나왔다는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정확히 어느 회사가 언제 만든 상품인지까지는 남은 기록으로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극장에서 본 그 장면 하나를 어떻게든 손에 쥐고 싶어 하는 마음만큼은, 지금 팬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친구가 새로 산 공책에 낯선 로봇 그림이 그려져 있으면 한 번쯤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던 시절이었습니다. 정작 그 그림이 영화 속 어떤 장면인지 정확히 아는 아이는 드물었지만, 그래도 다들 멋있다는 것만은 알았습니다.

영화 잡지 표지나 브로마이드에 실린 사진 한 장을 오려 책받침 속에 끼워 넣던 아이도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고화질 사진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기에, 흐릿한 인쇄 사진 한 장도 꽤 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학교 쉬는 시간이면 이 영화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 무리가 교실 한구석에 늘 있었습니다. 영화를 본 아이는 으쓱한 얼굴로 장면을 설명했고, 아직 못 본 아이는 그 옆에 바짝 붙어 앉아 다음 말을 기다렸습니다.

20년 만에 나란히 걸린 세 편

기다림이 끝난 건 1997년이었습니다. 개봉 20주년을 맞아 화면을 다듬고 음향을 새로 입힌 스페셜 에디션이 만들어졌고, 그해 4월 한국 극장에도 걸렸습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새로운 희망»과 함께 «제국의 역습», «제다이의 귀환»까지 클래식 3부작이 나란히 국내 스크린에 올랐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이야기를 극장에서 처음 마주하는 관객이 그해 극장 안에 많았습니다.

1978년 극장 앞에서 첫 편을 보고 나온 사람 중 일부는, 이번엔 훌쩍 자란 나이로 그 뒷이야기를 극장에서 마저 확인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비디오테이프에서 조각조각 이어 붙였던 이야기가 그제야 한 편의 완결된 삼부작으로 스크린 위에 놓였습니다.

스크린 속 특수효과도 그사이 훌쩍 달라져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모형과 필름 합성으로 만들던 우주 전투 장면에 컴퓨터그래픽이 더해졌고, 음향도 새로 다듬어진 채였습니다. 19년 전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이라면 그 차이를 한눈에 알아챘을 겁니다.

극장을 나서며 옆자리에 앉았던 자기 아이에게 “이게 그때 그 영화야”라고 설명하는 부모도 있었을 겁니다. 19년 전 자신이 줄 서 있던 그 자리에, 이번엔 자식 손을 잡고 다시 앉아 있었습니다.

스크린 속 화면은 예전보다 선명해졌지만, 어두운 상영관에 불이 꺼지고 첫 자막이 떠오르는 순간의 긴장감만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세대를 건너 같은 극장 의자에 앉은 두 사람이 나누는 감상도 이전과는 조금 달랐을 겁니다.

극장가와 스타워즈, 그 어긋남의 배경

1970년대 한국 극장가는 텔레비전 보급과 강화된 검열 속에서 관객이 줄어들던 시기였습니다. 정부는 국산 영화 제작과 외화 수입권을 엮은 정책으로 이 흐름을 관리했고, 그 그물 안에서 외화 한 편의 국내 개봉은 흥행성만으로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스타워즈의 1년 지연과 후속편의 장기 공백은 그런 구조 위에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우주 저편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정작 태평양을 건너오는 데는 지구의 정책과 계산을 몇 겹이나 거쳐야 했습니다.

혼란스러운 시대 안에서도 새로운 문화가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검열과 수입 제한이 겹겹이 쌓인 그 틈으로도, 은하계 저편 이야기 하나가 결국 국내 극장까지 흘러들어 왔습니다.

지금 세대가 잘 모르는 그 무렵 극장 사정

지금은 할리우드 대작이 전 세계 동시 개봉하는 게 당연합니다. 그때는 그런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외화 수입은 매년 정해진 편수 안에서, 정책과 협상, 그리고 수입사의 자금 사정이 얽혀 결정됐습니다.

극장에서 놓친 영화를 다시 만날 방법도 지금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재개봉관을 찾아다니거나, 몇 년을 기다려 텔레비전 특선영화 편성을 노리거나, 그도 아니면 화질 나쁜 비디오테이프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편의 영화를 완전히 만나기까지 이렇게 여러 해가 걸리는 일이 드물지 않았습니다.

지금 세대에게는 낯설게 들릴 수도 있는 이야기입니다. 보고 싶은 영화를 검색 몇 번으로 바로 확인하는 시대에서 보면, 한 편의 영화를 완결까지 지켜보는 데 20년 가까이 걸렸다는 사실 자체가 잘 믿기지 않을 겁니다.

그 시절 극장 앞에서 표를 끊던 부모 세대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 오히려 그때는 그게 당연했다고 되묻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다림 자체가 관람 경험의 일부였던 시절과, 기다림 없이 모든 걸 곧바로 확인하는 지금 사이의 거리가 이 영화 한 편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다락방 속 한 장면

토요일 밤 텔레비전 앞을 떠올리면,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마주친 특선영화 예고편에 온 가족이 갑자기 조용해지던 순간이 먼저 생각난다. 몇 년 전 극장 앞을 지나며 봤던 그 포스터 속 우주선이 브라운관 안에서 다시 날아올랐다. 소리를 낮추라는 잔소리도 그날만큼은 늦게 나왔다.

스타워즈가 남긴 어긋난 타이밍

1년 늦게 도착한 첫 편, 극장에 걸리지 못한 후속편, 20년 만에야 나란히 걸린 삼부작. 스타워즈의 한국 여정은 순탄한 흥행 신화가 아니라 어긋남과 기다림으로 채워진 이야기였습니다.

피카디리 극장 앞에서 표를 끊던 사람들, 새해 첫날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던 가족들, 화질 나쁜 테이프를 빌리러 대여점을 돌던 이들.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다른 시점에 이 우주를 만났습니다.

여러분은 스타워즈를 언제, 어떤 화면으로 처음 만나셨나요. 극장이었는지, 텔레비전 앞이었는지, 아니면 화질 나쁜 비디오테이프 앞이었는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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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업데이트: 2026-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