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롤러장, 미러볼 아래서 바퀴를 타던 토요일 오후

미러볼이 돌아가고, 스피커에서 낯선 나라 말로 된 노래가 쿵쿵 울리면 신발을 벗고 롤러스케이트 끈을 조였습니다. 바닥은 반들반들했고, 두 바퀴씩 달린 네 개의 롤러가 마룻바닥을 스치는 소리만으로도 벌써 신이 났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이미 바깥세상과는 다른 공기가 흘렀습니다.

롤러장. 지금 기준으로 보면 그냥 실내 스케이트장인데, 그 시절 십 대에게는 마을 하나에 몇 없던 어른 없는 놀이터였습니다. 부모님 눈치 볼 일 없이 친구들끼리 하루를 통째로 보낼 수 있는, 흔치 않은 공간이었습니다.

용돈을 모아야 갈 수 있던 곳

입장료와 스케이트 대여비를 합치면 학생 용돈으로는 결코 가벼운 금액이 아니었습니다. 한 번 가려면 며칠 전부터 용돈을 아껴야 했고, 그렇게 모은 돈을 들고 가는 날은 아침부터 마음이 들떠 있었습니다.

돈이 모자란 날은 친구가 조금 빌려주기도 하고, 대신 다음번에 갚기로 하는 식으로 어떻게든 함께 어울렸습니다. 그 작은 셈법 자체가 이미 우정을 확인하는 절차이기도 했습니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날엔 스케이트는 빌리지 않고 구경만 하다 오는 아이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친구들 곁에 있는 시간 자체로 만족스러웠습니다.

대구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번진 바퀴

국내 첫 롤러스케이트장은 1972년 대구에 문을 열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몇 년 사이 전국 도시마다 하나둘 롤러장이 생겨났고, 1980년대 들어서는 웬만한 동네에 한 곳쯤은 자리 잡았습니다. 큰 도시일수록 규모가 컸고, 트랙이 두 겹으로 나뉘어 초보자와 능숙한 사람이 자리를 나눠 타는 곳도 있었습니다.

토요일 오후가 되면 교문 앞에서 친구들과 만나 버스를 타고 롤러장으로 향하는 게 정해진 코스였습니다. 입장료를 내고 나면 스케이트를 빌려 신는 줄이 따로 있었고, 사이즈가 안 맞아 발가락이 접힌 채로 타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 불편함을 감수할 만큼, 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의 설렘이 컸습니다.

DJ와 미러볼, 그리고 구호

롤러장 한가운데는 늘 디제이 부스가 있었습니다. 땡땡이 셔츠를 입은 디제이가 마이크를 잡고 “다 탔으면 오라이” 같은 구호를 외치면, 트랙을 돌던 아이들이 우르르 방향을 바꾸거나 속도를 올렸습니다. 디제이의 목소리 톤 하나로 트랙 전체의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천장에서는 미러볼이 쉬지 않고 돌았고, 조명이 바닥을 스칠 때마다 롤러 바퀴 자국이 잠깐씩 반짝였습니다. 나팔바지를 입고 잘 타는 형, 누나들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곡선 타는 법을 흉내 내던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능숙한 사람들은 뒤로 타거나, 한 발로 서서 트랙을 도는 묘기를 부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트랙 가장자리에 몰려서 구경하던 초보자 무리가 생겼고, 그중 몇몇은 집에 돌아가서도 방바닥에서 그 동작을 흉내 내다 넘어지기 일쑤였습니다. 양말만 신고 장판 위를 미끄러지며 그 흉내를 내던 방구석 연습도, 돌이켜보면 나름의 진지한 훈련이었습니다.

Goombay Dance Band – Eldorado (Official Video), 롤러장을 평정했던 유로디스코 대표곡

유로디스코가 울리던 공간

롤러장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음악은 대부분 유럽에서 건너온 디스코 곡이었습니다. 굼바이 댄스 밴드의 ‘엘도라도’는 그중에서도 유독 자주 걸리던 곡이었고, 정작 이 노래를 만든 유럽보다 한국 롤러장에서 더 오래, 더 뜨겁게 소비됐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가사 뜻을 정확히 아는 아이는 드물었습니다. 그래도 후렴구 멜로디만큼은 다들 흥얼거릴 줄 알았고, 그 노래가 나오는 순간 트랙 위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습니다.

이런 유로디스코, 이탈로디스코 곡들은 정작 본고장인 유럽에서는 그리 오래가지 않은 유행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롤러장과 나이트클럽을 통해 꾸준히 소비되면서, 오히려 원산지보다 더 오랫동안 사랑받은 노래로 남았습니다. 지금도 이 시절 음악을 검색하면 ‘롤러장 음악’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불리는 것도 그 흔적입니다.

다락방 속 한 장면

넘어질까 봐 벽을 짚고 조심조심 타던 첫날이 떠오른다. 몇 주 지나자 벽에서 손을 떼고 곡선 구간을 도는 순간이 왔는데, 그때 느낀 뿌듯함은 지금도 또렷하다. 그날 집에 돌아가는 길, 발목이 시큰거려도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넘어지고 부딪히며 배운 것들

처음 스케이트를 신는 날은 누구나 벽을 붙잡고 걸음마부터 다시 배우는 기분이었습니다. 앞으로 나가려다 뒤로 넘어지고, 방향을 틀려다 옆 사람과 부딪히는 일이 흔했습니다. 무릎과 팔꿈치에 멍이 들지 않고 롤러장을 졸업한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그렇게 몇 번을 넘어지다 보면 어느 순간 균형이 잡히는 때가 왔습니다. 처음으로 벽에서 손을 떼고 트랙 한 바퀴를 완주했을 때의 그 기분은, 다른 어떤 성취감과도 비슷하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을 지켜본 친구가 박수를 쳐주기라도 하면, 창피했던 그동안의 실수는 금세 잊혔습니다.

커플 스케이트, 그 짧은 용기

디제이가 노래 사이사이 “짝을 지어 타보라”고 부추기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트랙 한쪽에서 손을 잡는 남녀가 하나둘 생겼고, 나머지는 그 광경을 곁눈질하며 자기도 모르게 속도를 늦췄습니다. 며칠 전부터 같은 반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기를 은근히 기대하며 롤러장에 오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손을 내밀지도, 받지도 못한 채 괜히 반대편으로 방향을 틀어 그 순간을 피하던 아이도 있었을 겁니다. 몇 바퀴 뒤 음악이 바뀌면 다시 다들 각자의 속도로 돌아갔지만, 그 짧은 순간의 두근거림만큼은 꽤 오래 남았습니다. 며칠이 지나도록 그 순간을 곱씹으며 다음번엔 용기를 내보겠다고 다짐하는 아이도 적지 않았습니다.

인라인스케이트, 바퀴가 실내를 벗어나다

1991년 무렵부터 국내에 인라인스케이트, 이른바 롤러블레이드가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바퀴가 일렬로 늘어선 이 신문물은 롤러장의 좁은 실내 트랙보다 더 빠르고 자유로운 움직임을 원했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공원과 거리에서 인라인 동호회가 하나둘 생겨나는 사이, 실내 롤러장을 찾는 발길은 조금씩 줄어들었습니다. 미러볼 아래 트랙을 돌던 놀이가, 야외의 넓은 공간을 가로지르는 놀이로 옮겨간 셈입니다.

새로운 스케이트를 처음 신어본 사람들은 다들 놀라워했습니다. 바퀴 두 개가 나란히 붙어있던 예전 방식과 달리, 일렬로 늘어선 바퀴는 속도부터 달랐습니다. 롤러장에서 다져진 균형 감각이 있는 사람일수록 이 신문물에 더 빨리 적응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미러볼 아래서 다져온 실력이 엉뚱하게도 야외에서 빛을 발한 셈입니다.

고등학생이 되면 다른 곳으로

롤러장을 드나들던 아이들이 고등학생, 대학생이 되면 발길을 옮기는 곳이 따로 있었습니다. 디스코텍이었습니다. 롤러만 없어졌을 뿐, 흘러나오는 음악은 롤러장에서 듣던 곡과 상당수 겹쳤습니다.

어린 시절 롤러장에서 익힌 리듬감이, 디스코텍 플로어에서도 그대로 쓸모가 있었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바퀴만 벗었을 뿐 몸이 기억하는 박자는 크게 다르지 않았던 셈입니다.

롤러장은 그렇게 한 세대가 성인이 되기 전 거쳐 가는 정거장 같은 공간이었습니다. 인라인스케이트로 옮겨간 흐름과 세대가 자라며 다른 놀이를 찾아간 흐름이 겹치면서, 1990년대로 넘어가는 사이 롤러장은 하나둘 자취를 감췄고, 그 자리엔 다른 업종이 들어섰습니다.

세월이 지나 다시 돌아온 바퀴 소리

롤러장이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지만, 몇 년에 한 번씩 이 공간은 다시 소환됩니다. 지자체나 문화 행사에서 ‘추억의 롤러장’이라는 이름으로 임시 트랙을 깔고, 그 시절 음악을 다시 틀어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자리가 종종 열립니다.

중년이 된 사람들이 오랜만에 스케이트를 신고 넘어질 듯 말 듯 트랙을 도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풍경이 됩니다. 몸은 예전 같지 않아도, 그 음악이 흐르는 순간만큼은 다시 십 대로 돌아간 듯한 표정을 짓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이런 자리에 자녀나 손주를 데리고 나온 사람도 있습니다. 젊은 세대는 낯선 음악과 낯선 놀이를 신기해하며 구경하고, 그 곁에서 부모 세대는 오랜만에 그 시절 감각을 몸으로 되짚어봅니다. 세대가 한자리에서 같은 트랙을 도는 드문 풍경입니다.

남은 이야기

미러볼 아래서 벽을 짚고 넘어지던 기억, 디제이 구호에 맞춰 방향을 바꾸던 순간, 손을 내밀지 못했던 커플 스케이트의 순간, 그리고 몇 번이고 다시 듣던 낯선 나라 노래. 롤러장은 사라졌지만 그 소리와 조명은 꽤 오래 남아있습니다.

지금도 저 노래 전주만 들으면, 반들거리던 마룻바닥 냄새까지 함께 떠오르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발가락이 접히던 빌린 스케이트의 감촉도, 어쩌면 그 노래만큼이나 또렷하게 남아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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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업데이트: 2026-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