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방구 옆 좁은 계단을 내려가면 담배 연기와 기계음이 뒤섞인 공간이 나왔습니다. 동전 부딪히는 소리, 화면 속 벌레떼가 쏟아지는 효과음, 그리고 순서를 기다리며 기계 위에 백원짜리를 쌓아두는 아이들. 그 한가운데에서도 가장 많은 아이들을 몰고 다니던 화면이 하나 있었습니다.
게임 이름은 갤러그. 일본 남코가 1981년 9월 내놓은 이 슈팅 게임은 이듬해인 1982년 한국 오락실에 상륙하자마자 순식간에 화면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한창 유행하던 시기에는 오락실 기계의 80%가 갤러그였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갤럭시안의 뒤를 이은 후계자
갤러그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임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전에 이미 갤럭시안이라는 비슷한 형식의 슈팅 게임이 오락실에 자리 잡고 있었고, 갤러그는 그 후속작 격으로 등장했습니다. 화면 구성이나 적기 디자인은 서로 비슷했지만, 캡처빔이라는 새로운 장치 하나가 두 게임의 인기를 완전히 갈라놓았습니다.
단순히 적을 쏘아 없애는 게 전부였던 이전 게임들과 달리, 갤러그는 위험을 감수하고 아군기를 되찾아 화력을 키우는 선택지를 아이들에게 던져줬습니다. 이 한 가지 장치 덕분에 아이들은 같은 게임을 하고 또 해도 매번 다른 전략을 시도해볼 수 있었습니다. 무작정 쏘기만 하던 아이도 어느 순간부터는 언제 위험을 감수할지 스스로 판단하게 됐습니다.
벌레잡기라 불리던 그 게임
국내에서는 갤러그라는 원래 이름 대신 ‘벌레잡기’로 더 많이 불렸습니다. 화면 위쪽에서 대열을 이루며 내려오는 외계 곤충 모양 적기를 격추하는 게 게임의 전부였지만, 그 단순한 규칙 하나로 아이들은 밥 먹듯 오락실을 드나들었습니다. 이름조차 정확히 모르고 그저 “벌레잡기 하러 가자”는 말 한마디로 통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엔 정식 라이선스를 받은 기판이 거의 없었습니다. 세운상가에서 복제한 기판이 사실상 전부였고, 그런데도 인기는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1982년 말 인기를 얻기 시작해 1983년쯤에는 한 오락실 기계의 절반 이상이 갤러그 화면으로 채워질 정도였습니다.
잡힌 아군기를 되찾으면 두 배가 되는 재미
갤러그에는 다른 슈팅 게임에 없던 독특한 장치가 있었습니다. 보스급 적기가 쏘는 빛줄기에 내 전투기가 붙잡히면 적으로 돌아서는데, 이 적기를 다시 격추하면 원래 내 전투기를 구출할 수 있었습니다. 구출에 성공하면 두 대의 전투기가 나란히 붙어 화력이 두 배가 되는 ‘듀얼 파이터’가 완성됐습니다.
점수 욕심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100만 점을 넘기면 점수가 다시 0으로 돌아가 버렸기 때문에, 99만 점대에 다다르면 일부러 목숨을 끊어 점수를 지키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변두리 동네 오락실에서도 하루 한 번쯤은 100만 점을 넘기는 고수가 나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만큼, 실력자들의 수준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스테이지가 하나씩 올라갈수록 적기의 움직임은 점점 더 빨라지고 대형도 한층 복잡해졌습니다. 화면을 가득 채운 벌레떼가 한꺼번에 급강하하는 순간이면, 지켜보던 아이들 사이에서도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하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손끝 하나의 반응 속도로 승부가 갈리는 그 긴장감이, 아이들을 몇 시간이고 화면 앞에 붙잡아 두는 힘이었습니다.
추억의 오락실 “갤러그” 80년대 오락게임
골목마다 생겨나던 전자오락실
갤러그가 몰고 온 열풍은 오락실 숫자 자체를 바꿔놓았습니다. 서울시내 전자오락실은 1979년 900여 곳에 불과했지만, 갤러그가 유행하던 1982년에는 3,570여 곳으로, 1983년에는 6,000여 곳으로 늘어났습니다. 대학가 앞에는 좁은 골목 하나에 오락실 간판이 스무 개 넘게 걸린 곳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늘어난 오락실 대부분을 채운 게 갤러그였습니다. 정품 기판이 귀했던 탓에 세운상가에서 복제한 기판이 전국 오락실로 퍼져나갔고, 어느 동네를 가도 비슷한 효과음과 화면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서울 변두리든 지방 소도시든, 갤러그를 모르는 아이는 거의 없었습니다.
학교 앞 오락실은 하교 시간이면 늘 아이들로 붐볐습니다. 가방을 멘 채로 화면 앞에 쪼그려 앉아 순서를 기다리다가,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어서야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는 날이 많았습니다. 부모님 몰래 다녀왔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 집에 가기 전 옷에 밴 담배 냄새를 털어내던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백원 넣고 오십원 두 개, 그 동전의 셈법
오락실 요금은 시기마다 조금씩 달랐습니다. 초반에는 50원이었다가 점차 100원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갤러그는 인기가 워낙 높아 이미 100원을 받는 곳이 많았습니다. 어떤 오락실은 100원을 넣으면 50원짜리 동전 두 개로 거슬러주기도 했습니다.
순서를 두고 다투는 일이 없도록, 차례를 기다리는 아이는 게임기 위에 자기 동전을 미리 올려두는 게 규칙이었습니다. 이른바 ‘대기 코인’이었습니다. 굳이 줄을 서서 말로 순서를 확인할 필요 없이, 동전 개수만 보면 자기 차례가 언제인지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용돈을 아껴 모은 동전 몇 개를 손에 꼭 쥐고 오락실 문을 밀던 그 설렘은, 지금 생각해도 또렷합니다.
다락방 속 한 장면
친구가 100만 점을 넘긴 순간이 떠오른다. 화면 점수가 0으로 돌아가는데도 다들 환호성을 질렀다. 그날만큼은 그 친구가 오락실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었다.
전자독버섯이라 불리던 시절
어른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습니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오락실을 ‘전자독버섯’이라 부르며 아이들의 영혼을 빼앗는 공간으로 그렸습니다. 사회정화위원회가 나서서 단속과 폐쇄를 시도한 적도 있었고, 오일쇼크 여파로 에너지 절약이 국가적 화두이던 시절이라 전력을 많이 쓰는 오락실은 정부 입장에서도 눈엣가시였습니다.
오락실을 드나든다는 사실만으로 불량학생 취급을 받는 일도 흔했습니다. 교문 앞에서 선생님이 하굣길 학생들의 가방을 검사하고, 오락실 골목을 순찰하는 일도 드물지 않았습니다. 그런 시선 속에서도 아이들은 골목 안쪽으로, 문방구 뒷문으로 슬며시 몸을 숨기며 오락실을 찾았습니다. 성적표에 오락실 얘기가 적힐 리는 없었지만, 부모님 귀에 들어가면 그날 저녁은 각오해야 했습니다.
동전을 아끼려고 10원짜리를 갈아 50원처럼 위조해 쓰는 아이들까지 등장하면서 사회문제로 번지기도 했습니다. 1983년에는 오락기 감전사고까지 보도되며, 오락실을 둘러싼 어른들의 우려는 한층 더 커졌습니다.
같은 해에는 형제가 소련 첩보위성을 직접 보겠다며 집을 나섰다가 닷새 만에 돌아온 일이 신문에 실린 적도 있었습니다. 정작 가출 기간 동안 낮에는 오락실에서 갤러그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오락실이 아이들을 얼마나 사로잡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로 회자됐습니다.
화면 앞에 늘어선 구경꾼들
정작 오락실 안 풍경은 살벌한 사회문제라기보다 순수한 놀이 공간에 가까웠습니다. 실력 좋은 아이가 게임을 하고 있으면 뒤로 구경꾼들이 몇 겹씩 둘러섰습니다. 위기의 순간마다 탄식이 터졌고, 위기를 넘기면 다 같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하이스코어 명단에 자기 이니셜 세 글자를 새기는 건 그 자체로 자랑거리였습니다. 다음 날 다시 오락실에 왔을 때 그 이니셜이 그대로 남아있으면,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곤 했습니다. 누군가 그 기록을 깨고 나면, 다시 도전할 동전을 손에 쥐고 순서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줄이 길어졌습니다.
몸싸움이나 말다툼으로 번지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대신 누가 더 오래 살아남는지, 누가 더 높은 점수를 내는지를 두고 다투는 무언의 경쟁이 오락실 안 공기를 팽팽하게 채웠습니다. 잘하는 아이 뒤에 줄지어 서서 훈수를 두다가, 정작 자기 차례가 되면 긴장한 손끝이 버튼 위에서 떨리기도 했습니다.
1981년 오리지널 갤러그 아케이드 기기, 실제 작동 영상
오락실 주인아저씨와 눈치 게임
오락실마다 카운터를 지키던 주인아저씨의 존재도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교복을 입은 채 몰래 들어온 학생을 알아보고 슬쩍 눈감아 주는 주인도 있었고, 반대로 학교에 이르겠다며 엄포를 놓는 주인도 있었습니다. 단속반이 뜬다는 소문이 돌면 삽시간에 오락실 안이 술렁였고, 아이들은 가방을 챙겨 뒷문으로 빠져나가곤 했습니다.
같은 반 친구를 오락실에서 마주치는 일도 흔했습니다. 서로 못 본 척 눈을 피하다가도, 정작 다음 날 학교에서는 “너도 거기 있었냐”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오락실이라는 공간 자체가 어른들 몰래 공유하는 비밀 아지트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 비밀을 함께 나눈 친구들끼리는 묘한 동지 의식마저 생겨났습니다.
남은 이야기
동전 몇 개를 손에 쥐고 문방구 옆 계단을 내려가던 걸음, 벌레떼를 격추하며 지르던 탄성, 그리고 하이스코어에 이니셜을 새기던 그 뿌듯함까지. 갤러그는 화려한 그래픽 하나 없이도 한 시대 오락실을 통째로 지배한 게임이었습니다.
기계 위에 동전을 쌓아두고 순서를 기다려본 기억이 있다면, 그 오락실의 소음과 열기를 함께 나눈 겁니다. 어른들에게는 눈엣가시였을지 몰라도, 아이들에게는 용돈 백 원으로 살 수 있는 가장 짜릿한 몇 분이었습니다.
요즘도 그 시절 모양을 그대로 본뜬 미니 아케이드 기기가 다시 나와 어른이 된 이들의 책상 한쪽을 차지하곤 합니다. 화면은 훨씬 작아졌지만, 버튼을 누르는 순간 떠오르는 그 오락실의 공기만큼은 크기와 상관없이 그대로 되살아납니다. 동전 대신 배터리를 넣는다는 점만 다를 뿐, 손끝의 긴장감은 예전 그대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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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업데이트: 2026-07-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