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운동회 줄다리기, 그 팽팽했던 몇 초는 왜 그리 길었을까

양쪽에서 팽팽하게 당겨진 밧줄 한가운데, 빨간 리본이 파르르 떨렸습니다. 발뒤꿈치를 흙 속에 박고 상체를 뒤로 젖힌 아이들 뒤로, 반 전체가 한 줄로 늘어서서 “영차, 영차”를 외쳤습니다. 리본이 어느 한쪽 선을 넘어가는 그 몇 초 사이에, 오전 내내 쌓인 반의 자존심이 걸려 있었습니다.

줄다리기는 국민학교 가을 운동회마다 반 대항으로 치러지던 종목이었습니다. 두 줄을 하나로 이어 잡고, 각자 있는 힘껏 뒤로 당겨 상대를 자기 쪽으로 끌어오면 이기는 단순한 규칙이었지만, 그 단순함 때문에 오히려 반 전체가 하나로 뭉치는 종목이었습니다. 달리기처럼 발이 빠른 몇 명만 나서는 종목이 아니라, 반 아이들 전부가 한 줄에 매달려야 하는 몇 안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반 전체가 한 줄에 매달리던 순간

줄다리기 순서가 다가오면 담임 선생님은 먼저 자리부터 정했습니다. 힘이 좋은 아이는 맨 뒤에서 줄을 몸에 감고 버티는 역할을 맡았고, 맨 앞쪽은 구령을 붙이며 박자를 맞추는 아이가 섰습니다. 나머지는 그 사이사이에 늘어서서 자기 몫의 밧줄을 움켜쥐었습니다.

줄을 잡는 순서 하나에도 은근한 눈치 싸움이 있었습니다. 맨 뒤는 아무나 서는 자리가 아니었고, 반 대표로 뽑혔다는 사실만으로 어깨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반대로 줄 맨 끝에 서서 딱히 힘을 못 쓰는 아이들도,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 한몫을 한다고 믿었습니다.

심판을 맡은 선생님이 밧줄 한가운데 리본을 묶고, 양쪽 바닥에 선을 그었습니다. 호루라기가 울리기 전 몇 초, 아이들은 이미 몸을 낮추고 발을 땅에 박은 채 신호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학년과 고학년의 줄다리기는 생김새부터 달랐습니다. 1~2학년은 짧고 가는 줄을 썼고, 5~6학년으로 갈수록 줄도 길어지고 참가 인원도 늘었습니다. 고학년 줄다리기 순서가 되면 운동장 전체가 그쪽으로 몰려들 만큼 구경거리도 커졌습니다.

연습으로 다져지던 반의 손발

운동회 며칠 전부터 체육 시간이면 담임 선생님이 반 전체를 운동장에 세워 놓고 줄다리기 연습을 시켰습니다. 누가 앞에 서고 누가 뒤에 서야 하는지, 몇 명씩 끊어서 힘을 몰아줘야 하는지를 몇 번이고 맞춰봤습니다.

구령을 붙이는 아이의 목소리 하나에 반 전체의 호흡이 갈렸습니다. 너무 빠르면 힘이 흩어졌고, 너무 느리면 순간의 기세를 놓쳤습니다. 그 미묘한 박자를 맞추는 게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아이들은 연습을 거듭하며 몸으로 익혔습니다.

여학생들도 이 연습에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남녀 혼합으로 줄을 서는 반이 많았고, 힘으로 밀리지 않으려면 다 같이 같은 리듬으로 당겨야 한다는 사실을 다들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온몸으로 버티는 그 몇 초

호루라기가 울리면 밧줄은 곧바로 팽팽해졌습니다. 손바닥이 밧줄에 쓸려 얼얼해지고, 몇 번 잡아당기다 보면 손금 자국이 벌겋게 남았습니다. 그래도 중간에 손을 놓는 아이는 거의 없었습니다.

맨 뒤에서 버티는 아이는 두 다리를 넓게 벌리고 상체를 거의 눕히다시피 뒤로 젖혔습니다. 앞쪽 아이들은 짧고 빠르게 “영차, 영차” 구령을 붙이며 순간순간 힘을 몰아 당겼습니다. 리본이 한쪽으로 조금씩 밀리기 시작하면, 그 반대편에서는 다급한 함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승부는 대개 십여 초 안에 갈렸습니다. 리본이 정해진 선을 넘어가는 순간, 이긴 편은 그대로 뒤로 넘어지며 흙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손바닥이 쓰라린 것도 잊고 서로 얼싸안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줄이 팽팽하게 당겨진 채 한동안 꿈쩍도 하지 않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양쪽 다 더는 밀리지 않으려고 온몸의 무게를 뒤로 실은 채 버티기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잠깐의 정적이 오히려 어느 폭발적인 함성보다 더 긴장감이 컸습니다.

1960년대, 1980년대 가을 운동회 모습, KTV 다큐 아카이브 영상

만국기 아래, 온 가족이 지켜보던 순간

줄다리기가 시작되면 운동장 가장자리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있던 학부모들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자기 아이가 서 있는 자리를 확인하려 목을 빼고, 반 이름이 불리는 순간부터 큰 소리로 이름을 외쳤습니다.

학년 순서가 끝나면 학부모들이 직접 밧줄을 잡고 겨루는 순서가 이어지는 학교도 있었습니다. 평소 점잖던 아버지들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온 힘을 다해 당기는 모습에, 아이들은 손뼉을 치며 자기 부모를 응원했습니다. 그 하루만큼은 어른도 아이도 똑같이 흙바닥에 발을 박고 서 있었습니다.

넥타이를 풀어헤친 아버지, 앞치마를 두른 채로 뛰어나온 어머니까지. 평소 교실 밖에서 보던 부모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얼굴이었습니다. 그 낯선 모습이 오히려 아이들에게는 두고두고 이야깃거리가 됐습니다.

지는 편이 억울했던 이유

줄다리기는 다른 어떤 종목보다 뒷말이 많은 경기였습니다. 신호보다 한 박자 먼저 당겼다느니, 발이 선을 넘었다느니 하는 항의가 심판 선생님에게 쏟아졌습니다. 그래도 대부분은 재시합 없이 그 결과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진 반 아이들은 손바닥을 털며 억울함을 토로했지만, 오래 가지는 않았습니다. 다음 순서로 박 터뜨리기나 계주가 기다리고 있었고, 새로운 승부에 다시 마음을 쏟아야 했습니다.

손바닥이 밧줄에 쓸려 벌겋게 부어오르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장갑을 끼고 나오는 아이는 거의 없었고, 다치는 걸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다음 날 손바닥에 남은 자국을 서로 보여주며 자랑처럼 이야기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이기고 진 것과 별개로, 반 아이들 전부가 밧줄 하나에 매달려 같은 방향으로 몸을 던졌다는 사실만큼은 승패를 떠나 남았습니다. 달리기처럼 혼자 잘한다고 되는 종목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다락방 속 한 장면

줄 맨 끝자리에 서서 그저 있는 힘껏 당기기만 했던 기억이 있다. 앞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른 채, 반대편으로 몸이 끌려가지 않으려고 발뒤꿈치에만 힘을 줬다. 리본이 우리 쪽으로 넘어오던 순간의 함성, 그리고 손바닥에 남은 얼얼한 감각만큼은 지금도 또렷하다.

사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놀이

줄다리기가 국민학교 운동장에만 있던 놀이는 아니었습니다. 캄보디아, 고대 이집트, 그리스, 인도, 중국 등 세계 여러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두 편으로 나뉘어 줄을 당기는 놀이가 전해져 왔고, 1900년부터 1920년까지는 올림픽 정식 종목이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전통 줄다리기는 원래 운동회 종목이 아니라 음력 정월 대보름 세시풍속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집집마다 볏짚을 걷어 세 가닥으로 꼰 줄을 다시 굵게 엮어 만든 큰 줄을 두 편으로 나눠 당겼고, 여성 편을 상징하는 암줄이 이기면 그해 풍년이 든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마을 단위 줄다리기 문화가 2015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당진 기지시줄다리기를 비롯해 삼척 기줄다리기, 창녕 영산줄다리기, 밀양 감내게줄당기기, 의령 큰줄땡기기, 남해 선구줄끗기까지 국내 여섯 곳의 줄다리기가 함께 이름을 올렸습니다.

줄 하나를 만드는 과정도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세 명씩 짝을 지어 볏짚을 나눠 잡고 세 가닥으로 꼬면 그것이 가닥줄이 됐고, 그 가닥줄 세 개를 다시 굵게 엮어야 비로소 줄다리기에 쓸 굵은 줄 하나가 완성됐습니다. 온 마을이 며칠을 매달려야 끝나는 작업이었습니다.

1982~2000년 추억 속 가을 운동회 모음집, KBS 뉴스 부산 아카이브

운동장의 줄다리기는 조금 달랐다

마을 줄다리기에 쓰이던 밧줄은 볏짚을 몇 명이 매달려 며칠씩 꼬아 만드는 굵은 줄이었습니다. 국민학교 운동회의 줄은 그렇게 정교하지 않았습니다. 체육 창고에 있던 마 밧줄이나 나일론 밧줄을 그대로 꺼내 쓰는 게 보통이었고, 굵기도 마을 줄다리기보다 훨씬 가늘었습니다.

풍년을 기원하는 의례로서의 의미도, 운동장 위에서는 크게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에게 그 줄은 그저 반의 명예를 건 승부 도구였을 뿐입니다. 마을을 하나로 묶던 오래된 세시풍속이, 학교 운동장에서는 전혀 다른 얼굴로 반 대항전이 되어 있었습니다.

지금 세대에게는 국민학교라는 이름부터 낯설 수 있습니다. 1996년까지 초등학교를 부르던 이 명칭 아래에서, 아이들은 해마다 가을이면 이런 종목들로 채워진 운동회를 반 전체가 함께 치렀습니다.

지금은 좀처럼 보기 힘든 종목

요즘 학교 운동회에서는 줄다리기를 찾아보기가 예전만큼 쉽지 않습니다. 안전사고가 나면 그 책임을 교사와 학교가 떠안아야 한다는 부담, 넓은 운동장과 긴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겹치면서, 몸을 크게 부딪는 종목들부터 하나둘 운동회 순서표에서 밀려나고 있습니다.

손바닥에 밧줄 자국이 남을 정도로 힘을 쏟던 그 짧은 승부, 반 전체가 한 방향으로 몸을 기울이던 그 풍경도 함께 옅어졌습니다. 대신 그 자리는 몸싸움 없이도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단체 게임들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굵은 밧줄 한 가닥을 사이에 두고 반 전체가 발을 맞추던 감각은, 요즘 아이들이 하는 어떤 협동 게임에서도 좀처럼 다시 느끼기 힘든 감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순위표에 적힌 결과보다, 온몸으로 버텨야 했던 그 몇 초의 무게가 더 오래 남는 종목이었습니다.

남은 이야기

손바닥에 밧줄 자국이 남도록 온 힘을 다해 당기던 순간, 리본이 넘어가던 찰나의 함성까지. 줄다리기는 화려하지 않아도 반 전체를 하나로 만들던 종목이었습니다.

줄 끝자리에 서서 발뒤꿈치에 힘을 줘 본 기억이 있다면, 그 운동장의 흙먼지와 함성을 함께 나눈 겁니다. 지금은 사진과 영상 속에서나 다시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그 몇 초의 힘겨루기가 남긴 여운만큼은 여전히 또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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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업데이트: 2026-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