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섬, 둘리와 하니를 키운 만화잡지는 왜 사라졌을까

학교 앞 서점 유리문에 “이번 달 보물섬 들어왔습니다”라는 종이 한 장이 붙으면, 하굣길은 다들 약속이나 한 듯 그 서점으로 먼저 향했습니다. 육영재단이 1982년 10월 창간한 이 만화 전문 월간지는 매달 500쪽이 넘는 두툼한 분량으로 아이들 손에 들려 있었고, 1996년 9월 예고 없이 폐간될 때까지 14년 가까이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만화만으로 채운, 그때는 파격이었던 잡지

원래 보물섬은 육영재단이 펴내던 어린이 교양지 어깨동무의 별책부록이었습니다. 본책보다 만화로만 채운 부록 쪽 반응이 훨씬 뜨거웠고, 그 부록이 결국 독립해 단행본 잡지로 창간됐습니다.

잡지 한 권을 오직 만화로만 채운다는 발상 자체가 그때로선 파격이었습니다. 스포츠물, 명랑만화, 순정만화, 액션물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한 권 안에 욱여넣었습니다.

표지를 넘기면 다음 장, 또 다음 장까지 전부 다른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한 권을 사면 하루 이틀로는 다 못 읽는 분량이었습니다.

서점 진열대에서도 보물섬은 유독 눈에 띄었습니다. 다른 잡지보다 두툼한 옆면 두께 하나만으로도 어느 게 이번 달 신간인지 금방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표지 한가운데엔 굵은 제호 글자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었고, 그 아래로 이번 호의 주인공이 될 만화 속 장면이 미리 살짝 얹혀 있었습니다. 표지만 흘끗 봐도 이번 달엔 어떤 이야기가 실렸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월간만화 보물섬 창간3호(1982년 12월호) 실물 영상

부모가 사주고 싶어했던 만화책

그 시절 만화는 어른들에게 그리 곱게 보이지 않는 매체였습니다. 눈 버린다, 저속하다는 잔소리가 흔하게 따라다녔습니다.

보물섬은 그 시선을 정면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실제 구매자인 부모를 겨냥해 교양과 건전함을 앞세운 편집 방향을 잡았고, 그 전략이 어깨동무·소년중앙·새소년 같은 기존 어린이 잡지들과 격차를 벌리는 결정적인 이유가 됐습니다.

정작 아이들은 그런 사정을 알 리 없었습니다. 그저 다음 달치가 궁금해 서점 앞을 서성거렸을 뿐입니다.

재단법인이 만드는 잡지라는 점도 부모들에게는 나름의 안심 포인트였습니다. 만화 자체를 탐탁지 않아 하던 부모조차, 다른 만화책보다는 이 잡지 정도면 사줘도 괜찮다고 여기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둘리와 하니, 그리고 라임오렌지나무

1983년 4월, 아기 공룡 한 마리가 이 잡지 첫머리에 등장했습니다. 김수정 작가의 아기공룡 둘리는 이후 10년 가까이 연재를 이어가며 보물섬의 얼굴이 됐습니다.

1985년에는 이진주 작가의 달려라 하니가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30화, 다섯 권 분량으로 1987년 완결된 이 작품은 이듬해 KBS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또 한 번 인기를 모았습니다.

펭킹 라이킹, 요정 핑크 같은 작품들도 이 지면에서 연재를 시작해 나중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희재 작가는 소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만화로 옮긴 작품과 «모래알»을 같은 지면에 실었는데, 개그물 사이에서 유독 진지한 정서를 남기는 작품으로 기억하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같은 호 안에서도 앞쪽엔 배꼽 잡고 웃던 명랑만화가, 뒤쪽엔 눈물 훔치게 만드는 이야기가 나란히 실려 있었습니다. 한 권을 사면 웃음과 울음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는 점도 이 잡지만의 매력이었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이번 달 보물섬 이야기는 흔한 화제였습니다. 등장인물 대사를 흉내 내거나, 지난달 결말이 어떻게 이어질지 서로 예상을 늘어놓으며 쉬는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만화방과 함께 자란 아이들

용돈이 빠듯한 달에는 새 책 대신 만화방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1950년대부터 이어져 온 만화방은 그 무렵 동네마다 한둘씩 있었고, 보물섬 역시 그 서가 한 칸을 늘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친구와 나눠 빌려 읽고 서로 줄거리를 맞춰보는 것도 흔한 방식이었습니다. 국내 원로 만화가들 중 어린 시절 만화방을 거치지 않은 이가 거의 없다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만화방은 그 세대 만화 문화의 뿌리였습니다.

서가 맨 앞자리는 늘 신간 차지였습니다. 이번 달 보물섬이 들어온 날이면, 순서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문 앞까지 줄을 서는 풍경도 드물지 않았습니다.

대여료를 아끼려고 다 읽은 책을 곧바로 반납하고 새 책으로 바꿔 오는 요령도 다들 하나쯤 갖고 있었습니다. 주인아저씨가 이번 달 보물섬이 아직 안 들어왔다고 하면, 며칠 뒤 다시 들르는 게 당연한 일과였습니다.

KBS 옛날티비 아카이브 – 만화방을 돌아본 방송

그 많던 만화잡지 중 왜 보물섬이었을까

1980년대 초중반만 해도 어린이 잡지 시장에는 경쟁자가 많지 않았습니다. 만화만으로 채운 두툼한 분량, 그리고 재단법인이 발행한다는 신뢰가 겹치면서 보물섬은 오랫동안 독보적인 자리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방학이 다가오면 서점 앞은 더 붐볐습니다. 평소보다 두꺼운 방학 특대호가 나온다는 소문이 돌면, 용돈을 미리 모아두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표지에 큼지막하게 적힌 “특대호”라는 글자만 봐도 괜히 마음이 들떴습니다.

흐름이 바뀐 건 1987년 언론기본법이 폐지되면서부터였습니다. 잡지 발행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자 만화잡지 창간 붐이 일었습니다. 1988년 12월 국내 최초의 주간 만화잡지 아이큐 점프가 나왔고, 1991년에는 대원동화가 소년 챔프를 새로 선보였습니다.

새로 등장한 주간지들은 매주 새 이야기를 쏟아내며, 스포츠물과 공상과학물을 앞세워 젊은 독자층을 빠르게 흡수해 갔습니다. 한 달을 기다려야 하는 월간지 보물섬의 호흡은 점점 느리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보물섬이 지켜오던 교양 노선도 점점 낡은 인상으로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부모가 먼저 안심하고 사주던 잡지보다, 아이들이 스스로 골라 보는 잡지 쪽으로 무게가 옮겨가고 있었습니다.

재미와 교양, 그 사이 어디쯤

만화가 아직 불량한 오락으로 의심받던 시절, 보물섬은 교양지의 얼굴을 하고 등장해 그 벽을 조금씩 허물었습니다. 잡지가 오래갈수록 무게중심은 재미와 상업성 쪽으로 기울었고, 1988년과 1989년 두 차례 시도한 혁신호도 큰 반향을 얻지 못했습니다.

1996년 9월호를 끝으로, 열네 돌을 채 넘기지 못하고 폐간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별다른 예고 기사도 없이, 그저 다음 달 서점 진열대에 신간이 올라오지 않는 것으로 독자들은 그 소식을 알게 됐습니다.

한때는 서점 앞을 줄 세우던 잡지가 이렇게 조용히 사라졌다는 사실을, 그때 그 서점 앞을 서성이던 아이들 대부분은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누나도 동생도 함께 넘겨보던 한 권

보물섬 안에는 남자아이들이 좋아하던 스포츠물·액션물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순정만화 지면도 따로 자리 잡고 있어서, 누나나 언니가 먼저 집어 들고 눈물 콧물 흘리며 읽는 경우도 흔했습니다.

동생은 앞쪽 명랑만화부터, 누나는 뒤쪽 순정만화부터 펼쳐 읽는 식으로 한 권을 나눠 보는 집도 있었습니다. 다 읽고 나면 서로 어느 쪽이 더 재미있었는지 우기며 다투기도 했습니다.

먼저 읽겠다고 실랑이가 붙으면 결국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하는 게 흔한 해결책이었습니다. 진 쪽은 옆에서 표지 그림만 흘끔거리며 자기 차례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표지 뒷장에는 학용품이나 문구 브랜드 광고가 큼지막하게 실려 있었습니다. 만화만큼이나 그 광고 페이지를 유심히 들여다보던 아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이렇게 만화를 봤다

지금처럼 웹툰을 스마트폰으로 넘겨보는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만화는 매달 한 번, 정해진 날짜에 서점이나 문방구에 들어오는 물건이었습니다.

다 읽은 책은 만화방에 되팔거나 친구와 맞바꿔 보는 게 자연스러운 순환이었습니다. 지금의 중고 거래와 비슷하면서도, 그때는 그저 다음 이야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나름의 방법이었습니다.

지금 세대에게는 ‘만화방’이라는 공간 자체가 낯설지도 모릅니다. 좁은 골목 안 계단을 몇 개 내려가면 나오는, 벽면 가득 만화책이 꽂힌 서가와 나무 의자 몇 개뿐인 작은 공간이었습니다. 요금은 책을 읽는 시간이 아니라 빌리는 권수로 매겨졌고, 다 읽을 때까지 그 자리에서 죽치고 앉아 있는 손님도 흔했습니다.

육영재단이라는 이름도 그 시절 아이들에게는 낯설지 않았습니다. 어린이날 행사나 교육 관련 소식에 자주 등장하던 이름이라, 보물섬 역시 뭔가 공인된 잡지라는 인상을 자연스럽게 얻었습니다.

다락방 속 한 장면

서점 유리문에 붙은 “이번 달 보물섬 입고” 종이를 발견하면, 책가방도 제대로 내려놓지 못한 채 그대로 뛰어가던 걸음이 떠오른다. 두 손으로 받쳐 든 두툼한 책 한 권, 그 무게가 유독 뿌듯하게 느껴지던 하굣길이었다.

보물섬이 남긴 것

창간부터 폐간까지 14년, 보물섬은 아기공룡 둘리와 달려라 하니를 키워낸 지면이자, 만화를 향한 어른들의 시선을 조금씩 바꿔놓은 잡지였습니다.

지금은 서점 진열대에서 이 잡지를 만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 서점 앞을 서성이던 걸음과 만화방 서가에서 나눠 읽던 오후는 여전히 또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둘리는 여전히 애니메이션 재방송과 캐릭터 상품으로 낯이 익고, 하니 역시 마라토너로 다시 회자되곤 합니다. 두 캐릭터가 태어난 지면이 보물섬이었다는 사실은, 정작 그때 만화방을 드나들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종종 잊혀 있습니다.

낡은 잡지 한 권을 어딘가에서 다시 마주친다면, 표지만 보고도 서점 앞을 서성이던 풍경이 먼저 떠오를 사람이 여전히 많을 겁니다. 두툼한 책 한 권을 두 손으로 받쳐 들던 그 감각까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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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업데이트: 2026-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