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밤거리, 극장 간판 앞으로 은빛 스포츠카가 빛의 궤적을 남기며 지나가는 레트로 잉크 일러스트

백 투 더 퓨처, 2년 늦게 도착한 1987년 여름 극장가의 기억

1987년 7월, 무더위가 한풀 꺾이지 않은 저녁 극장가. 매표소 창 앞으로 줄이 늘어서 있고, 간판에는 낯선 표기 하나가 걸려 있었습니다. ‘빽 투 더 퓨쳐’. 은색 자동차 한 대가 시간을 가르며 날아가는 그림 아래, 사람들은 표를 사려고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1985년 7월에 개봉해 그해 최고 흥행작 자리에 오른 영화였습니다. 로버트 저메키스가 감독을 맡고 마이클 J. … 더 읽기

사람 가면을 벗기자 드러난 도마뱀 외계인의 얼굴, 붉은 하늘 아래 떠 있는 거대한 외계 우주선들 — 1980년대 로맨스 잡지풍 유화 일러스트

브이(V), 도마뱀 외계인이 그 시절 담벼락에 남긴 V 사인

골목 담벼락에 스프레이로 삐뚤빼뚤 그린 알파벳 한 글자가 자꾸 눈에 밟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학교 담장에도, 공사장 가림막에도 커다란 V자가 하나둘 번져나갔습니다. 그 글자의 출처는 미국 NBC가 1983년 5월 내보낸 SF 미니시리즈 브이(V)였습니다. 거대한 모선 50척이 지구 곳곳에 나타나 첨단 기술을 나눠주겠다며 접근했지만, 정체는 인간을 식량으로 노리는 파충류 외계인이었습니다. 외계인이 처음 지구에 나타난 순간 세계 주요 … 더 읽기

비 내리는 창가에 놓인 그랜드 피아노와 작은 스탠드 조명, 보라빛과 와인빛 네온 불빛이 번지는 1980년대 시티팝 스타일 일러스트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 왜 그토록 오래 사랑받았을까

1978년 어느 밤, 무대 위에 아이보리색 그랜드 피아노 한 대가 놓였습니다. 하늘색 물방울무늬 원피스를 입은 스물세 살 여학생이 건반 앞에 앉았고, 자작곡 한 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제2회 MBC 대학가요제, 명지대 경영학과에 다니던 심수봉이었습니다. 그날 무대에서는 상을 받지 못했지만, 이듬해 그 노래 ‘그때 그 사람’은 1979년 가요계를 통째로 휩쓴 최고의 히트곡이 됩니다. 지금도 라디오나 노래방에서 이 … 더 읽기

어두운 오락실에서 조이스틱과 동전을 쥔 손, 줄지어 선 게임기 화면과 뒤에서 지켜보는 아이들의 실루엣 -- 1990년대 셀 애니메이션 스타일 일러스트

스트리트파이터2, 오락실 한 층을 통째로 삼킨 그 시절 대전격투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아이들이 계단을 뛰어 내려갑니다. 목적지는 학교 앞 오락실, 그중에서도 항상 두세 명이 겹겹이 둘러서 있는 기계 한 대. 화면 속에서는 도복을 입은 남자와 파란 옷을 입은 남자가 주먹을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캡콤이 1991년 아케이드로 내놓은 이 대전격투 게임은, 이듬해 한국 오락실 문턱을 넘으며 순식간에 화면을 바꿔놓았습니다. 주먹 하나로 오락실 지형을 바꾼 게임 … 더 읽기

흙먼지 날리는 운동장에서 국민학교 아이들이 한 줄로 늘어서 밧줄을 온몸으로 당기는 줄다리기 경기 장면, 뒤로 만국기와 관중들 — 1980년대 가을 운동회 실사 스타일

국민학교 운동회 줄다리기, 그 팽팽했던 몇 초는 왜 그리 길었을까

양쪽에서 팽팽하게 당겨진 밧줄 한가운데, 빨간 리본이 파르르 떨렸습니다. 발뒤꿈치를 흙 속에 박고 상체를 뒤로 젖힌 아이들 뒤로, 반 전체가 한 줄로 늘어서서 “영차, 영차”를 외쳤습니다. 리본이 어느 한쪽 선을 넘어가는 그 몇 초 사이에, 오전 내내 쌓인 반의 자존심이 걸려 있었습니다. 줄다리기는 국민학교 가을 운동회마다 반 대항으로 치러지던 종목이었습니다. 두 줄을 하나로 이어 잡고, … 더 읽기

보름달이 뜬 밤, 담장에 기대 세워진 자전거와 다락방 창문의 따뜻한 불빛이 있는 골목 풍경 일러스트

이티는 왜 개봉하기도 전에 온 국민이 다 아는 영화가 됐을까

1984년 초여름, 극장 매표소 앞으로 아이 손을 꼭 붙든 부모들이 줄지어 서 있던 풍경이 있었습니다. 표를 사려는 줄 치고는 유난히 아이들 목소리가 컸습니다. 매표구 창 너머로 어른들이 몇 번이고 인원수를 다시 세는 동안, 아이들은 벌써 포스터 앞에 붙어 손가락으로 그 못생긴 얼굴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걸린 영화는 쭈글쭈글한 외계 생명체가 지구 소년과 친구가 되는 … 더 읽기

두 팔을 교차해 팔찌로 빛줄기를 막아내는 여성의 모습, 허리에는 빛나는 황금 올가미 — 1970년대 로맨스 잡지풍 유화 일러스트

원더우먼은 왜 그 시절 여자아이들의 첫 영웅이 됐을까

골목 놀이터 한가운데서 한 아이가 두 팔을 X자로 교차시키고 제자리에서 빙그르르 돕니다. 몇 바퀴를 돌고 나면 표정부터 달라져야 했습니다. 원더우먼이 되는 순간이었으니까요. 원제 Wonder Woman은 1975년 11월 미국 ABC에서 파일럿으로 첫 방송됐고, 국내에는 1977년 무렵 동양방송(TBC)을 통해 소개됐습니다. 만화 속 캐릭터가 안방으로 들어오기까지 원더우먼은 텔레비전에서 처음 태어난 캐릭터가 아니었습니다. 1941년 미국 DC코믹스 만화로 먼저 등장해, … 더 읽기

네온 조명 무대 위에서 반짝이는 시퀸 재킷을 입고 접부채를 든 채 뒷모습으로 서 있는 트로트 가수 실루엣, 청록빛 무대 커튼과 금빛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1980년대 콘서트 일러스트

나훈아 vs 남진, 그 시절 라이벌 무대는 정말 뜨거웠을까

완행열차가 서던 작은 간이역, 스피커에서 노래 한 소절이 흘러나오면 플랫폼에 서 있던 사람들이 잠깐 걸음을 멈추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고향역 – 코스모스 피어 있는 정든 고향역.” 그 한 소절이면 충분했습니다. 보따리를 든 손도, 뛰어가던 발걸음도 잠시 그 노래에 붙들렸습니다. 나훈아는 1966년 오아시스레코드를 통해 가요계에 이름을 올렸고, 1972년 발표한 ‘고향역’으로 무명 가수라는 꼬리표를 완전히 떼어냈습니다. 이후 58년 … 더 읽기

서점 진열창 앞에서 두툼한 만화잡지 더미를 바라보는 소년의 뒷모습, 노을빛 골목 풍경 — 1980~90년대 셀 애니메이션 스타일 일러스트

보물섬, 둘리와 하니를 키운 만화잡지는 왜 사라졌을까

학교 앞 서점 유리문에 “이번 달 보물섬 들어왔습니다”라는 종이 한 장이 붙으면, 하굣길은 다들 약속이나 한 듯 그 서점으로 먼저 향했습니다. 육영재단이 1982년 10월 창간한 이 만화 전문 월간지는 매달 500쪽이 넘는 두툼한 분량으로 아이들 손에 들려 있었고, 1996년 9월 예고 없이 폐간될 때까지 14년 가까이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만화만으로 채운, 그때는 파격이었던 잡지 원래 … 더 읽기

흙먼지 운동장에서 장대에 매달린 박이 터지며 색종이가 쏟아지는 순간, 평상복을 입은 아이들이 콩주머니를 던지고 있는 모습, 배경에 만국기와 학교 건물 — 1970~80년대 국민학교 가을 운동회 실사 스타일

박 터뜨리기, 그 안의 색종이가 혼분식을 외치던 사연

운동장 한가운데 세운 장대 끝에, 한지를 발라 만든 커다란 박 두 개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습니다. 청군과 백군으로 나뉜 아이들이 그 아래 흩어진 콩주머니를 하나둘 주워 듭니다. 신호탄이 울리자마자 수십 개의 콩주머니가 동시에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몇 번의 빗맞음 끝에, 마침내 한쪽 박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박 터뜨리기는 대나무 소쿠리에 종이를 발라 박 모양으로 만든 다음 장대 …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