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절곤을 휘두르는 무술가의 뒷모습 실루엣, 어두운 밤거리를 배경으로 한 레트로 잉크화

정무문, 이소룡을 떠나보내고 일주일 만에 마주한 그 영화

1973년 7월 말, 서울 시내 극장 앞으로 유난히 긴 줄이 늘어섰습니다. 사람들 손에는 신문이 하나씩 들려 있었고, 표를 사려는 이들은 서로 밀치며 매표구 쪽으로 몸을 기울였습니다. 그 신문 한켠에는 며칠 전 홍콩에서 한 배우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실려 있었습니다. 정무문(精武門)은 1972년 3월 홍콩에서 먼저 개봉한 골든하베스트 제작 영화로, 이소룡의 두 번째 주연작입니다. 세경흥업이 수입해 … 더 읽기

노을 지는 거리를 가로지르는 여자의 역동적인 모습, 한손을 귀 가까이에 대고 귀에서는 희미한 빛이 감돈다 — 1970년대 로맨스 잡지 표지풍 유화 일러스트

소머즈, 오른쪽 귀 하나로 세상 모든 소리를 듣던 여자

친구가 몰래 속삭이는 말을 옆반 아이가 알아듣기라도 하면 누군가 이렇게 외쳤습니다. “야, 너 소머즈냐?” 1976년 MBC 전파를 타고 처음 방영된 이 드라마 한 편이, 청각 예민한 사람을 가리키는 별명 하나를 이렇게 오래도록 남겼습니다. 6백만불의 사나이에서 갈라져 나온 이야기 원제 The Bionic Woman은 미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되던 6백만불의 사나이의 스핀오프로 새로 만들어진 드라마입니다. 주인공 제이미 소머스는 원래 … 더 읽기

화려한 조명이 가득한 디스코 무대 위에서 디스코볼을 배경으로 빙글빙글 돌며 춤추는 여자 가수의 실루엣, 앞에서 손을 들고 환호하는 관객들의 실루엣 — 1980년대 네온 디스코 무대 일러스트

나미, 빙글빙글 리듬 하나로 가요계를 흔든 1984년

라디오에서 경쾌한 전주가 흘러나오면 누구랄 것도 없이 저절로 어깨가 들썩였습니다. 1984년, 나미가 새로 부른 ‘빙글빙글’은 그해 가요톱10 무대를 통째로 흔들어놓았고, 오랫동안 무명에 가까웠던 이 가수를 순식간에 스타의 자리로 끌어올렸습니다. 이태리 밴드에서 시작된 무명 시절 나미는 1979년 ‘프랑코 로마노 & 나미’라는 이태리 밴드의 리드싱어로 국내 무대에 처음 이름을 알렸습니다. ‘나미와 머슴아들’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했지만, 당장 큰 반향을 … 더 읽기

오락실 기계에 앉아 테트리스 블록이 떨어지는 화면을 보고 있는 소년,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아이들과 네온 조명이 가득한 오락실 내부 — 1980~90년대 셀 애니메이션 스타일 일러스트

테트리스, 소련에서 태어나 오락실을 점령한 네 칸 블록

쉬는 시간마다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빰빰빰 빰빰빰빰” 하고 흥얼거리던 멜로디가 있습니다. 특별히 게임을 좋아하지 않던 아이들조차 그 곡조만큼은 따라 부를 줄 알았습니다. 네모난 블록 몇 개가 화면 아래로 떨어지는 것뿐인 이 게임은, 알고 보면 소련에서 태어나 세계를 한 바퀴 돌아 우리 손에 들어온 물건이었습니다. 소련에서 태어난 게임, 개발자는 돈을 못 받았다 테트리스는 1984년, 소련의 프로그래머 … 더 읽기

먼지 날리는 운동장에서 청색 또는 백색 색천을 머리에 두른 아이들이 바톤을 주고받으며 달리는 계주 장면, 주변에서 응원하는 관중들 — 1980년대 국민학교 가을 운동회 실사 스타일

청백계주, 운동회의 승패를 갈랐던 마지막 함성

운동장 확성기에서 “다음은 마지막 종목, 청백계주가 있겠습니다”라는 안내가 나오면 응원석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라졌습니다. 그때까지 흩어져 있던 아이들도 트랙 가까이 몰려들었고, 바통 하나에 그날 운동회 전체의 승패가 걸려 있었습니다. 선생님들도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트랙 쪽을 바라봤습니다. 바통 하나에 걸린 오전 내내의 점수 운동회 오전 동안 아이들은 달리기, 공굴리기, 박 터뜨리기 같은 여러 종목에서 조금씩 점수를 … 더 읽기

야간 거리에서 비틀거리는 자세로 높은 발차기를 날리는 무술가의 역동적인 모습, 세피아톤 먹선화 일러스트

취권, 국도극장 한 곳에서 6개월을 채운 성룡의 코믹 액션

서울 국도극장 매표소 앞으로 아침부터 줄이 끊이지 않던 때가 있었습니다. 스크린 하나뿐인 단관 극장이었는데도, 1979년 9월 개봉한 취권은 그 극장에서만 무려 6개월을 채우며 90만 명 가까운 관객을 끌어모았습니다. 매표소 앞 긴 줄, 암표까지 등장한 풍경 개봉 초반부터 국도극장 앞은 이른 아침부터 표를 구하려는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줄을 서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마저도 금세 매진되는 날이 … 더 읽기

해질녘 골목길을 달리는 남자의 옆모습, 한쪽 눈에서 붉은빛이 감돌고 잔상이 남는 슬로우모션 장면 — 1970년대 로맨스 잡지 표지풍 유화 일러스트

6백만불의 사나이, 그 슬로우모션 효과음을 따라 하다 다치던 아이들

골목 옥상 난간 앞에서 한 아이가 자세를 잡습니다. 입으로는 “뚜뚜뚜뚜뚜뚜” 소리를 내며, 도약 자세로 몇 초를 버티다 뛰어내립니다. 6백만불의 사나이가 동양방송(TBC) 전파를 타던 그 시절, 골목마다 이런 장면이 드물지 않았습니다. 공사장 크레인을 맨손으로 들던 장면 이 드라마에서 가장 자주 반복된 장면 중 하나는 무거운 물체를 맨손으로 들어 올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자동차, 바위, 심지어 작은 건설 장비까지 … 더 읽기

네온 무대 조명 아래 마이크를 잡고 선 남자 가수의 실루엣, 뒤로 밴드의 기타와 드럼 연주자, 앞에서 손을 뻗은 관객들 실루엣이 보이는 1980년대 콘서트 일러스트

조용필, 금지곡 시절을 딛고 돌아온 창밖의 여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기타 전주 몇 소절만 들어도, 다음에 이어질 목소리가 누구인지 짐작이 갔던 시절이 있습니다. 1980년, 조용필은 대마초 파동으로 묶여 있던 활동 금지에서 풀려나 ‘창밖의 여자’로 돌아왔고, 그해 가요계를 통째로 흔들어놓았습니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방송에 나올 수 없던 가수였습니다. 그 짧은 공백과 뒤이은 폭발적인 복귀 사이의 낙차가, 지금 돌이켜봐도 유독 극적입니다. 무명 밴드 … 더 읽기

저녁 무렵 뒷골목을 질주하는 검은 밴과 폭발 화염, 임시 작업장에서 무기를 만드는 특공대원들의 실루엣 — 1980년대 유화풍 일러스트

A특공대, 고철 몇 개로 탱크를 만들어내던 월요일 밤

월요일 밤 열 시, 검은색과 회색이 섞인 밴 한 대가 폭발음과 함께 화면을 가로지릅니다. 총알이 빗발치듯 사방으로 날아다니는데도 이상하게 아무도 다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그 묘한 긴장감에, 온 가족이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았습니다. 제목은 A특공대. 원제 The A-Team은 미국 NBC에서 1983년부터 방영된 액션 드라마로, 국내에는 KBS 2TV를 통해 1987년 1월 26일부터 1988년 … 더 읽기

만화방 서가 사이 방석 위에 앉아 만화책을 읽는 소년의 뒷모습, 주변에 쌓인 만화책 더미 — 1980년대 셀 애니메이션 스타일 일러스트

고우영 삼국지, 만화방에서 만난 가장 파격적인 영웅들

만화방 구석 자리, 너덜너덜해진 신문 스크랩 뭉치 같은 만화책 한 권을 펼쳐 든 순간 웃음이 터졌습니다. 근엄해야 할 관우가 능청스러운 농담을 던지고, 조조는 얄미울 만큼 노회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림체부터가 근엄한 위인전 삽화와는 완전히 딴판이었습니다. 교과서에서 배운 삼국지와는 완전히 다른 얼굴이었습니다. 제목은 고우영 삼국지. 만화가 고우영이 일간스포츠 신문에 1978년부터 1980년까지 연재한 작품으로, 신문 판매 부수를 …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