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 라디오 앞에서 녹음 버튼을 누르던 순간 기다린 노래들

라디오 앞에 앉아 카세트 녹음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려둔 채, 디제이 목소리가 끝나기만 기다리던 저녁이 있었습니다. 앞소리가 끝나고 전주가 막 시작되는 순간에 맞춰 버튼을 눌러야 했고, 조금만 늦어도 첫 소절이 잘려 나갔습니다.

그렇게 기다리던 노래 가운데 자주 이름이 오르던 그룹이 아바였습니다. 스웨덴 출신 4인조로 1972년에 결성됐고, 1974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우승을 발판으로 전 세계 차트에 올랐습니다. 이름은 네 멤버 이름의 첫 글자를 하나씩 따서 만들었습니다.

브라이턴 무대에서 시작된 이야기

1974년 4월 6일, 영국 브라이턴의 돔 공연장에서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가 열렸습니다. 스웨덴 대표로 나선 아바는 ‘워털루’를 불렀고, 그해 대회의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워털루는 영국을 포함한 여러 유럽 나라에서 1위에 올랐다고 전해집니다.

그전 해에는 ‘링 링’으로 스웨덴 예선에 도전했다가 3위에 그쳐 유로비전 무대에 서지 못했습니다. 한 번 놓친 무대를 이듬해 우승으로 되갚은 셈이라, 이 이야기는 지금도 아바의 출발점으로 자주 꼽힙니다.

ABBA – Waterloo (1974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첫 무대)

이후 1975년에는 ‘맘마미아’와 ‘SOS’가, 1976년에는 ‘페르난도’와 ‘댄싱 퀸’이 차례로 나왔습니다. ‘맘마미아’는 영국에서 1위에 올랐고, ‘댄싱 퀸’은 아바의 곡 가운데 미국 차트 1위에 오른 유일한 곡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스웨덴 가수의 노래가 영어권 차트를 이렇게 휩쓴다는 건 그때까지 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카세트 앞에서 기다리던 목소리

한국에 아바가 어떤 경로로 들어왔는지 하나하나 확인해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70년대 팝송이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과 AFKN, 그리고 복제 음반인 빽판을 타고 퍼져나갔다는 흐름은 여러 기록이 전합니다. 아바의 노래도 그 물결 안에 있었을 거라고 짐작할 뿐입니다.

밤늦은 라디오에서 아는 노래가 흘러나오면 이불 속에서 볼륨을 줄이던 기억을 가진 분이 많을 겁니다. 카세트에는 녹음하다 중간에 디제이 목소리가 섞여 들어간 곡이 꼭 한두 개씩 있었습니다.

그 테이프를 친구에게 빌려주면 다음 주에는 또 다른 친구의 손을 거쳐 돌아왔습니다. 케이스 안쪽에는 볼펜으로 눌러쓴 곡 제목이 적혀 있었고, 빌려 간 사람이 덧붙인 글씨가 한 줄 늘어나 있기도 했습니다.

레코드 가게 앞을 지나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유리문 안쪽 진열대에는 재킷이 빛바랜 판들이 세로로 꽂혀 있었고, 가게 안에서는 늘 누군가의 신청곡이 작게 흘러나왔습니다.

정식 음반이 귀하던 때라 팝송을 가까이 두려면 방법이 여러 갈래였습니다. 라디오를 녹음하거나, 빽판을 찾거나, 친구의 테이프를 복사하는 식이었고, 아바 음반이 정확히 어떤 판으로 돌았는지까지는 낱낱이 확인되지 않습니다. 확실한 건 그 노래들을 기다리던 마음이 비슷했다는 점입니다.

턴테이블에 바늘을 올리기 직전, 판 위에서 먼지가 뽀얗게 일던 장면도 같은 풍경에 속합니다. 지직거리는 잡음 사이로 첫 박자가 들어오면 방 안 공기가 한 번에 달라졌습니다.

신청곡 엽서를 써서 우체통에 넣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곡 제목과 아티스트 이름을 또박또박 적고, 사연 몇 줄을 덧붙이고, 방송에 읽히기만 기다렸습니다. 며칠 뒤 라디오에서 이름이 불리면 온 가족이 방 안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영어 제목을 적는 데도 은근히 신경이 쓰였습니다. 철자가 틀리지 않았나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았고, ‘Mamma Mia’처럼 m이 두 번 겹치는 이름은 특히 헷갈렸습니다.

영어를 몰라도 따라 부르던 후렴

주간경향에 실린 한 회고 글에는, 70~80년대에 아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중학교에서 알파벳을 막 배울 무렵 아바를 만났고, 쉬운 단어가 많아서 따라 부르다 보니 영어 실력도 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한 사람의 기억이지만, 같은 경험을 한 분이 적지 않을 겁니다.

‘맘마미아’나 ‘SOS’ 같은 곡은 제목부터 짧고 입에 붙었습니다. 문장 전체를 알아듣지 못해도 후렴만 외우면 노래방이 없던 시절에도 친구들 앞에서 한 곡 부를 수 있었습니다.

교과서 속 영어와 달리 노래 속 영어는 이상하게 오래 남았습니다. 시험이 끝나면 잊히는 단어와 달리, 멜로디에 얹힌 단어는 나이가 들어도 입에서 먼저 나왔습니다.

아바의 곡에서는 두 여성 보컬이 겹치는 화음이 특히 귀에 남았습니다. 한 사람이 부르는 것 같다가도 후렴에서 목소리가 갈라지며 두텁게 쌓이는 느낌이, 라디오의 작은 스피커로 들어도 선명했습니다.

그 시절 라디오는 지금처럼 음질이 좋지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이런 소리만큼은 또렷하게 기억에 남았습니다. 잡음이 있어도 화음의 윤곽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소풍 버스 안에서, 방 한구석에서

소풍날 아침에 버스가 출발하면 누군가 카세트를 꺼내 들었습니다. 앞자리에서 시작된 노래가 뒷자리까지 번지고, 어느새 차 안 전체가 같은 후렴을 흥얼거리는 일이 흔했습니다. 한 곡이 끝나면 다음 곡을 두고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혼자 있는 방에서는 쓰임이 달랐습니다. ‘I Have a Dream’처럼 조용히 시작하는 곡은 어린이 합창이 들어가 잔잔하게 마무리되는 편이라, 시험을 앞둔 밤에도 부담 없이 틀어둘 수 있었습니다. 앞서 소개한 회고 글의 필자도 이 곡을 가장 좋아했다고 적었습니다.

‘페르난도’처럼 서정적인 곡이 나올 때면 테이프의 되감기 버튼이 바빠졌습니다. 마음에 든 부분만 몇 번이고 다시 들었고, 그러다 테이프가 늘어져 소리가 느려지기도 했습니다.

디스코텍과 학교 축제 사이에서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은 디스코가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때였고, ‘댄싱 퀸’은 그 분위기를 대표하는 곡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피아노가 반짝이는 소리로 시작해 후렴에서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구성은, 춤을 추지 않는 사람의 어깨까지 들썩이게 만들었습니다.

디스코텍이 아니더라도 아바를 만날 자리는 많았습니다. 학교 축제 무대 뒤에서 카세트를 틀어 놓고 율동을 맞추던 반이 한두 팀은 있었고, 동네 레코드 가게 앞 스피커에서도 한 번쯤 흘러나왔습니다. 그게 아바라는 이름인 줄 모르고 지나친 사람도 많았을 겁니다.

반짝이는 구슬 모양 조명 아래에서 사람들이 한 줄로 서서 같은 동작을 맞추던 풍경은, 그 시절 디스코를 다룬 영상에서 지금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화면 속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환했던 이유를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아바의 곡은 그런 자리에서 빠지지 않는 선곡이었습니다. 춤을 못 추는 사람도 박자만큼은 맞출 수 있을 만큼 리듬이 분명했습니다.

ABBA – Dancing Queen (공식 뮤직비디오)

여기서 한 가지 눈여겨볼 점이 있습니다. 아바의 곡은 밝고 경쾌하게 들리지만, 멜로디의 기본 정서는 의외로 쓸쓸한 쪽에 가까웠습니다. 흥겹게 따라 부르다가도 후렴 뒤에 문득 목이 메는 느낌이 드는 건 그 때문이라고들 합니다.

가사의 내용은 몰라도 정서는 먼저 전해졌고, 그래서 이 곡들은 파티에서도 이별 뒤의 혼자 있는 방에서도 어울렸습니다.

활동이 멈춘 뒤에도 이어진 노래

아바는 1980년대 초에 공식 활동을 멈췄습니다. 하지만 노래가 멈춘 건 아니어서, 모음 앨범과 방송, 이후의 영화와 뮤지컬을 통해 계속 새로운 청취자를 만났습니다. 라디오 DJ가 오래된 팝송 특집을 꾸릴 때면 어김없이 한두 곡은 아바였습니다.

이 무렵부터는 테이프 대신 CD로, 다시 휴대전화 속 재생목록으로 노래의 그릇이 바뀌었습니다. 같은 노래를 듣는 도구가 이렇게 여러 번 바뀐 사람들에게, 카세트 데크의 찰칵하는 소리는 어딘가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다시 돌아온 노래들

2008년에는 아바의 노래로 만든 영화 ‘맘마미아!’가 국내 극장에 걸렸습니다. 국내 흥행은 450만 명 안팎으로 전해지는데, 뮤지컬 영화로는 이례적인 숫자였습니다.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러 가는 관객도 많았다고 합니다.

뮤지컬 ‘맘마미아’는 그보다 앞서 2004년 1월 한국 무대에 처음 올라왔고, 중장년 관객이 극장에 발걸음을 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젊은 세대에게는 처음 듣는 노래였지만, 부모 세대에게는 어디선가 들어본 멜로디였습니다.

ABBA – Mamma Mia (공식 뮤직비디오)

2021년 11월 5일에는 아바가 신작 앨범 ‘보야지’를 냈습니다. 1981년의 앨범 이후 40년 만에 나온 새 음반이었습니다. 이어 2022년 5월 27일부터 런던에서는 ‘아바 보야지’라는 공연이 열렸습니다.

이 공연의 무대 위에는 1979년 무렵의 모습을 본떠 만든 디지털 분신이 서고, 곁에서 열 명으로 이뤄진 실제 연주팀이 반주를 맡습니다. 옛 노래의 목소리는 그대로인데 무대의 형식만 바뀌었다는 점에서, 이 그룹의 노래가 얼마나 오래 이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다락방 속 한 장면

카세트 데크의 빨간 불이 켜지고, 스피커에서 전주가 흘러나온다. 숨을 멈춘 채 버튼을 누르던 손끝이 아직도 기억 어딘가에 남아 있다. 테이프가 천천히 돌아가는 소리 위로 낯선 언어의 후렴이 겹치던 저녁이었다.

아바가 남긴 것

유로비전 무대에서 출발한 노래들이 라디오 전파를 타고 카세트 테이프에 담겨 한국의 방 안까지 들어왔습니다. 가사를 다 몰라도 따라 불렀고, 그 덕에 영어 단어 몇 개쯤은 아직도 입에 붙어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영화와 뮤지컬로 다시 불려 나오고, 신작 앨범과 가상 공연으로 이어졌지만, 처음 그 노래를 만난 곳이 어디였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겁니다. 누군가에게는 라디오였고, 누군가에게는 친구에게 빌린 테이프였습니다.

지금도 오래된 카세트 하나가 서랍에서 나오면, 라벨에 적힌 삐뚤빼뚤한 글씨부터 눈에 들어옵니다. 재생해 볼 기기가 없어 그대로 다시 넣어두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래도 곡 제목 몇 줄만으로 노래는 머릿속에서 먼저 흘러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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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업데이트: 2026-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