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시계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면, 저 혼자서 문을 열고 달려오는 검은 자동차. 그 장면 하나로 온 동네 남자아이들의 손목이 분주해졌습니다. 시계도 아닌 걸 손목에 차고 다니며 입을 갖다 대고 “키트, 이리 와”를 속삭이던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제목은 전격 Z작전. 원제는 나이트 라이더(Knight Rider)로, 미국 NBC에서 1982년 9월부터 1986년 4월까지 4개 시즌 90회에 걸쳐 방영된 드라마였습니다. 국내에는 KBS 2TV를 통해 1985년부터 1987년까지 소개됐고, 처음엔 월요일 밤 10시에 편성됐다가 1987년 2월부터는 일요일 저녁 6시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총상 입은 형사, 새 얼굴로 돌아오다
주인공 마이클 나이트는 원래 마이클 아서 롱이라는 이름의 경찰 형사였습니다. 임무 중 얼굴에 큰 총상을 입고 목숨이 위태로웠던 그를, 거대 재단을 이끄는 노신사 데번 마일스가 구해냅니다. 성형수술로 완전히 다른 얼굴과 새 이름을 얻은 그는, 이후 정의를 위해 은밀히 움직이는 조직의 요원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매회 새로운 사건에 휘말리는 구성이었지만, 아이들이 정말 좋아했던 건 사건의 전개보다 마이클과 파트너가 만들어내는 티키타카였습니다. 위기 앞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마이클의 태도, 그리고 그런 그를 잔소리하듯 다그치는 파트너의 존재가 매회 빠지지 않는 재미였습니다.
과거의 얼굴도, 과거의 이름도 버려야 했던 인물이 새로운 정의의 편에 선다는 설정은, 단순한 액션물치고는 제법 무거운 뒷이야기를 깔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그런 배경을 깊이 따지지 않았지만, 마이클이 가끔 던지는 씁쓸한 농담 한마디에서 뭔가 다른 사연이 있다는 건 어렴풋이 느꼈습니다.
KBS2 전격 Z작전, 국내 방영 당시 화면
말하는 자동차, 키트
그 파트너는 사람이 아니라 자동차였습니다. 이름은 키트(K.I.T.T.). 1982년형 검은색 폰티악 파이어버드 트랜스암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이 차는, 인공지능을 탑재해 사람처럼 대화하고 스스로 운전할 줄 알았습니다. 총알도 뚫지 못하는 튼튼한 차체에, 위기 상황에서는 순간적으로 도약해 장애물을 뛰어넘는 터보부스트 기능까지 갖추고 있었습니다.
차가 사람처럼 말을 한다는 설정 자체가 그때까지 본 적 없는 상상이었습니다. 주인을 걱정하고 가끔은 핀잔을 주기도 하는 키트의 말투는, 자동차라기보다 차라리 까칠한 집사에 가까웠습니다. 마이클이 무모하게 행동하려 할 때마다 키트가 나지막이 말리는 장면은, 액션 못지않게 아이들 사이에서 흉내 내던 대사였습니다.
전면 그릴에 박힌 빨간색 스캐너 불빛이 좌우로 오가는 모습도 키트를 상징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어두운 밤길, 그 붉은 불빛이 좌우로 흔들리며 도로 저편에서 다가오면 마이클의 위기는 곧 끝난다는 신호였습니다. 매회 위기의 순간, 굉음을 내며 등장해 마이클을 구해내는 장면은 방영 내내 빠지지 않는 클라이맥스였습니다.
텅 빈 도로 저편에서 헤드라이트 두 개와 붉은 스캐너 불빛이 함께 번쩍이며 달려오는 그 모습을, 아이들은 브라운관 앞에 바짝 붙어 지켜봤습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검은색 장난감 자동차 중에서도 유독 앞유리 쪽에 빨간 줄이 그어진 모델이 인기였던 것도 이런 이유였습니다.
키트에게 숨겨진 재주들
총알과 폭발물을 튕겨내는 방탄 차체 말고도, 키트는 여러 숨은 기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운전자 없이도 스스로 도로를 달리는 자동주행 모드, 다친 사람을 살펴보는 의료 스캐너, 거짓말을 가려내는 음성 분석 장치까지. 지금 기준으로 봐도 낯설지 않은 기능들이 1980년대 브라운관 속에서 이미 등장하고 있었습니다.
회마다 새로운 기능이 하나씩 튀어나올 때면 아이들은 “저런 차가 진짜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자연스럽게 품었습니다. 어른들에게는 그저 흥미로운 특수효과였겠지만, 아이들에게는 미래의 자동차가 저런 모습일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심어준 장면들이었습니다.
내부 컴퓨터가 스스로 고장을 진단하고 예비 부품으로 자가 수리에 나서는 장면까지 나오면, 교실에서는 “저건 사람보다 똑똑한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오가기도 했습니다. 위기의 순간마다 새로운 재주를 하나씩 꺼내드는 키트의 모습은, 매회 다른 방식으로 아이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손목시계에 대고 “키트”를 부르던 아이들
마이클이 키트를 부를 때 쓰던 도구는 다름 아닌 손목시계였습니다. 손목에 찬 시계를 입 가까이 들어 올려 낮은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면, 저 멀리 있던 키트가 응답하며 달려오는 장면이 매회 등장했습니다.
이 장면을 본 아이들이 가만있을 리 없었습니다. 문방구에서 파는 싸구려 전자시계를 손목에 차고 다니며, 친구들 앞에서 괜히 시계에 대고 “키트, 응답하라”를 속삭이는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생겨났습니다. 실제로 응답이 올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흉내를 내는 순간만큼은 스스로가 마이클 나이트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운동장 구석이나 교실 뒤편에서 손목을 들어 올리며 소곤거리던 아이들의 모습은, 그 시절 방영작들이 남긴 흔한 풍경 중 하나였습니다. 터미네이터의 “아윌비백”이나 로보캅의 “왓츠 유어 네임”처럼, 화면 밖으로 튀어나와 아이들 입에 붙어버린 대사와 몸짓이 전격 Z작전에도 있었습니다.
정작 손목시계 하나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학교 앞 문구점 진열대에 그런 시계가 놓이기만 하면 금세 팔려나갔고, 시계 바늘이 제대로 안 맞아도 상관하는 아이는 없었습니다.
다락방 속 한 장면
친구가 손목시계를 사 왔다며 자랑하던 날이 떠오른다. 시계 바늘도 제대로 안 맞았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그 애가 손목을 입가에 대고 “키트, 나와라” 하던 모습에 다들 배꼽을 잡고 웃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얀 헤머가 아니라, 스튜 필립스의 테마곡
도입부에 흐르던 웅장한 신시사이저 테마곡도 이 드라마를 떠올릴 때 함께 따라오는 기억입니다. 이 곡은 스튜 필립스와 제작자 글렌 A. 라슨이 함께 작곡했는데, 라슨은 프랑스 작곡가 레오 들리브의 발레곡 ‘실비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제목도 모른 채 그저 “그 자동차 나오는 드라마 음악”으로만 기억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몇 소절만 들어도 누구나 키트와 마이클이 도로를 질주하는 장면을 떠올릴 만큼 강렬한 곡이었습니다. 방영이 끝난 지 한참 지나서도 라디오나 오락실 게임기 배경음악에서 비슷한 멜로디가 흘러나오면 다들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Knight Rider(1982) 원작 오프닝 테마
일요일 저녁, 온 가족이 모이던 시간
1987년 2월 이후 이 드라마가 자리 잡은 시간대는 일요일 저녁 6시였습니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던 시간과 겹치면서, 부엌에서 들려오는 도마 소리와 거실 TV 소리가 뒤섞이던 집이 많았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퇴근한 일요일이면 온 가족이 나란히 앉아 함께 보는 몇 안 되는 프로그램이기도 했습니다.
액션물이라 아버지들도 크게 거부감이 없었고, 아이들 눈높이에는 신기한 자동차 이야기라 남녀노소 함께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외화 시리즈였습니다. 방영 시간이 다가오면 채널을 미리 맞춰놓고 광고가 끝나기를 기다리던 것도 흔한 풍경이었습니다.
다시 돌아온 목소리, 1997년
국내 방영 당시 마이클 나이트 역은 성우 이정구가, 키트 역은 남궁윤이 맡았습니다. 그 목소리들이 워낙 인상 깊었던 덕분인지, 1997년 KBS에서 이 드라마를 다시 방영할 때도 같은 성우진이 그대로 더빙을 맡았습니다. 몇 년의 시차를 두고도 같은 목소리로 돌아온 마이클과 키트를 반가워한 시청자가 적지 않았습니다.
비디오 대여점에도 이 작품은 꾸준히 자리를 지켰습니다. 방영 시간을 놓친 아이들은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테이프를 빌려 밀린 회차를 몰아보곤 했고, 대여점 카운터 옆 진열대에는 늘 몇 편이 꽂혀 있었습니다.
비슷한 시기, 비슷한 결의 외화들
전격 Z작전이 인기를 끌던 무렵, 비슷한 색깔의 외화 시리즈들도 나란히 안방극장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헬리콥터가 주인공인 에어울프, 팀 단위로 움직이는 A특공대, 사이보그 신체를 가진 6백만불의 사나이까지. 하나같이 첨단 장비 하나를 앞세운 미국식 액션 드라마였고, 아이들은 어느 요일에 어떤 프로그램이 하는지 나름의 시간표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어느 주인공이 제일 세냐”를 두고 은근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총 한 자루 없이도 차 한 대로 사건을 해결하는 마이클 나이트 쪽에 표를 던지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는데, 몸으로 부딪히는 다른 주인공들과 달리 대화와 두뇌 싸움으로 위기를 넘기는 모습이 남달라 보였기 때문입니다.
남은 이야기
총상을 입고 새 얼굴로 돌아온 형사, 사람처럼 말하는 검은 자동차, 그리고 손목시계에 대고 이름을 부르던 아이들의 흉내까지. 전격 Z작전은 화려한 특수효과 없이도 일요일 저녁 밥상머리를 온통 자동차 이야기로 채운 드라마였습니다.
싸구려 손목시계를 입에 대고 “키트”를 불러본 기억이 있다면, 그 브라운관 앞의 설렘을 함께 나눈 겁니다. 일요일 저녁 6시, 저녁상을 앞에 두고도 눈은 TV 화면에 붙박여 있던 아이들이 전국 어디에나 있었습니다.
지금은 자율주행이나 인공지능 스피커가 낯설지 않은 시대지만, 그때는 차가 스스로 말을 건네는 상상 자체가 신기했습니다. 손목시계로 자동차를 부르는 장면 하나로 한 세대의 손목 위 풍경을 바꿔놓았다는 사실이, 지금 돌이켜봐도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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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업데이트: 2026-0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