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5시 50분, 저녁 준비하는 소리가 부엌에서 들려올 즈음이면 텔레비전 앞에 낯익은 전주가 흘렀습니다. 카메라를 든 여자와 트렌치코트 차림의 남자가 어두운 골목을 걷는 장면 위로,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팝송이 깔렸습니다.
그 드라마 제목은 ‘특수공작원 아이언맨’이었습니다. MBC가 일요일 오후 더빙 외화로 편성한 작품인데, 성우 박기량이 남자 주인공의 목소리를 맡았습니다.
원제는 ‘커버 업’, 제목은 왜 아이언맨이 됐을까
미국 원제는 ‘Cover Up’이었습니다. 사진작가로 위장한 비밀요원들의 이야기라는 뜻인데, 이걸 국내에 들여오면서 뜬금없이 ‘아이언맨’이라는 제목이 붙었습니다.
직역도 아니고 내용과 딱히 맞아떨어지지도 않는 이름인데, 왜 하필 이 제목이었는지는 지금도 명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 시절 외화 제목은 원제와 무관하게 붙는 경우가 흔했고, 이것도 그런 사례 중 하나로 보입니다.
그 오프닝, 사실은 보니 타일러였다
드라마 오프닝에 흐르던 그 팝송의 정체는 ‘Holding Out for a Hero’였습니다. 방송에 쓰인 건 가수 엘리자베스 데일리의 커버 버전이었지만, 원곡을 부른 사람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보니 타일러였습니다.
당시엔 이 노래가 어느 가수의 곡인지 궁금해하지도 않은 채, 그저 그 오프닝이 나오면 채널을 고정하던 시청자가 많았습니다.
‘Cover Up'(특수공작원 아이언맨) 오프닝 영상, 엘리자베스 데일리 커버 버전
사진작가에서 요원으로
극의 주인공 다니는 파리에서 활동하던 유명 사진작가였습니다. 남편이 사고로 죽은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는 CIA 소속 비밀요원이었습니다.
다니는 남편의 뒤를 잇기로 하고, 그린베레 출신의 모델 하퍼와 짝을 이뤄 사건을 해결해 나갑니다. 겉으로는 화보 촬영을 다니는 사진작가와 모델이지만, 카메라 가방 안에는 촬영 장비 대신 다른 것들이 들어있었습니다.
일곱 번째 촬영, 그리고 그 후
하퍼 역을 맡은 배우는 존 에릭 헥섬이었습니다. 큰 키에 서글서글한 인상으로, 이 드라마를 시작으로 스타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던 배우였습니다.
일곱 번째 에피소드까지 촬영을 마친 1984년 가을, 헥섬은 촬영장에서 소품용 리볼버를 만지다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스물여섯이었습니다.
남은 촬영은 배우 앤서니 해밀턴이 이어받았습니다. 국내 더빙판에서는 성우 박기량이 두 배우의 목소리를 모두 맡아, 시청자들이 배우가 바뀐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다락방 속 한 장면
일요일 저녁을 떠올리면, 그 낯선 팝송의 전주가 흐르는 순간 밥그릇을 미루고 텔레비전 앞으로 당겨 앉던 기억이 먼저 생각난다. 카메라를 든 두 사람이 골목을 걷는 장면을 보며, 저 카메라 가방 안에 뭐가 들었을지 궁금해했다. 그 노래가 누구의 곡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 노래를 부른 보니 타일러의 원곡을 지금 다시 들으면, 오프닝 화면이 저절로 떠오릅니다.
Bonnie Tyler – Holding Out For A Hero 공식 뮤직비디오 (원곡)
남은 이야기
제목의 유래도 불분명하고, 방영 도중 주인공을 잃은 드라마. 그럼에도 그 오프닝 음악 하나만큼은 또렷하게 남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요일 오후 그 전주를 들으며 채널을 고정했던 기억이 있다면, 그 시절 안방극장의 한 장면을 함께 나눈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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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업데이트: 2026-07-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