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초입의 거리에서, 긴 바바리코트 깃을 세운 남자들이 하나둘 눈에 띄기 시작한 게 아마 1987년 무렵이었을 겁니다. 선글라스를 쓰고, 담배도 아닌 성냥개비 하나를 입에 문 채였습니다.
그 모습의 출처는 극장이었습니다. 그해 5월 23일 국내 개봉한 홍콩 영화 영웅본색. 개봉 당시엔 극장이 텅텅 비었는데, 재개봉관과 동시상영관을 몇 바퀴 도는 사이 입소문이 붙어 뒤늦게 역주행한 영화입니다.
텅 빈 극장에서 시작됐다
화양극장, 대지극장, 명보극장. 지금은 사라졌거나 이름이 바뀐 그 극장들 간판 아래로, 개봉 첫 주 영웅본색을 보러 든 관객은 드문드문했습니다. 세진영화가 수입해 걸었지만 초반 성적은 신통치 않았습니다.
그럴 만도 했습니다. 그때까지 극장에서 홍콩 영화라 하면 쿵후와 무협 액션이었는데, 영웅본색은 총과 의리와 배신이 뒤엉킨 도시 느와르였으니까요. 관객에게는 낯선 물건이었습니다.
그런데 두어 달이 지나면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미 개봉관을 거친 영화를 다시 트는 재개봉관과 동시상영관에서, 관객이 슬금슬금 늘기 시작한 겁니다. “그 영화 봤어?”라는 한마디가 교실과 다방을 타고 옮겨 다녔고, 소문을 따라온 사람들로 극장 앞 줄이 건물 모퉁이를 돌았습니다.
A Better Tomorrow(영웅본색, 1986) 4K 복원판 공식 예고편
매표소 앞에 줄을 서던 오후
그 시절 극장 앞을 떠올리면, 매표소 옆 벽을 가득 채운 손으로 그린 대형 포스터가 먼저 생각납니다. 페인트로 그려낸 주윤발의 얼굴이 실물보다 크게 걸려 있었고, 인기 있는 영화일수록 표를 사려는 줄이 길었습니다.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은 동시상영관을 찾았습니다. 표 한 장이면 영화 두 편을 내리 볼 수 있었으니, 오후 내내 극장 안에 눌러앉아 있어도 됐습니다.
극장에서 놓쳤다면 방법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동네 비디오 대여점입니다. 1981년 법이 바뀌어 합법 비디오 시장이 열린 뒤, 대여점은 1985년부터 해마다 2,000곳씩 새로 생겼고 1989년엔 등록 업소가 1만 7,700곳을 넘었습니다. VTR이 집집마다 들어와 보급률이 41%를 넘기던 무렵입니다. 영웅본색도 극장을 내려온 뒤 오랫동안 대여점 진열대에 꽂혀 있었습니다.
담배 대신 성냥개비였던 이유
바바리코트나 선글라스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은 건, 주윤발이 성냥개비를 잘근잘근 씹던 모습이었습니다. 극 중 그가 연기한 ‘마크’는 위조지폐에 불을 붙여 담뱃불로 쓰는 장면으로 유명한데, 총으로 상황을 정리한 뒤 성냥개비 하나를 꺼내 무는 그 여유가 특히 강렬했습니다.
왜 담배가 아니라 성냥개비였는지 딱 부러진 설명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만 남학생들 입장에서는 이게 편했습니다. 담배는 못 피워도 성냥개비 하나 물고 코트 깃만 세우면 마크가 된 기분이 났으니까요. 다음 날 학교에 가면 누가 먼저 성냥개비를 물고 오는지 은근한 경쟁이 붙었습니다.
영웅본색 – 소마의 테마 – 小馬 Mark’s Theme (True Colors of a Hero)
교실 뒤편에 붙어 있던 얼굴
그때 주윤발은 스크린 안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교실 뒤 게시판, 책받침 밑, 필통 안쪽 어디에나 그의 사진이 붙어 있었습니다. 대부분 서점이나 문방구에서 산 영화잡지에서 오려낸 것들이었습니다. 1984년 창간한 ‘스크린’은 스타 브로마이드를 부록으로 끼워주기로 유명했는데, 그 부록이 곧장 교실 벽으로 직행했습니다.
쉬는 시간이면 남학생들은 어제 본 장면을 서로 재연했습니다. 코트 자락을 휘날리는 시늉, 선글라스를 밀어 올리는 손짓, 그리고 어김없이 입에 문 성냥개비.
이 유행은 한국만의 것도 아니었습니다. 한국경제 보도에 따르면 롱코트와 선글라스는 홍콩과 일본에서도 품귀를 빚었다고 합니다. 1988년 7월 영웅본색2 개봉에 맞춰 주윤발과 적룡, 석천이 화양극장을 찾았을 때는, 바바리코트를 입은 팬들이 극장 앞을 그대로 메웠습니다.
영화 밖의 1987년
영웅본색이 뒤늦게 관객을 끌어모으던 그해, 극장 바깥의 거리는 민주화를 외치는 목소리로 뜨거웠습니다. 6월 29일에는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들이는 선언이 나왔습니다.
그 소란한 공기 속에서, 사람들은 컬러TV와 컬러 광고에 막 눈을 뜨고 있었습니다. 화면 속 옷과 색감에 부쩍 민감해진 눈에, 영웅본색의 검은 코트와 도시의 밤은 유독 세련돼 보였습니다.
개봉관과 재개봉관, 극장의 문법
지금은 어느 극장이든 같은 날 같은 영화를 겁니다. 그때는 달랐습니다. 개봉관에서 먼저 걸고, 거기서 내려온 영화가 재개봉관과 동시상영관으로 넘어갔습니다. 개봉관 성적이 나빠도 다음 극장에서 다시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영웅본색이 바로 그 길을 밟았습니다.
지금은 검색 몇 초면 영화를 찾지만, 그때는 친구가 건넨 한마디가 영화 정보의 거의 전부였습니다. 그 한마디를 듣고 극장을 찾아가고, 대여점 진열대를 뒤지던 일이 그 자체로 하루의 재미였습니다.
다락방 속 한 장면
토요일 오후 극장 앞을 떠올리면, 검은 장난감 선글라스를 밀어 올리며 코트 깃을 세우던 또래들이 먼저 생각난다. 지금 보면 우습기도 한 흉내였다. 그 시절 극장 앞을 지날 땐 괜히 나도 바바리 코트가 있었으면 했다.
극장 앞 그 공기를 다시 불러오는 건, 장국영이 부른 주제곡 ‘당년정(當年情)’입니다. 전주만 들어도 그때가 떠오른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장국영 – 당년정(當年情) 라이브, 영웅본색(1986) 주제곡
남은 이야기
텅 빈 극장에서 시작해 재개봉관을 돌며 살아난 영화, 그리고 거리를 검은 코트로 물들인 영화. 나라 밖이 시끄럽던 그해, 극장 안에서는 조용히 다른 유행이 번지고 있었습니다.
혹시 성냥개비 하나를 입에 물고 거리를 걸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길에서 바바리 코트를 입은 아저씨를 곁눈질로 부러워한 기억이라도. 영웅본색은 그렇게 극장 밖으로 걸어 나와, 누군가의 열일곱 살 어딘가에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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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업데이트: 2026-0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