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늦게 이불 속에서 라디오 다이얼을 조심스레 돌리던 손, 지지직거리는 잡음 사이로 낯선 리듬이 흘러나오던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1980년대 한국에서 마이클 잭슨의 음악은 정식 수입 음반보다 먼저, 주한미군방송 AFKN의 전파를 타고 몰래 스며들었습니다.
상당수 팝송이 이런저런 이유로 국내 방송 금지곡이었던 시절, 마이클 잭슨의 노래는 AFKN을 통해서만 온전히 들을 수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검열의 시대, 전파를 타고 넘어온 소리
1980년대 한국 가요계 못지않게, 어쩌면 그 이상으로 인기를 끈 건 해외 팝 음악이었습니다. 문제는 빌보드 1위를 한 곡조차 검열에 걸려 국내 라디오에서 제목만 소개되고 정작 노래는 틀어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는 겁니다.
그 빈틈을 채운 게 AFKN 라디오의 ‘American Top 40’ 같은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검열의 손이 닿지 않는 미군 방송을 통해서만 온전한 팝 음악을 들을 수 있었던 셈입니다. 그래서 주파수 다이얼이 조금만 어긋나도 괜히 아쉬워지곤 했습니다.
마이클 잭슨의 음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국내 정식 음반이 나오기 전부터, 이미 AFKN을 자주 듣던 이들 사이에서는 낯익은 이름이었습니다.
정작 ‘스릴러’ 앨범은 훗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음반으로 기록될 만큼 압도적인 성공을 거뒀는데, 그 앨범이 한국에서는 정식 유통보다 라디오 전파와 복제 레코드를 통해 먼저 퍼졌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하면 꽤 아이러니한 대목입니다. 누군가의 책상 서랍에는 라디오 앞에 카세트를 대고 녹음한 테이프가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 갔습니다.
빽판 — 청계천에서 만들어진 소리
AFKN에서 들은 노래를 다시 듣고 싶어도 방법이 마땅치 않던 시절, 이 갈증을 채워준 게 이른바 ‘빽판’이었습니다. AFKN 등을 통해 흘러나온 최신 팝송은 라디오 녹음과 복제 음반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고, 이렇게 만들어진 음원이 복사에 복사를 거듭하며 은밀히 퍼져나갔습니다.
이 빽판이 실제로 만들어지고 유통된 곳이 바로 세운상가와 청계천 일대였습니다. 경기도 어딘가의 작은 공장에서 눌러 찍힌 레코드가 청계천 음반 가게로 흘러들었고, 1980년대엔 세운상가 임대료가 저렴해지면서 10평 남짓한 좁은 가게에서 영세하게 제작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정식 라이선스 없이 만들어진 이 복사판 레코드는 표지도 조악하고 음질도 지금 기준으로는 형편없었지만, 마이클 잭슨의 목소리를 갖고 싶어 하던 이들에게는 유일한 통로였습니다. 지지직거리는 잡음 속에서도, 바늘을 올려놓는 순간의 설렘만은 진짜였습니다.
문워크, 골목에서 다시 태어나다
1983년 3월 25일, 마이클 잭슨은 모타운 25주년 특별 방송에서 ‘빌리 진’을 부르며 뒤로 미끄러지듯 걷는 춤을 처음 선보였습니다. 이 장면은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졌고,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Michael Jackson – Billie Jean 공식 뮤직비디오
흥미로운 건 이 춤이 한국에 퍼진 경로입니다. 훗날 ‘한국의 마이클 잭슨’이라 불리게 되는 가수 박남정은, AFKN에 나오는 흑인 댄서들의 춤을 비디오테이프에 녹화해두고 반복해서 돌려보며 몸으로 따라 익혔습니다.
정식으로 안무를 배울 곳이 없던 시절, 화면 속 동작을 뚫어져라 보고 그대로 흉내 내는 것이 유일한 학습법이었던 셈입니다. 이렇게 익힌 춤이 다시 방송 무대와 골목 어귀로 퍼져나가면서, 문워크는 화면 밖 아이들의 몸짓으로도 이어졌습니다.
그렇게 화면을 돌려보며 익힌 춤이 실제 가요 무대에 오른 모습은, 지금도 방송사 아카이브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박남정 – 널 그리며, KBS 가요톱10 1989년 방송분
안방극장에 나타난 좀비 군무
1980년대 후반 국내 음반 시장에서도 마이클 잭슨은 단순한 팝스타를 넘어 하나의 문화 아이콘으로 통했습니다. 정식 음반 판매량과는 별개로, 그의 이름과 이미지는 이미 대중문화 전반에 넓게 퍼져 있었습니다.
‘스릴러’ 뮤직비디오는 마이클 잭슨이 좀비 무리와 함께 기묘한 동작으로 군무를 추는 장면으로 유명합니다. 존 랜디스 감독이 만든 이 13분짜리 영상은 훗날 역대 최고의 뮤직비디오로 꼽히게 되는데, 놀랍게도 이 영상이 한국 안방에 정식으로 소개된 적이 있습니다.
1980년대 중반 MBC가 주말 오후 특선으로 해외 호러 뮤직비디오만 모아 방송한 적이 있는데, 그 목록에 ‘스릴러’의 축약판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은밀한 빽판과 라디오로만 접하던 마이클 잭슨의 영상을, 어느 주말 오후 텔레비전 화면으로 정식으로 마주한 사람들에게는 꽤 낯설고도 강렬한 경험이었을 겁니다.
Michael Jackson – Thriller (Official Video)
친구들 사이에서 벌어진 흉내 내기
골목이나 학교 운동장 한편에서, 누군가 어설프게 뒤로 미끄러지는 걸음을 시도하면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구경하던 풍경이 있었습니다. 잘 되든 안 되든 상관없었습니다.
그 동작 하나를 흉내 내는 것 자체가, 화면 저편의 낯선 세계와 잠깐이나마 이어지는 방법이었으니까요. 마이클 잭슨의 앨범 재킷이나 사진을 구하기 어려웠던 만큼, 그 이미지는 실제로 본 사람보다 소문과 상상으로 부풀려진 부분도 많았습니다.
누군가는 그가 실제로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 정확히 가늠하지도 못한 채, 그저 화면 속 그 몸짓이 멋있다는 이유만으로 따라 하고 또 따라 했습니다.
검열과 갈증이 만든 팬덤
지금이야 스트리밍 버튼 하나면 마이클 잭슨의 모든 곡을 들을 수 있지만, 그 시절엔 정반대였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방송 검열과 정보의 갈증이 오히려 그 음악을 더 간절하게 만들었습니다.
몰래 녹음한 빽판을 친구와 돌려 듣고, 화면 속 춤 동작을 몇 번이고 되돌려 보며 따라 하던 그 수고로움이, 지금의 손쉬운 접근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 애착을 만들어냈습니다. 구하기 힘들었던 만큼, 어렵게 손에 넣은 빽판 한 장을 친구에게 며칠씩 빌려주는 것도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세대는 잘 모르는 그 시절 이야기
‘AFKN’은 주한미군을 위해 운영되던 방송으로, 당시엔 검열을 받지 않는 거의 유일한 방송이라 오히려 한국 시청자들이 몰래 즐겨 보고 듣는 창구가 됐습니다. ‘빽판’은 이런 방송을 녹음해 무단으로 복제한 레코드를 가리키는 말로, 정식 유통망이 아니라 청계천 등지의 음반 가게를 통해 은밀히 거래됐습니다.
왜 굳이 미군 방송이었을까
지금 기준으로 보면 이상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자국 방송에서 못 듣는 노래를, 왜 하필 외국 군대의 방송을 통해 들어야 했을까요.
그 시절 방송 검열은 노래 가사의 표현이나 정서, 때로는 특별한 이유 없이도 폭넓게 적용됐고, 이 때문에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곡들도 국내에서는 소개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AFKN은 애초에 검열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가장 자유롭게 팝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통로가 됐던 겁니다.
다락방 속 한 장면
겨울밤, 이불 속에서 몰래 라디오를 켜던 아이가 있었다. 지지직거리는 잡음 사이로 낯선 리듬이 흘러나오면, 숨죽이고 볼륨을 조금 더 키웠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온전히 혼자만의 발견이었다.
마이클 잭슨이 남긴 것
검열의 시대에 전파를 타고 몰래 넘어온 노래, 빽판으로 손에서 손으로 옮겨 다니던 목소리, 화면 속 동작을 몇 번이고 되감아 보며 몸으로 익히던 춤. 마이클 잭슨은 정작 한국에 와본 적도 없이, 이렇게 골목 하나하나에 스며들었습니다.
그 시절 마이클 잭슨은 음악으로만 만난 스타가 아니었습니다. 지지직거리는 라디오 너머, 쉽게 닿지 않는 세계를 꿈꾸게 한 이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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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업데이트: 2026-0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