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명이 다리를 얽어 만든 말 위에, 한 아이가 목말을 타고 올라섰습니다. 반대편에서 똑같은 모양의 팀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왔습니다. 순간 두 기수의 손이 뒤엉켰고, 한쪽 모자가 하늘로 튕겨 나가자 운동장 전체가 함성으로 뒤덮였습니다.
이 종목의 이름은 기마전. 국민학교 가을 운동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던 프로그램이었고, 아이들이 다른 어떤 순서보다 목을 빼고 기다리던 시간이었습니다. 몇 초 만에 승부가 갈리는데도, 그 몇 초를 위해 몇 주를 기다리는 게 아깝지 않았습니다.
세 명이 말이 되고, 한 명이 기수가 되는 놀이
기마전은 네 명이 한 조를 이루는 종목이었습니다. 세 명이 서로 팔과 어깨를 엮어 말 모양을 만들고, 그 위에 남은 한 명이 기수가 되어 올라탔습니다. 상대편 기수의 모자나 머리띠를 벗기거나, 말에서 떨어뜨리면 그 조가 이기는 방식이었습니다.
말을 맡은 세 아이는 기수의 다리와 몸무게를 온전히 떠받쳐야 했고, 기수는 흔들리는 발판 위에서 균형을 잡으며 상대에게 손을 뻗어야 했습니다. 다리 힘이 좋은 아이가 말을 맡고, 몸이 가볍고 순발력 있는 아이가 기수를 맡는 식으로 역할이 자연스럽게 나뉘었습니다.
1984년 재동국민학교 가을대운동회 기록 사진에도 이 기마전 장면이 남아있을 만큼, 오래전부터 전국 각지 운동회에서 빠지지 않던 종목이었습니다. 지역이나 학교 규모와 상관없이, 가을 운동회 프로그램표 어딘가에는 늘 기마전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원래는 일본 운동회에서 건너온 종목
기마전은 원래 일본 운동회에서 전통처럼 이어져 온 종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도 일본 중고등학교 운동회에서는 기마전이 빠지지 않는 인기 프로그램입니다. 국내 학교 운동회 자체가 근대 교육 제도와 함께 들어온 문화였던 만큼, 기마전을 비롯한 몇몇 종목들도 그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정작 그 시절 운동장에서 뛰던 아이들은 이 종목의 유래를 알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매년 가을이면 돌아오는 익숙한 순서였고, 자기 학년 차례가 다가오면 가슴이 뛰는 종목이었을 뿐이었습니다.
1960년대, 1980년대 가을 운동회 모습, KTV 다큐 아카이브 영상
말과 기수, 그 역할은 누가 정했을까
한 조를 짤 때마다 은근한 눈치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다리 힘이 세고 덩치가 좋은 아이들이 말을 맡았고, 몸이 가볍고 날쌘 아이가 기수 자리에 올랐습니다. 체격 좋은 아이라고 무조건 기수를 하고 싶어 하는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남을 태우고 버티는 역할에 자부심을 느끼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이 역할 배정은 점점 더 진지해졌습니다. 체육 시간마다 담임 선생님이 몇 개 조를 만들어 연습을 시켰고, 어느 조합이 가장 안정적인지, 누가 기수로 나서야 승산이 있는지를 두고 아이들끼리 나름의 전략 회의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여학생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학교에 따라 남녀 혼합조를 짜기도 했고, 여학생들만의 기마전 순서를 따로 마련한 곳도 있었습니다. 힘과 순발력만 맞으면 성별은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는 걸, 그 시절 아이들은 몸으로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안전모 없이 맨몸으로 부딪히던 순간
지금 기준으로 보면 아찔한 장면도 많았습니다. 헬멧이나 보호 장비 없이, 그저 체육복 차림으로 서로 부딪히고 밀치는 게 전부였습니다. 기수가 균형을 잃고 통째로 떨어지는 일도 흔했고, 말을 맡은 아이들이 무게를 못 이겨 함께 주저앉는 장면도 자주 나왔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불며 경기를 시작시키고, 위험한 순간이 보이면 재빨리 뛰어들어 아이들을 떼어놓는 것도 매번 반복되는 풍경이었습니다. 무릎에 흙이 잔뜩 묻고 팔꿈치가 까져도, 아이들은 대수롭지 않게 툭툭 털고 다음 순서를 기다렸습니다.
승부가 갈리는 순간의 함성은 다른 어떤 종목보다 컸습니다. 모자가 벗겨져 하늘로 날아가는 찰나, 양쪽 응원석에서 동시에 터져 나오는 탄성과 아쉬움의 소리가 뒤섞였습니다.
다락방 속 한 장면
내 차례가 아니었는데도 심장이 두근거리던 기억이 있다. 같은 반 친구가 기수로 뽑혀 올라탄 순간, 저러다 떨어지면 어쩌나 싶어 손에 땀을 쥐고 지켜봤다. 모자가 벗겨지던 그 짧은 순간의 함성만큼은 지금도 귀에 선하다.
이름부터 전투를 닮은 종목
기마전(騎馬戰)이라는 이름 자체가 ‘말을 탄 전투’라는 뜻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종목의 대형과 움직임은 옛날 기병들이 말 위에서 창을 겨루던 모습을 흉내 낸 것에 가까웠습니다. 아이들 놀이라기엔 제법 살벌한 이름이었지만, 정작 운동장에서는 그 이름의 무게보다 순수한 승부욕이 앞섰습니다.
상대 모자를 낚아채기 위해 뻗은 손, 균형을 잃지 않으려 온몸에 힘을 준 말 역할 아이들의 표정, 그리고 그 뒤에서 목이 터져라 응원하던 같은 반 친구들까지. 순식간에 끝나는 경기였지만, 그 안에 담긴 긴장감만큼은 계주 못지않았습니다.
운동장 흙바닥 위의 짧은 승부
경기 시간 자체는 길지 않았습니다. 양 팀이 마주 서서 신호와 함께 달려들면, 몇 초 안에 승부가 갈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 짧은 순간을 위해 몇 주 전부터 체육 시간마다 편을 짜고 연습하는 반도 있었습니다.
진 편은 억울해하면서도 오래 속상해하지는 않았습니다. 바로 다음 순서로 계주나 박 터뜨리기 같은 다른 종목이 기다리고 있었고, 흙투성이가 된 체육복을 털며 새로운 구경거리를 찾아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긴 편 아이들은 한동안 그 순간을 두고두고 이야기했습니다. 누가 먼저 모자를 낚아챘는지, 누구 다리가 후들거렸는지를 놓고 쉬는 시간마다 다시 복기하는 게 하나의 놀이였습니다.
1982~2000년 추억 속 가을 운동회 모음집, KBS 뉴스 부산 아카이브
만국기 아래, 학년 대항전이 되던 순간
기마전은 보통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는 큰 대결과는 별개로, 학년별 대항전 형태로 치러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4학년 조와 5학년 조가 맞붙고, 그 결과에 따라 학년 전체의 자존심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저학년 때는 그저 구경만 하다가, 고학년이 되어 처음 기마전에 나가게 된 날은 남다른 긴장감이 흘렀습니다.
운동장 한쪽에서는 이미 다음 조가 대형을 맞추며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세 아이가 어깨동무를 하듯 서로를 붙잡고 자세를 낮추면, 그 위로 기수가 조심스럽게 올라탔습니다. 신호가 떨어지기 직전,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각오를 다지는 그 짧은 순간이 경기 자체만큼이나 기억에 남는 장면이었습니다.
담임 선생님들도 이 종목만큼은 각별히 신경을 썼습니다. 다른 종목보다 다칠 위험이 크다는 걸 알기에, 시작 전 몇 번이고 안전 수칙을 당부하고 나서야 호루라기를 불었습니다.
지금은 보기 힘든 그 위험한 종목
기마전은 몸싸움이 격렬하고 부상 위험이 큰 종목이라, 지금의 학교 운동회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차전놀이나 다른 몸싸움 종목들이 하나둘 사라진 것과 비슷한 흐름입니다.
최근에는 운동회 자체가 크게 축소되는 추세이기도 합니다. 안전사고가 나면 교사와 학교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 그리고 소음이나 진행 방식을 둘러싼 학부모 민원까지 겹치면서, 예전 같은 규모의 운동회를 여는 학교 자체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 조사에서는 학부모의 절반 이상이 “안전사고 발생 시 교사와 학교가 지게 되는 책임 문제”를 운동회 축소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몸을 부딪치며 겨루는 종목일수록 이런 부담에서 먼저 밀려날 수밖에 없었고, 기마전은 그 목록의 맨 앞자리에 있었던 종목이었습니다.
온 학년이 순서를 기다리며 흙바닥에 줄지어 앉아있던 풍경, 다음 조가 대형을 맞추는 모습을 숨죽여 지켜보던 그 긴장감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안전을 우선하는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당연한 변화지만, 그 시절을 겪은 사람들에게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대신 그 자리는 부딪힐 위험이 없는 단체 게임들로 채워졌습니다. 세 명이 힘을 합쳐 한 명을 떠받치던 그 아슬아슬한 균형은, 이제 오래된 사진과 방송 아카이브 영상 속에서나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 됐습니다.
운동회가 마을 잔치였던 시절
기마전이 벌어지던 그 운동장은 단순한 경기장이 아니었습니다. 만국기가 걸린 운동장 둘레로 학부모들이 돗자리를 펴고 앉아 있었고, 도시락과 김밥이 오갔습니다. 자기 자녀가 나가는 순서가 되면 카메라를 든 아버지들이 운동장 가까이 몰려들었고, 어머니들은 목이 쉬도록 응원가를 불렀습니다.
기마전이 시작되면 그 시끌벅적하던 소리가 한순간에 잦아들었습니다. 승부가 갈리는 짧은 순간에 집중하기 위해서였고, 결과가 나오는 순간 다시 함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 완급 조절 자체가 운동회 하루를 더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였습니다.
지금 세대에게는 국민학교라는 이름부터 낯설 수 있습니다. 1996년까지 초등학교를 부르던 이 명칭 아래에서, 아이들은 매년 가을이면 이런 종목들로 채워진 운동회를 온 마을과 함께 치렀습니다. 학교 담장 밖 동네 사람들에게도 그날은 자녀나 손주를 보러 나오는, 한 해 중 손꼽히는 나들이 날이었습니다.
남은 이야기
세 아이가 말이 되고 한 아이가 기수가 되어 겨루던 짧은 승부, 그리고 모자가 벗겨지는 순간 터지던 함성까지. 기마전은 화려한 장비 하나 없이도 운동장을 가장 뜨겁게 달구던 종목이었습니다.
친구 등 위에 올라타 균형을 잡아본 기억이 있다면, 그 가을 운동장의 흙먼지와 함성을 함께 나눈 겁니다. 지금은 사진과 영상 속에서나 다시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그 짧은 몇 초의 승부가 남긴 여운만큼은 여전히 또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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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업데이트: 2026-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