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봉체조, 수백 명이 하나처럼 움직이던 운동장의 순간

운동장 바닥에 그어진 하얀 선 위, 아이들이 줄지어 서서 신호를 기다립니다. 양손에는 짧은 나무 곤봉을 하나씩 아주 단단히 쥐고 있습니다. 확성기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바로 그 순간, 수백 명이 일제히 동시에 팔을 뻗고 곤봉을 돌리기 시작합니다. 한 명이라도 박자를 놓치면 전체 대형이 순식간에 흐트러지는, 그야말로 숨죽인 긴장의 시간이었습니다.

이 종목의 이름은 곤봉체조. 가을 운동회마다 여러 학년이 함께 준비하던 대표적인 단체 종목이었고, 몇 주 전부터 방과 후 운동장을 가득 채우던 길고 긴 연습의 결실이기도 했습니다. 개인기를 뽐내는 종목이 아니라, 오로지 전체가 하나로 맞아떨어져야만 완성되는 무대였습니다.

수백 명이 하나처럼 움직이던 시간

곤봉체조는 이른바 ‘매스게임’의 한 종류였습니다. 여러 학생이 같은 동작을 동시에 맞춰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내는 집단 체조로, 리본이나 부채 대신 짧은 나무 곤봉 두 개를 양손에 쥐고 진행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입장, 정렬, 동작, 퇴장까지 세세하게 정해진 순서가 있었고, 그 사이사이 곤봉을 머리 위로 크게 돌리거나 좌우로 흔드는 동작이 반복됐습니다.

운동장 바닥에는 흰 석회 가루로 미리 표시선을 그어두었습니다. 아이들은 이 선에 맞춰 자기 자리를 외웠고,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옆 사람과 부딪히거나 대형 전체가 무너질 수 있었습니다. 자기 번호가 몇 번째 줄 몇 번째 자리인지 몇 번이고 되뇌며 자리를 찾아가던 아이들의 모습도 흔한 풍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연습 때마다 선생님들은 대형을 맞추는 데만 상당한 시간을 쏟았습니다.

박자를 놓치면 안 되는 이유

곤봉체조가 특히 부담스러웠던 이유는 대형 전체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개인 종목이라면 실수해도 본인만 아쉬우면 그만이지만, 이 종목은 한 사람의 실수가 옆줄, 뒷줄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쳤습니다. 곤봉을 든 팔의 각도, 돌리는 속도, 다음 대형으로 이동하는 타이밍까지 모든 게 촘촘하게 맞물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연습 초반에는 대형이 자주 무너지곤 했습니다. 어떤 줄은 빠르고 어떤 줄은 느려서, 멀리서 보면 물결이 어긋나듯 들쭉날쭉한 그림이 만들어지기 일쑤였습니다. 선생님들은 그때마다 손뼉으로 박자를 짚어주며 몇 번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시켰습니다.

한 달 전부터 시작되는 방과 후 연습

사용하는 곤봉은 대개 나무나 가벼운 플라스틱 재질로, 길이는 어른 팔뚝 정도였고, 무게도 아이들이 오랫동안 들고 흔들어도 크게 무리가 없을 만큼 가벼운 편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일괄로 구입해 나눠주는 경우가 많았고, 학년이 끝나면 다음 학년에게 물려주며 몇 년씩 계속 돌려썼습니다. 손때가 묻고 여기저기 흠집이 난 곤봉일수록, 그만큼 많은 선배들의 손을 거쳤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이 종목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는 대개 운동회 한 달 전쯤부터 시작되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일주일에 두어 번씩, 한 번에 두 시간 가까이 방과 후 운동장에 남아 같은 동작을 반복해서 몸에 익혔습니다. 한 달 가까이 채우면 수업 시간으로 따져 며칠 치에 맞먹는 시간이 고스란히 이 연습에 쓰인 셈이었습니다.

확성기에서 나오는 시끄러운 지도 음성과 운동장에 뿌옇게 이는 흙먼지 속에서, 아이들은 지치지도 않고 같은 동작을 몇 번이고 다시 맞췄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하던 동작도 대여섯 번쯤 반복하면 몸이 저절로 기억할 만큼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연습이 끝나는 순간 “이제 끝났다”며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웃던 것도 익숙한 풍경이었습니다.

학교 인근 주민들에게는 이 연습 기간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았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대에 확성기 소리가 울려 퍼지고 운동장 흙먼지가 담장 너머까지 날아드니, 조용히 지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성가신 소음이었습니다. 그래도 그 시절엔 학교 행사를 위한 소음 정도는 다들 으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던 분위기였습니다.

더운 날씨에 두 시간씩 서서 같은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지치는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그늘 하나 없는 운동장 한복판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곤봉을 몇 번이고 다시 돌리다 보면, 팔이 뻐근해지는 걸 넘어 아예 감각이 무뎌지는 날도 있었습니다. 물통 하나 들고 나와 목을 축이며 다음 순서를 기다리던 것도 이 계절 특유의 풍경이었습니다.

연습이 유독 길어지는 날이면 저녁 먹을 시간을 넘기기도 했습니다. 집에 돌아가는 길, 팔이 후들거리면서도 다음 날 또 나가야 한다는 걸 알기에 투덜거리면서도 순순히 발걸음을 옮기던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1960년대, 1980년대 가을 운동회 모습, KTV 다큐 아카이브 영상

국가 행사에도 동원된 매스게임

이런 집단 체조는 학교 운동회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의 개회식과 폐회식에서도 전국 각지의 수많은 학생이 매스게임 공연을 위해 동원됐습니다. 국가적인 큰 행사의 화려한 볼거리 뒤에는, 오랜 시간 방과 후 운동장에 남아 같은 동작을 반복했던 학생들의 땀이 있었던 셈이었습니다.

국제 행사에 동원된 학생들은 몇 달에 걸쳐 학교 운동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도 높은 연습을 소화해야 했습니다. 학교 운동회 연습이 몇 주였다면, 큰 국가 행사를 앞둔 연습은 방학까지 반납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텔레비전 생중계로 전 세계에 보여줄 완벽한 그림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이, 정작 그 무대에 서는 어린 학생들의 몫으로 고스란히 돌아갔습니다.

지금 시선으로 보면 학생들을 대가 없이 대규모로 동원했다는 점에서 비판적으로 돌아볼 부분도 있습니다. 실제로 훗날 이런 매스게임 문화를 두고 “즐거움보다 억압된 감정을 준 경험”이었다는 평가도 나왔습니다. 화려한 결과물 뒤에 가려진 이런 이면도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락방 속 한 장면

연습 때마다 자꾸 박자를 놓쳐 선생님께 혼나던 친구가 있었다. 정작 운동회 당일에는 그 친구가 제일 크게 팔을 뻗으며 곤봉을 돌렸다. 끝나고 나서 관중석을 향해 다 같이 인사하던 순간의 박수 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하다.

관중석에서 내 아이를 찾던 부모들

운동회 당일, 곤봉체조 순서가 되면 관중석 분위기도 사뭇 달라졌습니다. 똑같은 체육복을 입은 아이들 수백 명 사이에서 자기 자녀를 찾으려는 부모들이 목을 길게 빼고 두리번거렸습니다. 미리 알려준 자리 번호나 대형 위치를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겨우 찾아내고는, 그 순간부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기 바빴습니다.

모든 모든 동작 하나하나가 정말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그 순간에는 관중석에서도 자연스럽게 큰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실수한 아이가 있어도 크게 티가 나지 않을 만큼 전체 그림이 근사하게 완성되면, 그것만으로도 몇 주간 흘린 땀과 고된 연습이 한꺼번에 보상받는 뿌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운동회가 끝난 뒤에도 며칠 동안은 이 종목 이야기가 교실마다 계속 화제에 올랐습니다. “몇 반이 제일 잘했다더라”, “누구네 반은 대형이 흐트러졌다더라” 하는 이야기가 교실마다 오갔고, 담임 선생님들도 은근히 다른 반과 비교하며 자기 반 아이들을 다독이거나 칭찬해주곤 했습니다.

1982~2000년 추억 속 가을 운동회 모음집, KBS 뉴스 부산 아카이브

지금은 보기 힘든 그 풍경

요즘 학교 운동회에서는 이런 대규모 집단 체조를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준비에 드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교육적 효과에 의문이 꾸준히 제기됐고, 학생 개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학교 문화 자체가 서서히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수업 결손을 감수하면서까지 몇 주를 통째로 연습에 쏟아붓던 방식은, 지금 기준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도 그 시절을 직접 겪은 사람들에게는, 수백 명이 하나처럼 움직이던 그 순간의 벅찬 느낌만큼은 쉽게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힘들었던 연습 과정, 뙤약볕 아래 흘리던 땀, 지겹도록 반복하던 동작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희미해지고, 정작 또렷하게 남는 건 운동장 가득 울려 퍼지던 음악과 완성된 대형을 보며 터졌던 우렁찬 박수 소리 쪽입니다. 고생스러웠던 기억일수록 오히려 세월이 흐른 뒤에는 자랑거리로 바뀌는 경우가 많은데, 이 종목도 딱 그런 경우 중 하나였습니다.

부채춤, 카드섹션과 나란히

곤봉체조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같은 운동회 안에서도 학년별로 부채춤, 리본체조, 때로는 카드섹션까지 여러 형태의 매스게임이 함께 준비됐습니다. 저학년은 비교적 단순한 동작을, 고학년은 더 복잡한 대형과 소품을 다루는 식으로 난이도가 나뉘었습니다.

저학년 때는 간단히 부채를 흔드는 정도로 시작해서, 학년이 하나씩 올라갈 때마다 점점 더 복잡하고 어려운 종목을 맡게 되는 구조였습니다. 이렇게 여러 종목을 거쳐온 아이들에게는 나름의 자부심도 있었습니다. “작년에는 리본이었는데 올해는 곤봉이다”처럼, 매년 바뀌는 종목 자체가 학년이 한 살 더 올라간다는 걸 몸으로 실감하게 하는 나름의 지표이기도 했습니다.

남은 이야기

흰 선 위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던 긴장, 곤봉을 돌리며 대형을 맞추던 몇 주간의 연습, 그리고 관중석에서 터지던 박수까지. 곤봉체조는 화려한 결과물 뒤에 적잖은 땀과 시간이 숨어있던 운동회 종목이었습니다.

양손에 곤봉을 쥐고 대형을 맞춰본 기억이 있다면, 그 운동장의 긴장과 뿌듯함을 함께 나눈 겁니다. 팔이 뻐근하도록 곤봉을 돌리던 그 여름날의 땀과, 마지막 인사를 올릴 때 터지던 박수 소리는 지금도 서로 떼어놓고 기억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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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업데이트: 2026-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