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TV, 흑백 안방에 모이던 그 시절을 바꿔놓다
저녁상을 물리고 나면 옆집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슬리퍼를 끌고 마당을 가로질러 온 이웃들이 마루 끝에 걸터앉으면, 그 집 흑백TV 앞은 금세 자리가 모자랐다. 1980년 8월 2일, 정부가 컬러TV 국내 시판을 전면 허용하기 전까지 안방 화면은 온통 흑백이었다. 화면 속 사람 얼굴도, 하늘도, 옷 색깔도 회색 명암으로만 구분하던 시절이었다. 흑백 화면 앞에 모여 앉던 저녁 … 더 읽기
저녁상을 물리고 나면 옆집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슬리퍼를 끌고 마당을 가로질러 온 이웃들이 마루 끝에 걸터앉으면, 그 집 흑백TV 앞은 금세 자리가 모자랐다. 1980년 8월 2일, 정부가 컬러TV 국내 시판을 전면 허용하기 전까지 안방 화면은 온통 흑백이었다. 화면 속 사람 얼굴도, 하늘도, 옷 색깔도 회색 명암으로만 구분하던 시절이었다. 흑백 화면 앞에 모여 앉던 저녁 … 더 읽기
1988년 5월 말, 극장 문을 밀고 나온 사람들 몇몇이 리듬을 타듯 어깨를 들썩이며 걸어갔습니다. 방금 본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흐르던 기타 리프가 아직 귓가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해 5월 28일 세한진흥 수입으로 국내에 걸린 영화 «라밤바». 열일곱 살에 세상을 떠난 멕시코계 미국인 로큰롤 가수 리치 발렌스의 삶을 다룬 이 작품은, 루이스 발데즈가 감독하고 루 다이아몬드 필립스가 … 더 읽기
일요일 아침, 늦잠에서 덜 깬 채로 거실에 나오면 텔레비전은 이미 켜져 있었습니다. 화면 속에서는 미국의 어느 집 거실, 다섯 남매와 부모가 둘러앉아 시끌벅적 떠드는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코스비 가족 만세(원제 The Cosby Show)는 미국 NBC에서 1984년 9월부터 1992년 4월까지 8개 시즌 201부작으로 방영된 시트콤으로, 국내에는 1988년 KBS 2TV를 통해 더빙판으로 소개됐습니다. 일요일 아침, 채널을 맞추던 … 더 읽기
여름 저녁, 부엌 문턱에 파란 스티로폼 상자가 놓여 있었다. 얼음집에서 사 온 얼음덩이를 신문지에 싸서 넣고, 그 위에 밥과 반찬을 얹어두던 상자였다. 골목 끝 어느 집 마당에 냉장고가 처음 들어온 게 그 무렵이었다. 1965년 금성사가 국내 최초의 냉장고 GR-120을 내놓았지만, 3년이 지난 1968년에도 전국 보급 대수는 5만 대, 600가구에 한 대꼴이었다. 냉장고 한 대가 있고 … 더 읽기
1982년 2월, 종로 어느 극장 앞. 매표소 유리창 너머로 채찍을 든 남자의 실루엣이 그려진 간판이 걸려 있었습니다. 중절모를 눌러쓰고 어깨에 가방을 멘 그 남자는 지금까지 극장가를 채우던 무협 영웅도, 전쟁 영웅도 아니었습니다. 고고학자였습니다. 그해 2월 27일 국내 개봉한 영화는 «레이더스». 서울 관객 34만 8천여 명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고, 지금 기준으로 환산하면 전국 300만 명대 흥행에 … 더 읽기
월요일 밤 11시, 안방 불은 꺼져 있었지만 텔레비전 화면만은 파랗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어린 동생은 이미 잠들었고, 형이나 누나만 이불을 뒤집어쓴 채 화면 앞에 붙어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에 KBS가 내보내던 드라마는 미국 FBI 요원 두 명이 초자연 현상을 뒤쫓는 이야기, 엑스파일이었습니다. 1993년 9월 미국 폭스(Fox)에서 처음 방송을 시작해 2002년까지 9개 시즌 202편이 이어진 이 드라마는, … 더 읽기
1984년 7월 29일 밤, 남이섬 강변무대. 스무 살 남짓한 여학생이 임성균과 짝을 이룬 ‘4막5장’이라는 이름으로 마이크 앞에 섰다. 노래 제목은 ‘J에게’였다. 그날 제5회 MBC 강변가요제 대상을 받은 이 곡 하나로, 이선희라는 이름이 가요계에 등장했다. 이후 그는 데뷔곡부터 3집까지 잇달아 가요톱10 골든컵을 따내며 1980년대 중후반을 대표하는 여가수로 자리 잡았다. 강변가요제, 그 밤의 무대 대학가요제가 연말에 열리는 … 더 읽기
서점 진열대에 낯선 초록 표지 하나가 끼어든 건 1991년 12월이었다. 옆자리엔 이미 자리를 잡은 아이큐점프가 있었다. 애니메이션 제작·수입을 하던 대원동화가 12월 5일 처음 펴낸 주간 만화잡지 소년챔프는, 제호부터 아이큐점프를 정면으로 겨냥한 후발주자였다. 만화 시장에 처음 발 들인 애니메이션 회사 대원동화는 원래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수입하던 회사였다. 만화 잡지 시장에 뛰어든 건 이 무렵이 처음이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 더 읽기
반환점 팻말 앞에서, 몸통보다 큰 공 하나가 휘청거리며 옆으로 빠지려 했습니다. 앞서 밀던 아이들이 우르르 반대쪽으로 달려가 매달렸고, 공은 잠깐 멈칫하다 다시 엉뚱한 방향으로 굴러갔습니다. 그 몇 초의 우왕좌왕이야말로 공굴리기라는 종목의 진짜 얼굴이었습니다. 공굴리기는 지름 1미터 안팎의 커다란 공을 반 전체가 밀고 굴려 정해진 코스를 돌아오는 국민학교 운동회의 단체 종목이었습니다. 공은 종이나 비닐로 만들어졌고, 승부는 … 더 읽기
1984년 여름, 극장 간판에 그려진 시계탑 그림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는 사람들이 있었다. 시계탑 꼭대기에서 그대로 떨어지는 자세 하나만으로 극장 앞은 이미 소란스러웠다. 프로젝트A는 그해 7월 21일 국내 극장에 걸려 39만 명 가까운 관객을 모았고, 정작 홍콩에서는 그 전해 12월 개봉해 1984년 홍콩 흥행 1위에 올랐다. 감독 의자에 앉은 주연배우 포스터 맨 위에는 큼직한 글자로 감독과 … 더 읽기